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부 전직지원 현장연수, 더 많은 문을 열어야 할 때
군을 떠나는 날이 가까워질수록, 간부들은 묵묵히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앞으로 뭘 해야 하지?”
총검을 내려놓고 나면, 민간 사회는 이들에게 마치 ‘전혀 다른 언어로 운영되는 또 다른 세계’처럼 느껴진다.
긴 복무 끝에 전역을 앞둔 간부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이해할 수 있는 민간 사회와의 접점’이다.
그 접점을 만들어주는 제도가 바로 전직지원 현장연수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지금의 이 제도는 너무 좁고, 너무 단조롭고, 너무 일방적이다.
군과 사회를 잇는 ‘다리’가 되어야 할 프로그램이, 오히려 간부들을 또 다른 좁은 통로 안으로 몰아넣고 있는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전직지원 연수의 현실 — 문은 있지만, 거의 닫혀 있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일정 기간 이상 복무한 간부는 전역 전 3개월 동안 민간 기업, 기관, 협회 등에서 현장 연수를 받을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간부가 군 외부 현장 환경을 체험하고, 이후 전직에 대한 감을 잡도록 돕는 목적이다.
그러나 실제 연수 참여 간부 수는 전체 전역자의 약 20~30% 수준에 그친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현장연수 대상기관이 극히 제한적이며, 종류도 천편일률적이기 때문이다.
현재 지정 연수기관은 대부분 공공기관, 공공기관 산하의 유관단체, 또는 군과 기존 협약을 맺은 일부 대기업 인사팀 등에 한정된다.
결국 간부들은 자신의 경력과 무관한 단순 업무를 반복하거나, 연수라고 부르기 민망한 ‘형식적인 자리’에 배치된다.
이로 인해 많은 간부들이 “괜히 나갔다 오느니 차라리 전입 전날까지 부대에 남겠다”고 말한다.
문제는 연수기관이 아니라, ‘연수기관 선정 기준’이다
현재 국방부는 연수기관 선정 시
– 국가보훈처 등록 여부
– 공공성과 비영리성
– 인사 시스템이 안정적일 것
– 직무 적합성
등을 기준으로 한다.
그러나 이 기준은 간부의 개인 역량과 진로 방향을 고려하지 않은, 기관 중심의 행정 논리에 가깝다.
예를 들어, IT·디자인·문화 콘텐츠·1인 창업·스타트업 분야로 전직을 희망하는 간부들은 지원할 수 있는 연수처 자체가 없다.
또한 비수도권 지역 간부의 경우 연수기관 자체가 없거나, 거리상 접근이 어려워 사실상 참여가 불가능한 현실도 존재한다.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1. 현장연수 대상기관을 민간 스타트업·중소기업·개인사업체까지 확대해야 한다
현재 연수기관은 대부분 ‘행정적 안정성’과 ‘재무건전성’을 기준으로 한다.
하지만 그로 인해 창의적인 민간 기업, 소규모지만 성장 가능성이 높은 산업군, 비영리 사회적기업, 1인 창업 업종 등은 원천 배제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간부들의 전직 가능성을 특정 직종에만 몰아넣고, 실질적인 선택권을 박탈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를 해결하려면, 연수기관 등록 기준을 완화하고,
– 산업별 수요 기반
– 지역사회 연계
– 개인 맞춤형 매칭 기반의 ‘개방형 연수 제도’로 전환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간부가 직접 희망하는 기관에 연수 계획서를 제출하고, 해당 기관과 국방부 간 약식 협약을 체결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특히 창업을 준비 중인 간부에게는 프랜차이즈 운영 매장, 1인 크리에이터 스튜디오, 지역 공동체 협동조합 등 현실적인 연수처를 직접 선택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2. 연수기관 매칭을 일방선택에서 ‘양방향 제안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현재는 국방부나 각 군 전직지원센터가 연수처를 리스트로 제공하고, 간부가 그중에서 ‘수동적으로’ 선택하는 구조다.
하지만 이 방식은 간부의 경력, 관심분야, 향후 진로 설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따라서 민간 채용 플랫폼과 연계한 ‘양방향 매칭 시스템’을 구축해,
– 연수기관이 먼저 간부를 제안하고
– 간부도 연수처를 검색해 선택하며
– 중간에 군 전직상담관이 컨설팅을 제공하는
능동형 연수 매칭 시스템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런 시스템이 도입되면 간부 개인은 단지 연수를 ‘받는 입장’이 아니라,
‘자기 진로 설계의 주도권을 쥔 참여자’로 변모할 수 있다.
3. 연수기관 등록 방식 간소화 및 재정지원 제도 마련
많은 중소기업, 스타트업, 사회적기업은 연수기관 등록 절차 자체가 복잡하고 까다로워 아예 참여를 포기한다.
‘연수협약서 제출, 법인등기부 등본, 교육계획서, 안정성 평가표’ 등 복잡한 서류 행정 절차가 연수기관 확대의 가장 큰 장벽이 되고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 온라인 등록 한 번으로 연수기관이 등록되고
– 일정 금액의 행정지원비 또는 간접 인건비 보조금을 제공하는 간단하고 매력적인 참여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 또한, 연수기관에 대한 성과 인증제를 운영해,
– 연수 이수 간부의 전직 성공률
– 업무 만족도
– 연수 기관의 채용 전환 비율 등을 평가해
우수 기관에는 포상 또는 인센티브 제공 등의 장려책도 병행해야 한다.
전직지원은 ‘준비가 아닌,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군을 떠나는 간부에게 필요한 건 단순한 행정처리 3개월이 아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진짜 민간 사회와 맞닿을 수 있는 통로이고,
그 시작은 연수의 문을 활짝 여는 일이다.
“국가를 위해 15년을 복무했습니다.
이제 내가 걸어갈 다음 15년의 방향은,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이 말이 간부 전직자의 마지막 회고가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더 많은 현장과 연결된 연수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