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생계비 절반도 못 받는 참전용사들
올해도 현충일이 지나갔다.
병역명문가 친구가 나에게 한 영상을 보내줬다.
영상은 낡은 단칸방에서 홀로 생활하는 한 92세 참전용사의 일상을 담고 있었다. 그는 6·25 전쟁이 발발하던 1950년, 고작 16살의 나이로 총을 들고 전장에 나섰던 분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정부와 지자체에서 나오는 보훈 수당을 합쳐도 70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었다.
영상을 본 나는 화가 치밀어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 분노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마주했을 때의 격분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태극기가 조기로 걸리고, 묵념 사이렌이 울리며 국민들은 잠시나마 조국을 지킨 이들을 기억한다. 하지만 이 하루의 추모와 찬사는, 그들이 살아가는 365일의 고단함을 덮을 수 없다.
92세의 피복진 할아버지처럼 대부분의 참전유공자는 90세를 넘긴 초고령자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홀로, 가난하게, 사회적 관심에서 멀어진 채 살아가고 있다. 6·25 전쟁, 월남전에서 조국을 지킨 대가가 고작 70만 원도 안 되는 수당이라면, 이 나라는 과연 누구를 기억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가 누리는 오늘의 자유는, 총 대신 곡괭이를 들고 나라를 다시 일으킨 사람들, 그중에서도 목숨을 걸고 전장을 누볐던 참전유공자들의 희생 위에 서 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여전히 조용한 그림자에 머물러 있다. 한낱 상징으로 소비되는 기억, 행사장 맨 앞줄에만 존재하는 존경, 생계는 본인이 책임져야 하는 명예.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견디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한 그날, 피복진 할아버지는 고작 16살이었다. 미성년자였지만, 군번을 받았고, 총을 들었으며, 전우들과 함께 전장을 누볐다. 그의 청춘은 포화 속에서 소리 없이 묻혔다. 그리고 70여 년이 흐른 지금, 그는 92세의 노인이 되어 충북 청주 외곽의 작은 주택에서 혼자 살아가고 있다.
피복진 할아버지에게 국가가 지급하는 것은 매달 45만 원의 참전 명예수당이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로 정해 추가로 주는 보훈 수당이 16만 원. 도합 61만 원이다. 연금까지 포함하면 그가 한 달에 손에 쥘 수 있는 금액은 약 69만 원 남짓이다.
하지만 이 금액은 2025년 1인 가구 기준 최저 생계비인 143만 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매일 약값과 공과금, 최소한의 식비를 걱정하며 살아가는 삶. 그것이 바로 지금의 ‘국가유공자의 실상’이다.
더 큰 문제는 지역별 보훈수당의 격차다. 피복진 할아버지가 사는 청주시의 경우 매달 16만 원을 지급하지만, 같은 충북 내에서도 증평군은 25만 원, 반면 제천시는 청주와 마찬가지로 16만 원에 머문다. 같은 전쟁에 참전했어도, 살고 있는 주소지에 따라 지원금이 달라지는 현실은 유공자들에게 또 다른 모욕이 된다.
충남 서산시는 지방 수당만 50만 원을 지급하며 전국 최고 수준의 예우를 실현하고 있다. 반면 대다수 기초지자체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최소 수준만을 지급하거나, 아예 자체 수당조차 마련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피복진 할아버지는 말한다.
“부족해도 절약해서 살았으니까… 혼자 사니까 그냥 꿋꿋하게 살아 나가는 거죠.”
이 말은 단순한 개인의 소박함을 넘어서, 국가가 감당하지 않은 몫을 개인이 감내하고 있다는 사실의 고백이다. 실제로 많은 참전용사들은 “나는 자랑스럽지만, 나라가 나를 자랑스러워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한다.
충북지부 이태근 6·25참전유공자회장은 이렇게 호소한다.
“6·25 전쟁 때 목숨 걸고 싸웠고, 전쟁 끝나고도 산업 현장에서 일하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세웠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보면, 그분들을 충분히 예우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더 비극적인 것은 이 수당이 대부분 유족에게 승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참전유공자가 세상을 떠나면, 남겨진 배우자 생계의 버팀목을 순식간에 잃게 된다. '나라를 위해 싸웠던' 아버지는 죽고 나면 국가 기록에서 사라지며, 그의 가족은 다시 민간 기초수급자로 돌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유공자들은 생의 끝자락에서 자긍심 대신 가난의 대물림을 걱정한다. 이대로라면, 유공자 제도는 한 사람의 생애에만 국한된 일회성 지원에 불과한 셈이다. ‘기억’과 ‘예우’는 죽은 자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은 자의 삶 속에서도 이어져야 진정한 보훈이 아닐까.
현재 충북에 생존해 있는 6·25 참전유공자는 약 980여 명, 이 가운데 95%가 90세 이상이다. 하루하루가 고비이고, 매달이 마지막일 수 있는 고령자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전쟁 영웅들이 혼자, 아프게, 조용히 세상을 떠나고 있다. 국가는 그들의 마지막을 기려주는가?
이제는 ‘예산 부족’이란 핑계를 접고, 지금 살아 있는 유공자들에게 실질적인 지원을 시작해야 할 시간이다.
참전 명예수당 전면 인상
전국 통합 보훈수당 기준 마련
유가족 승계 제도 확립
고령 유공자 주거·의료 전담 제도 구축
청년 세대는 냉철하다. 희생을 강요하는 시대는 끝났다. MZ세대에게 국가란 함께 책임지는 공동체이지, 일방적으로 충성을 요구하는 주체가 아니다. 이들이 군대에 입대할 때, ‘조국수호’는 단지 의무가 아니라, 나중에라도 나를 국가가 기억하고 존중해줄 것이라는 최소한의 신뢰에 기반한다.
하지만 지금 보훈의 현실은 그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 누군가의 청춘이 국가를 위해 사라졌지만, 노년엔 아무도 돌보지 않는다. 누군가는 총을 들고 전쟁터를 누볐지만, 병원비와 월세 앞에서는 그 모든 무용담이 무력해진다. 이런 현실을 보고 자란 청년들에게 국가는 어떤 설득을 할 수 있을까?
정말로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지금의 국가유공자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것이 미래의 유공자가 될 청년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는가. 만약 한 국가가 과거의 영웅을 이렇게 홀대한다면, 미래의 영웅은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보훈은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미래를 설계하는 사회적 계약이기도 하다.
지금 살아있는 유공자를 책임지는 일은 단지 그 한 사람을 위함이 아니라, 앞으로도 국가를 위해 헌신할 누군가에게 신뢰를 제공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