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인사 중단 사태가 드러낸 지휘체계의 구조적 위기
2025년 12월 3일, 군의 일부 세력이 개입한 비상계엄 사태 이후 대한민국 군 조직 전반이 깊은 혼란에 빠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후유증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러나 군의 심장부를 천천히 잠식하고 있다. 바로 군 장성 인사 체계의 중단이다. 이른바 ‘장군의 시간이 멈춘’ 지금의 상황은 단지 일정 지연의 문제가 아니라, 군 조직 전체의 동력과 활력, 리더십 구조의 경직화를 초래하는 중대한 위기이다.
국방부가 국회 유용원 의원에게 제출한 ‘장성급 지휘관 재임 현황’ 자료에 따르면, 현재 육군 주요 부대 지휘관들의 재임 기간은 25개월에서 29개월에 이르고 있으며, 이는 전임자들의 평균 재임 기간인 2223개월보다 69개월가량 긴 수치다. 특히 육군 7사단, 11사단, 36사단, 53사단장들은 이미 29개월째 동일 보직에 머무르고 있고, 5군단장과 7공수여단장의 재임 기간 역시 각각 25개월에 달한다. 이는 통상 매년 4월 단행되어 오던 상반기 장성 인사가 올해는 한 차례도 시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지 상태는 비단 중간 지휘관들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현재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육군참모총장, 수도방위사령관, 특수전사령관, 국군정보사령관, 방첩사령관 등 군의 전략적 요직이 모두 직무대행 또는 대리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군 수뇌부 전체가 임시직 체제로 굴러가는 지금, 대한민국 군은 사실상 리더십 공백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이처럼 장기 재임이 지속될 경우, 군 조직의 생리 자체가 마비될 수 있다는 점이다. 군 인사는 단지 자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세대 교체와 리더십의 전환, 전술 철학의 순환, 후속 인재 육성의 기회를 포함하는 종합적인 조직 관리 시스템이다. 지휘관의 교체는 군 내부에 활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시각과 방식이 전파되도록 만든다. 그러나 지금처럼 교체가 장기 정지되면, 각 부대는 변화보다는 관성에 따라 운영되며, 리더십은 고착화되고, 조직 전체는 침체의 길을 걷게 된다.
특히 진급을 앞둔 후배 장교들의 동기 저하는 군의 가장 큰 손실 중 하나다. 상부 보직이 정체되면 자연스럽게 하위 계급의 진급도 정체된다. 이로 인해 능력 있는 장교들이 “굳이 뛰어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는 체념 속에 현상 유지에 머무르게 되고, 결국 개인 역량을 국방력으로 전환시키는 선순환이 멈추게 된다. 유용원 의원의 분석처럼, 이는 지휘·명령 체계의 경직화를 초래하고, 후속 인재의 기회를 봉쇄하며, 작전태세 유지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군의 리더십은 살아 움직여야 한다. 명령을 내리는 사람과 이를 따르는 조직 간에는 신뢰와 긴장, 그리고 긴밀한 교감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장기 재임은 이러한 조직적 긴장감을 무디게 만들며, 상황 대응의 민첩성과 유연성마저 약화시킨다. 특히 지금과 같은 한반도 안보 환경의 불확실성과 첨단 과학기술 기반의 전투체계 전환기에는 리더십 순환을 통한 전략적 전환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지휘관의 철학 하나가 부대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이 시점에서, ‘지휘관이 너무 오래 있다’는 것은 단순한 시간이 아닌, 전략의 지체를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대통령 선거 결과와 국방부 장관의 임명, 인사청문회 절차 등을 이유로 군 인사를 정치일정의 뒤편으로 밀어두고 있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장관의 부재는 단지 상징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인사권을 행사할 수 없게 만드는 제도적 정지 상태를 의미한다. 그 결과, 전체 군의 인사 시스템은 멈춰 있고, 이는 작전보다 더 치명적인 지휘 운용력의 상실을 초래하고 있다.
이제 새로운 정부는 늦어도 단호하게 움직여야 한다. 첫 번째는 국방부 장관의 신속한 임명과 국회 청문 절차의 조속한 마무리, 두 번째는 적체된 장성 인사의 빠른 단행, 그리고 세 번째는 장관 부재 시에도 군 총장 제청에 따라 일정 수준의 장성 인사 교체가 가능하도록 예외 규정을 법제화하는 제도 보완이다. 이를 통해 향후 유사 상황에서도 군 조직이 일정 수준의 자율성과 유연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군 인사는 단지 ‘자리’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 전투력의 본질적 기반이자, 지휘체계가 살아 있다는 증표다. 전쟁은 장군이 아니라 병사가 한다지만, 그 전쟁을 준비하고 설계하는 것은 결국 장군의 역할이다. 그리고 지금, 그 장군들이 너무 오래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놓치고 있는 가장 위험한 시그널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