디어헌터(The Deer Hunter, 1978)

by SA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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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反戰)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하여 많은 전쟁영화들이 전쟁의 잔혹함, 비인간성, 군대의 부조리 등을 부각한다.


전투 중 병사들의 팔다리가 잘리거나 내장이 흘러나오기도 하고

(Hamburger Hill, 1987),


졸병이 혼란을 틈타서 평소에 사이가 좋지 않던 상관을 살해하며

(Platoon, 1986),


헬기를 탄 다수의 군인들이 ‘발키리의 비행’을 들으며 민간인을 학살하며(Apocalypse Now, 1979),


해병대의 혹독한 군기로 인해 한 관심병사는 총기난사 후 자살하기도 한다

(Full Metal Jacket,1987).






애잔한 선율의 Cavatina가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이 영화는 과격한 액션장면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러시아 이민자들의 행복한 일상을 보여주는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함으로써


‘전쟁은 당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빼앗아갈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으킨다.






삶에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사건들을 수치화한 자료(Holmes & Rahe Stress Scale)가 있다.


이 자료를 보면 닉(크리스토퍼 워컨)을 죽음으로 몰고 간 전쟁의 심각성을 엿볼 수 있다.


별거, 감옥살이, 본인의 부상, 결혼, 친한 친구(전우)의 사망, 근무시간 및 근무조건의 변화, 거주지의 변화, 수면습관의 변화 등의 합계수치는 위험단계(300점 이상)를 훌쩍 넘어서기 때문이다.


40여 가지의 사건 모두가 변화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것만이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의 법칙을 상기시켜 준다.




2270C03B575BE4F22A.jpg 전쟁이 남긴 공허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무너지는가- 정신이 붕괴되어 러시안룰렛과 마약에 탐닉한 닉(크리스토퍼 워컨)과 그것을 만류하고자 하는 마이클(로버트 드 니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인식이 낮았던 20세기에는 닉과 같이 퇴역군인들이 바로 사회에 던져졌다고 한다.


전장에서 돌아온 베테런(veteran)들이 약 2~3주간 멘탈 케어 프로그램을 받고, 사회에 복귀하도록 하는 21세기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수많은 닉들의 정신붕괴가 정신의학을 한 단계 발전시킨 때문일 것이다.





예로부터 전쟁의 폐허 위에서 의학이 발전되어 온 점을 비추어보면

생(生)과 멸(滅)은 마주 선 그림자가 아니라, 서로를 비추는 등불인 것이다.


우리가 손가락을 오므렸다 펼 수 있는 것도, 처음 손가락이 발생될 때 '세포 자살(apoptosis)'이라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죽음은 때로 생명을 위한 전제 조건이 되는 것이다.


골다공증 치료제의 작용 기전을 보면 이러한 모순은 더욱 선명해진다.
파골세포의 활동을 억제하면 뼈가 덜 부서지는 효과가 있지만,

동시에 뼈를 새로 만들어내는 조골세포의 활동도 함께 감소한다.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때로는 성장을 막기도 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끝은 새로운 시작을 품고 있으며, 정점은 하강의 예고편이다.

동트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고 하지 않는가.


결국 우리는 수많은 역설과 이율배반 속에서 살아간다.
죽음과 삶, 파괴와 치유, 고통과 성장—이 모든 것은 상호 균형을 이루어낸다.

그 안에는 좋고 나쁨도, 옳고 그름도, 아름다움도 못남도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그렇게 존재해 온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 다양함을 수용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어쩌면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깊은 이해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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