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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부 없는 군대, 전투력도 없다

떠나는 중견간부,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진짜 이유

by 김재균ㅣ밀리더스

그는 말없이 부대 문을 나섰다. 누구보다 전투 지식이 뛰어나고, 병사들과도 잘 지냈던 5년 차 중사. 수많은 야간 근무와 회의, 보고서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날 그의 책상 위에 놓인 건 사직서가 아닌 짧은 쪽지 한 장이었다. “가족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이탈은 늘 그렇게 조용히 시작된다. 소리 없이 무너지지만, 그 여파는 부대 전체를 뒤흔든다.

2023년, 전역한 간부 수는 9,481명에 달했다. 그중 5년 이상 10년 미만 복무한 ‘중기 복무 간부’는 4,061명으로 전체의 43%를 차지했다. 더 심각한 것은 이탈의 속도이다. 중사급 희망 전역자는 2020년 480명에서 2024년 1,140명으로 증가했고, 상사 계급도 같은 기간 290명에서 810명으로 급증했다. 이는 단순히 “누가 그만뒀다”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숙련자 이탈이 가속화된다는 것은 군 전투력의 핵심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이며, 이탈한 자리에 새로운 인원을 투입한다고 해서 곧바로 전력이 복원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간부들은 왜 떠나는 것일까?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김영곤 연구위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중견간부들이 전역을 결심한 주된 이유를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응답자의 22.54%는 업무 강도에 비해 낮은 금전적 보상을 들었고, 20.14%는 부대관리와 행정 위주의 복무로 인해 보람을 잃었다고 밝혔다. 또 병사 월급이 급격히 인상되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는 응답도 10.55%, 잦은 전출과 전입으로 가족과 장기간 떨어져 생활해야 한다는 이유가 9.59%에 달했다. 수치로 보면 ‘돈’이 가장 큰 이유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더 깊은 구조적 문제들이 존재한다.


먼저, 간부의 하루는 전투보다 보고에 더 가깝다. 행정보고, 회의자료, 민원 대응 등 본질과는 무관한 일들에 시간을 소모하고, 전투기술은 점점 뒷전으로 밀린다. 병사와 함께 뛰는 리더가 되기보다, 형식과 절차에 매몰된 관리자가 되어간다. “나는 전투원이 되고 싶었지, 보고서 작성 전문가가 되고 싶진 않았다.” 한 중견간부의 고백은 단순한 불만이 아니다. 현장의 분위기를 압축한 단어다.


여기에 병사 월급의 인상은 또 다른 균열을 낳고 있다. 병장의 월급이 200만 원을 넘는 시대가 되었지만, 간부의 기본급은 정체되어 있다. 책임은 간부가 지되, 보상은 평준화된 구조는 간부에게 “더는 이 직업에 미래가 없다”는 회의감을 심어준다. 병사는 사회로 돌아가면 된다. 하지만 간부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인생을 오래도록 걸어야 한다. 당직근무, 사고 책임, 민원 대응의 모든 부담이 간부에게 쏠리는 구조에서 ‘간부로 남는 이유’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여기에 더해 간부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현실은 바로 가족과의 단절이다. 부대 전출이 잦아지는 구조 속에서 기혼 간부들은 가족을 뒤로한 채 군 복무에 매몰된다. 아이 교육, 배우자 직장, 부모 돌봄 등 가족의 삶은 늘 간부 복무의 뒷전으로 밀린다. 군 복무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것이 ‘전투’가 아닌 ‘가정’이라면, 어떤 간부도 오래 머물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수많은 간부들이 그렇게 떠나고 있다.


간부 전역을 가속화시키는 또 하나의 변수는 군인연금 개혁 논의다. 사실 간부들은 제도 개편 자체보다 그 절차의 불투명성에 더 큰 불안을 느낀다. 언제, 어떻게, 누가, 어떤 방식으로 바꿀 것인가에 대한 설명 없이 “바뀔 수 있다”는 이야기만 계속되니 오히려 불안감만 가중되는 것이다. 김영곤 연구위원은 정부가 연금 개혁의 방향성과 절차를 명확히 공개하고, 군 구성원이 참여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는 단순한 참여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다.


그렇다면 무엇을 바꿔야 할까? 첫째, 금전적 보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단순 월급 인상이 어렵다면 성과수당, 장기복무 인센티브, 퇴직금 확대 등 간접 보상 체계를 설계해야 한다. 둘째, 병사와 간부 간 역할 재정립이 필요하다. 일부 당직 근무나 민원 대응을 병사와 나누고, 간부가 모든 책임을 떠안는 구조를 해소해야 한다. 셋째, 행정 경감과 디지털 기반 업무환경을 도입해 간부가 본래 역할인 리더십과 훈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넷째, 가정친화 인사 제도 마련이 절실하다. 동반 근무 확대, 지역 순환제도, 기혼자 배려 전출 등 가족을 고려한 근무 형태가 군 복무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연금 개혁은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구성원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중견간부의 이탈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병사들이 믿고 따를 모델이 사라지고, 조직의 전투지식이 유실되며, 간부를 꿈꾸는 청년들의 눈빛이 흔들리게 된다. 떠나는 간부 한 명은 ‘경험’을 들고 나가는 것이며, 다시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선 수년이 필요하다. 결국 간부 이탈은 병사 이탈보다 훨씬 큰 손실이다.

우리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계속해서 간부를 ‘갈아 넣는’ 방식으로 버틸 것인가, 아니면 간부가 ‘남고 싶은 조직’을 만들어낼 것인가. 조직문화, 보상체계, 가족 정책, 행정 구조, 인사 시스템까지 바뀌지 않는다면 중견간부의 이탈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간부는 단순한 직책이 아니라, 전투력 그 자체다. 그들은 전장에서 싸우기도 하지만, 외면과 불신, 시스템의 불합리함과도 싸운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지칠 때, 간부는 떠난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하나다. 간부로 살아가는 삶이 존중받고, 간부로 남는 길이 자랑스러울 수 있도록 조직을 재설계하는 일. 그것만이 군의 미래를 지키는 첫걸음이다.


직업군인은 더 큰 책임을 진다. 그러니 더 큰 존중을 받아야 한다. 그 진리를 외면하는 한, 강한 군대도, 충성도도, 전투력도 온전히 지켜질 수 없다. 그리고 지금, 그 진리를 되살려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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