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을 지키기 위한 통제, 그 시작은 밖에서부터다
‘군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국방부 장관이 되어야 한다.’
이 말은 오랫동안 대한민국 국방정책의 당연한 전제로 여겨져 왔다. 실제로 1961년 이후 우리나라의 국방부 장관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예비역 장성 출신이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마주한 안보 환경, 국방행정의 복잡성과 변화의 속도는 단순한 작전 경험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할 때다.
국방부 장관의 역할은 ‘지휘’인가, 아니면 ‘운영’인가?
국방부는 전투를 지휘하는 사령부가 아니다. 국방부 장관은 전장을 진두지휘하는 장수가 아니라, 국방이라는 ‘국가 시스템’을 설계하고 조율하는 행정 책임자다. 국방비 60조 원, 장병 50만 명, 방위산업 생태계, 첨단과학기술군으로의 전환까지. 이 모든 영역을 통합적으로 이끌어야 할 자리에서, 우리는 여전히 군 내부의 언어와 문화에 익숙한 인물만을 장관으로 앉히고 있다.
군사 경험은 필요하다. 그러나 군 밖에서 조망할 수 있는 시야는 더더욱 필요하다. 군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민주적 통제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 그것이 바로 ‘문민 국방장관’의 도입이다.
문민 국방장관, 다른 나라는 이미 오래전부터
먼저 미국의 사례를 보자. 미국은 1947년 국방부 창설 당시부터 국방장관은 반드시 현역에서 최소 7년 이상 이격된 민간인이어야 한다고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군을 통제해야 할 장관이 군 내부에 너무 밀착되어 있으면 안 된다는 헌법적 원칙 때문이다. 실제 미국의 국방장관은 정치인, 기업인, 학자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물이 맡아왔으며, 그들은 군의 작전을 지휘하는 대신 국방 정책의 설계, 동맹 조율, 예산 배분 등 거시적 전략을 주도해 왔다.
영국 역시 전통적으로 국방장관직을 민간 정치인이 맡고 있으며, 국방정책의 일관성과 국민에 대한 정치적 책임성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장 작전은 참모총장이, 전략 결정과 예산은 문민 장관이 담당한다는 역할 구분이 명확하다.
독일의 경우도 동일하다. 독일은 전후 헌법(기본법)에서 군에 대한 문민 통제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방장관은 내각 일원인 정치인이 맡고, 독일 연방군의 최고 명령권은 평시에는 국방장관이, 전시에는 총리가 행사하도록 명문화되어 있다. 이처럼 군은 철저히 정치권력의 통제 하에 있으며, 독일군의 오랜 역사와 전통 속에서도 민주주의 원칙이 우선이라는 철학이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스라엘은 주변의 지속적인 안보 위협에도 불구하고, 군 출신이 아닌 정치인 혹은 전문가가 국방장관을 맡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현역군 출신인 참모총장과 긴밀히 협의하되, 군을 외교·정치·산업 전반과 연결하는 브로커 역할을 수행한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전시상황에서도 문민통제를 실제로 작동시킨 대표적인 사례다.
반면, 대한민국은 군과 문민 간 역할 구분이 모호하다. 국방부 장관이 사실상 군 지휘관의 연장선으로 인식되는 구조 속에서는 정책과 전략이 아닌 작전 중심의 사고에 머무르기 쉽다. 실제로 역대 장관들의 연설문을 분석해 보면 군단장, 사단장의 언어와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는 곧 국방부가 군 내부 문법에 익숙한 ‘연장된 사령부’로 기능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문민 장관이 군의 자율성을 높인다
문민 장관의 도입은 군의 지휘권을 흔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역할 분리를 명확히 하여 군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보장하는 방법이다. 장관은 정책과 전략을 설계하고, 군은 작전과 훈련, 부대 운영을 책임지는 구조가 정착된다면, 상호 간의 신뢰와 효율성은 오히려 강화된다.
미국의 경우, 국방장관은 전략 수립과 동맹 조율에 집중하고, 합참의장은 군사적 조언자로서 명확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시스템 아래에서 군은 정치적 부담 없이 전문성을 발휘하고, 민간은 민주적 통제의 책무를 다할 수 있다.
우리의 현실, 여전히 ‘상징’조차 갖추지 못한 통제 구조
현재 국방부 차관의 군내 의전서열은 장관과 4성 장군들보다 한참 아래인 9위에 머무르고 있다. 이는 단순한 상징의 문제가 아니다. 군이 문민 권력을 어떻게 인식하고 존중하느냐는 인식의 출발점이 바로 이 서열 구조에서 시작된다. 미국은 국방부 차관이 합참의장보다 높은 위상을 갖고 있으며, 이는 명확한 ‘문민 우위 체계’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국방부의 문민화 비율은 법적으로 70% 이상이어야 하지만, 실상은 그 안에 예비역 장군과 군 경험자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이른바 ‘문민을 가장한 군 내부자’들이 정책결정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구조적인 문민통제의 실패를 의미하며, 표면적 문민화로는 그 어떤 개혁도 실효성을 가질 수 없다.
이제는 구조를 바꿔야 할 때다
군은 국민의 군대다. 그리고 그 국민은 문민정부를 통해 군을 통제하고, 정책 방향을 설정할 권한을 갖는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국방부 장관직은 이제 더 이상 ‘명예로운 퇴역 군인의 마지막 보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안보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안보를 구실로 한 통제의 회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문민이 국방을 지휘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국방부 장관직을 군정에서 정무로 전환시켜야 할 때다. 그렇게 할 때에야 비로소 군은 군 본연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회복할 수 있으며, 국방은 국가 전체의 전략 안에서 유기적으로 기능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국방부 장관이 민간인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단지 형식적인 민주주의의 상징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군을 군답게 만들기 위한 가장 본질적인 개혁이며, 대한민국 국방의 미래를 위한 선택이다.
군을 지키기 위한 통제는 군 안이 아니라, 군 밖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