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군복 입은 워킹맘의 현실, 전역고민합니다.

여군 85% “자녀 양육이 어려워 전역 고려”

by 김재균ㅣ밀리더스

“대한민국 군복무는 내 인생의 사명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아플 때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현실은 내 사명을 회의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말은 한 육군 여성 부사관이 기자에게 남긴 말이다. 그는 세 자녀를 둔 엄마다. 대대 정훈장교로 근무하며, 누구보다 책임감 있게 자신의 임무를 다해왔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말 진지하게 전역을 고민했다. 이유는 단 하나, ‘아이’ 때문이었다.

이러한 고민은 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발표된 ‘2024년 군 양성평등지표 조사’에 따르면, 현역 여군의 85%가 자녀 양육의 어려움으로 전역을 고려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군 조직 내에서 ‘일과 가정의 양립’이 여전히 가능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이는 단순한 여성의 개인적 고충을 넘어, 군의 인력 유지력과 조직의 지속 가능성에 관한 구조적 문제로 이어진다.

주말부부.png


육군에 따르면 2025년 1분기 부사관 희망 전역 인원은 무려 668명. 이는 역대 최고치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여성 간부인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군 생활과 자녀 양육 병행의 어려움’에 대해 질문했을 때 여군 10명 중 8명 이상이 전역 고민을 했다고 밝힌 점은 단순한 현상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해당 보고서에서 나타난 평균 군 양성평등지표 종합 점수는 63.63점. 그중에서 ‘양성평등 근무환경’은 77.77점으로 높은 편이었지만, ‘일·가정 양립 여건’은 48.98점으로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특히 미취학·초등 자녀 돌봄 지표 점수는 29.62점으로 충격적인 수치를 보였다. 이는 돌봄 환경이 거의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보고서는 남성과 여성 군인의 육아휴직 이용률에서도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여성 군인 및 군무원은 45.7%가 육아휴직을 이용한 반면, 남성은 고작 9.5%에 불과했다. 이는 제도의 구조적 미비라기보다 조직문화의 문제다. 일각에서는 ‘남군이 육아휴직을 쓰면 눈총을 받는다’, ‘돌아오면 보직이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다. 제도가 존재해도 활용할 수 없다면 그것은 죽은 제도다. 특히 군은 상명하복의 수직적 구조를 가지고 있기에, 이러한 분위기는 더욱 강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2027년까지 여군 비율을 현재의 약 11%에서 15.3%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현실은 여군의 지속 복무율 자체가 낮은 상황이다. 여군을 양성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오랫동안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군에서 10년 넘게 복무한 여군 대위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심각한 갈등을 겪었습니다. 아이에게 제대로 된 돌봄을 제공하지 못했고, 결국 전역을 결심했죠.” 이런 사례는 반복된다. 여군 확대 정책은 ‘유입’보다 ‘유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야 한다.


최근 2040세대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직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로 ‘일과 삶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을 꼽았다. 이는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다. 변화하는 시대정신이다. 군도 예외일 수 없다. 특히 자녀 양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30대 초중반 여성 간부들에게 있어, 군 생활은 점점 부담이 되는 영역이 되어가고 있다. 이들이 조직을 떠나는 이유는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군 조직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한 직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군이 돌봄 지원을 단순한 ‘복지’로 여긴다면 발전은 없다. 이제는 돌봄을 ‘인력 유지 전략의 핵심 축’으로 바라봐야 한다. 가족친화형 조직문화 구축, 군 직장 어린이집 확충, 탄력적 근무제도 확대 등은 단순히 ‘선택지’가 아니라 ‘필수조건’이다.

특히 중장기적 관점에서 군인 가족의 삶을 돌보는 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전투력 유지 전략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군 간부의 퇴직은 단순한 인원 손실이 아닌, 조직적 리더십 공백과 전투력 하락으로 이어진다.


국회 국방위원회 유용원 의원은 “이제는 군복이라는 상징만으로 무한한 희생을 요구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군 당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일·가정 양립 제도를 장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의 말처럼, 지금의 제도는 수동적이다. 사용을 ‘허용’하는 수준을 넘어, 조직이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독려하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현재 탄력근무제 이용률의 성별 격차는 22.39점. 남성의 참여가 극히 저조하다는 뜻이다. 이는 남성 군 간부 역시 ‘양육’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에서, 젠더 중립적 가족정책의 필요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조직 문화의 변화는 규정이 아니라 사람의 의지에서 시작된다. 제도는 있되 사용되지 않는 조직, 복지는 있지만 공허한 조직이 되지 않으려면 용기 있는 리더의 결정이 필요하다.


정부의 여군 확대 목표는 시대적 흐름에 부합하는 방향이다. 하지만 단지 비율만을 높이는 데 그쳐선 안 된다. 여군이 지속적으로 복무하고, 경력 단절 없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즉, 지속률(Retention Rate)이 더 중요한 지표가 되어야 한다.

“군은 과연 여군에게 ‘오래 머물고 싶은 직장’인가?”
이 질문에 당당하게 ‘예’라고 답할 수 있을 때, 진정한 군 양성평등은 시작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트럼프 79세 생일에 610억 열병식 군사퍼레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