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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만 군대 가는 시대는 끝났다? 여성 현역병 논의

by 김재균ㅣ밀리더스

한국의 병역 제도는 오랜 세월 동안 ‘남성의 의무’로 고정되어 있었다. 헌법과 병역법이 명시한 조항에 따라, 대한민국의 모든 남성은 일정 연령이 되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 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명제가 흔들리고 있다.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인구 구조는 급속히 축소되고 있다. 불과 몇 년 사이 군의 상비병력은 11만 명이 줄었으며, 전문가들은 2040년이면 35만 명까지 감소할 것으로 내다본다. 이처럼 병력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누가 앞으로 이 나라를 지킬 것인가’라는 질문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현실적 과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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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심에 ‘여성 현역병제’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논의된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단순한 성평등 논쟁이 아니라 인구절벽과 국가안보의 지속가능성이라는 거대한 문제 속에서 제기되고 있다. 저출생으로 인해 남성만으로 병역 자원을 충원하기 어려워진 지금, 여성이 병역 의무를 함께 지거나 자원입대를 통해 복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올해 6월, 한 20대 청년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그는 병역법 제3조 1항이 ‘남성에게만 병역의무를 부과한다’는 점에서 헌법의 평등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단순하지 않았다. 군 복무는 단지 청춘의 시간을 국가에 바치는 일이 아니라, 복무 후 사회로 돌아왔을 때 발생하는 경력단절과 소득손실, 그리고 진로의 제약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남성만이 이 부담을 떠안는 구조가 지속된다면, 성별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과 젠더 갈등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이 청구는 2010년, 2011년, 2014년, 2023년에 이어 다섯 번째로 제기된 병역 관련 헌법소원이었다.


현재 병역법은 여성의 군 복무를 ‘지원에 의한 선택사항’으로만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여성이 군인이 되려면 스스로 지원해야 하고, 장교나 부사관으로만 임용될 수 있다. 병사로 복무할 수 있는 길은 여전히 막혀 있다. 그러나 인구 절벽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이제 정치권에서도 “여성에게도 현역병 복무의 선택권을 주자”는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국민의힘 김미애, 주호영 의원을 비롯한 11명의 의원이 공동 발의한 병역법 개정안은 성별에 관계없이 지원자가 현역병으로 복무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강제 징병이 아닌 자발적 참여의 형태로 여성에게도 복무의 기회를 열어주자는 것이다.


병력 자원 감소는 더 이상 예측이 아닌 현실이다. 2019년 56만 3000명이었던 상비병력은 2025년 현재 45만 명으로 줄었다. 10개 사단 규모의 병력이 불과 6년 만에 사라진 것이다. 전쟁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병력은 급속히 감소했다. 반면 북한은 여전히 128만 명 수준의 병력을 유지하고 있다. 단순 병력 수로 비교하면 남북의 비율은 1대 2.8이다. 전력 현대화와 과학화 장비 도입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AI와 드론이 모든 병사를 대체할 수는 없다. ‘사람이 없는 군대’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병역제도의 근본적 재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세계는 이미 성중립적 병역제의 실험을 시작했다. 2016년 노르웨이는 유럽 최초로 여성 징병제를 도입했다.


남녀 구분 없이 동일한 체력기준과 필기시험을 통과한 이들 중 10~15%를 선별해 복무시키는 방식이다. 매년 남성 7000명, 여성 2000명이 징병되며 복무기간은 12개월이다. 국가는 군 복무자에게 세금 감면, 대학 입시 가산점, 각종 수당을 제공하며 군 복무를 일종의 ‘사회참여 경험’으로 인식시켰다. 덕분에 복무 만족도는 높다. 스웨덴은 2010년 징병제를 폐지했다가 러시아의 위협이 커지자 2017년에 부활시켰고, 여성에게도 병역의무를 부과했다. 덴마크 역시 2027년으로 예정했던 여성 징병제를 2025년으로 앞당겨 시행에 들어갔다.


이들 국가가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핵심은, 저출산과 안보위기를 ‘양성평등의 확장된 가치’ 속에서 해결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남성과 여성 모두가 조국 방위의 주체로 서야 한다는 공감대가 사회 전반에 자리 잡았다. 그러나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노르웨이는 처음엔 남녀가 같은 내무반을 사용하는 실험을 진행했지만, 성 인식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사생활 문제가 불거지면서 결국 폐지됐다. 제도는 성평등을 지향했지만, 문화와 인식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이스라엘의 사례는 또 다르다. 건국 당시부터 남녀 모두에게 병역의무를 부과해온 이스라엘은 현재 여성의 복무 기간이 24개월, 남성은 32개월이다. 특히 2023년 하마스의 기습 공격 이후, 여성 전투병 비율은 전쟁 전보다 7% 증가한 21%에 달했다. 전투 임무의 절반 이상, 전체 직책의 90%가 여성에게 개방되었다. 여성은 이스라엘군의 전략 자산이자 국가의 생존을 떠받치는 축이 되었다. 그들은 단지 성별이 아닌, ‘의지’와 ‘능력’으로 평가받는다.


한국도 여성이 병사로 복무할 수 있게 된다면 여군 비율은 급격히 늘어날 것이다. 현재 장교와 부사관 중 여군 비율은 10.8%로, 창군 이래 처음으로 10%를 넘었다. 국방부는 2027년까지 이 수치를 15.3%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여성을 단순히 숫자로만 늘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가장 시급한 것은 병영 인프라다. 2024년 기준 육군 전방 GOP의 40%에는 여성 화장실이 없고, 절반 가까운 부대에는 샤워시설이 없다. 생활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여성 병역제는 현실화되기 어렵다. 여기에 성범죄 문제도 여전히 심각하다. 지난 5년간 군 내 성범죄는 5000건 이상 발생했다. 인권과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병영에서 성평등한 복무는 불가능하다.


진급 구조의 불평등도 심각하다. 2015년부터 2024년까지 대령에서 준장으로 진급한 장교는 534명인데, 이 중 여군은 15명뿐이다. 준장에서 소장으로 진급한 여군은 단 2명, 소장 이상으로 오른 여성은 단 한 명도 없다. 조직 내 ‘유리천장’은 여전히 존재한다. 여성이 군에 입대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하더라도, 진급과 보직의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제도는 명목상의 평등에 머무를 것이다.


육군사관학교 교수진은 최근 논문에서 여성 자원입대의 실현 가능성을 경제적 인센티브 측면에서 분석했다. 연구진은 병역제의 매력도를 높이기 위해선 공정성 확보와 함께 실질적인 경제적 보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현역병은 월 150만 원의 급여와 내일준비적금 55만 원을 포함해 최대 205만 원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 학자금 지원, 취업 연계, 복무 후 사회복귀 프로그램이 더해진다면 군 복무는 ‘희생’이 아닌 ‘기회’로 인식될 수 있다. 이는 여성뿐 아니라 청년 전체에게 병역의 가치를 재정의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2023년 판결에서 남성만 병역의무를 지는 병역법은 합헌이라고 결정했지만, “장기적으로 양성징병제나 자원입대형 모병제로의 전환을 검토해야 한다”고 보충 의견을 냈다. 이는 법적 강제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결국 여성 병역 논의의 핵심은 ‘의무’가 아니라 ‘참여의 선택권’이다. 여성에게 병역의 문을 여는 것이 평등으로 가는 길일 수도 있지만, 충분한 사회적 공감과 인식 전환이 없다면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


여성 현역병제는 단순히 병력을 보완하기 위한 대책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 정체성, 성평등, 안보의 지속가능성이 맞물린 거대한 담론이다. 김미애 의원은 “병력 절벽 앞에서 성별을 가리지 않는 자발적 참여의 문을 여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강조했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성별이 아니라 ‘의지’다. 나라를 지키려는 마음이 있는 이들에게 복무의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 진정한 평등이며, 이것이야말로 인구절벽 시대 대한민국 안보의 새로운 해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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