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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79세 생일에 610억 열병식 군사퍼레이드

워싱턴의 열병식이 말해주는 권력과 군대의 새로운 그림자

by 김재균ㅣ밀리더스

2025년 6월 14일, 워싱턴 D.C.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컨스티튜션 애비뉴에서 미 육군 창설 25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장엄한 대열 속에서 70톤에 달하는 에이브럼스 전차 28대가 차례로 도로를 밟고 지나가며, 그 뒤로 스트라이커와 브래들리 전투차량이 행진을 이어간다. 하늘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운용된 B-25 폭격기가 비행하고, 무려 50대의 헬리콥터가 워싱턴 상공을 가른다. 그 열기와 굉음은, 단순한 국군 창설의 의미를 넘어선 어떤 상징을 향해가고 있다. 그날은 우연히도, 아니 어쩌면 계획된 듯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79번째 생일과 정확히 겹친다.

이번 열병식은 명분상 육군의 창설 250주년을 기리는 행사지만, 많은 미국 시민들에게 이 퍼레이드는 단순한 기념을 넘어선 정치적 연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탱크와 장갑차, 전투기와 헬기, 그리고 6,400여 명의 군 병력이 대통령의 생일에 맞춰 도심을 가로지르는 그 장면은, 국가의 역사보다 한 개인의 권위를 더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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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논란은 이 퍼레이드가 진행되는 시점에 있다. 워싱턴에서는 생일 축하를 위한 열병식이 준비되는 동시에,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불법 이민 단속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향해 실제 군 병력이 투입되어 강경 진압이 이뤄지고 있다. 한 쪽에서는 시민을 진압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대통령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군이 동원된다. 이처럼 동일한 군 조직이 정반대의 목적으로 같은 시기에 운용되는 장면은, 지금 미국 내에서 군이 정치적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는 불편한 현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는 단순한 시민사회의 불안이 아니라, 미국 군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재향군인 단체의 한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군을 헌법에 충성하는 전문 전투 부대가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상징을 위한 장식품처럼 다룬다"며 강하게 비판했고, 해병대 출신 활동가 재너사 골드벡은 "워싱턴으로 탱크가 들어오고, 한 사람의 이름 아래 4,500만 달러가 쓰이는 것은 반(反)미국적 행위"라고 일갈했다.


이 열병식을 위해 투입되는 예산은 최소 2,500만 달러에서 최대 4,500만 달러, 한화로 약 610억 원에 이른다. 이 막대한 비용은 육군이 직접 부담하겠다고 했지만, 연방정부와 시정부가 추가적으로 투입하는 간접 비용까지 포함하면 실질적인 예산은 더 클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퍼레이드로 인해 워싱턴 도심 도로는 탱크 하중으로 손상될 가능성이 크고, 전문가들은 **도로 복구 비용만 약 1,600만 달러(217억 원)**에 이를 것이라 경고한다. 워싱턴의 주요 도로들은 중량 36톤까지만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지만, 탱크 한 대만 해도 그 두 배에 가까운 70톤에 달한다. 이는 단순한 ‘도심 혼잡’이나 ‘교통 통제’ 수준이 아니라, 도시 기반시설이 군사 전시에 맞게 재설계되어야 할 정도의 충격이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상황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트럼프 행정부는 하버드대 등 주요 대학들의 연구 보조금을 대폭 삭감하며 '재정 긴축'을 외치고 있다는 점이다. 학문과 과학에 들어갈 돈은 줄이면서, 대통령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수백억 원의 세금이 쓰이고 있다. 이는 단순한 예산 우선순위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자가 어떤 가치를 우선하는가를 보여주는 정치적 메시지이기도 하다.


워싱턴 시민들도 침묵하지 않고 있다. 열병식 당일에는 'No Kings(왕정 반대)'라는 이름의 대규모 반대 집회가 예고되어 있으며, 이미 수백 명이 사전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그들은 탱크의 등장, 비행기 굉음, 불꽃놀이 아래에서 ‘한 사람의 잔치’를 위한 민주주의의 침묵을 우려한다. 그리고 묻는다. “군은 누구의 것인가?” “퍼레이드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지금까지 미국은 군사 퍼레이드를 자제해왔다. 세계 1위의 군사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무력을 통해 국가의 위엄을 과시하기보다, 군이 정치적 중립성과 시민 헌신을 지키는 존재로 남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열병식은 그런 전통을 깨고 있다. 그것도 군의 창설 기념이라는 포장을 두른 채, 한 사람의 이름을 위한 이벤트로 뒤바뀌고 있다.


이 퍼레이드가 끝나고 난 뒤, 도로 위에는 균열이 남고, 공중에는 폭격기의 흔적이 남을 것이다. 그러나 진짜 무거운 흔적은 미국 시민들의 마음 속에 남게 될 질문일 것이다. “군이 대통령의 장식물이 될 수 있는가?” “국가의 무력은 정치 권력에 얼마나 복속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침묵을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는가?”

역사는 늘 반복된다. 과거에도 권위주의 정권은 권력의 정점에서 군을 자신의 몸처럼 움직였고, 그것은 곧 시민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억누르는 도구로 작용했다. 트럼프의 열병식은 그 서사의 잔상을 너무나 뚜렷하게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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