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대한민국의 국방 현실은 단순히 병력 수의 감소에 그치지 않고 국가 안보의 근간을 뒤흔드는 심각한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이른바 병력 절벽이라는 표현은 더 이상 과장된 수사가 아니다. 실제로 한국군 상비병력은 불과 몇 년 만에 급격히 감소했으며, 이 추세가 이어질 경우 머지않아 35만 명 시대가 현실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통령은 이러한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인공지능 전투로봇과 무장 자율드론, 초정밀 미사일을 중심으로 한 스마트 정예 강군 구상을 내놓으며 50명의 정예 인력과 첨단 복합 무기체계만 있으면 수천, 수만의 적을 상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발언은 미래 지향적이고 도전적인 비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동시에 군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왜냐하면 전쟁의 본질은 여전히 사람이며, 전장을 점령하고 유지하는 힘은 결국 병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한국군의 상비병력 변화는 그 속도가 충격적이다. 2020년 65만 명이던 한국군은 2025년 현재 45만 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은 본래 이러한 수준의 병력 감소가 2033년경에나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불과 5년 만에 현실이 되었다. 더 나아가 현재의 출산율과 인구 구조를 고려하면 2038년에 도래할 것으로 보았던 40만 명 이하의 국면이 2030년대 초반에 이미 도래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는 단순한 통계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 전력 운용 능력과 국가 전략의 기초를 위협하는 심각한 변화다. 반면 북한은 여전히 128만 명의 상비군을 유지하고 있으며, 민방위와 예비 전력을 합치면 500만 명 이상을 동원할 수 있는 동원 체계를 갖추고 있다.
대통령이 강조한 스마트 강군 구상은 세계 군사 흐름과 일정 부분 맞닿아 있다. 미국은 이미 ‘멀티 도메인 작전(Multi-Domain Operations)’ 개념을 발전시키며 육·해·공·우주·사이버 영역을 통합한 전투 방식을 추구하고 있고, 이스라엘은 드론과 인공지능을 활용한 정밀 타격 능력을 가자지구 작전에 적극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국가 역시 첨단 무기와 병력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으며, 병력의 절대적 부족을 기술로만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한국이 선택한 길은 국제적 흐름과 달리 병력 절벽을 기술만으로 상쇄하겠다는 위험한 발상으로 비칠 수 있다.
군사학자와 예비역 장성들은 병력이 군사력의 상수라고 지적한다. 아무리 첨단 무기가 발전해도 병력 규모는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로 남아 있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수적 우세를 전쟁의 첫째 원칙으로 꼽았고, 이는 고대의 알렉산드로스 전쟁에서부터 현대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입증되고 있다. 병력이 많으면 전선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고, 측방 기동이나 예비대 투입 같은 전략적 선택이 가능하다. 반대로 병력이 부족하면 기동의 자유가 사라지고, 전선 유지가 불가능해지며, 결국 장기전과 소모전에 취약해진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양측 모두 드론과 첨단 무기를 대거 투입했지만 3년 이상 이어지는 전쟁에서 승패를 가르는 것은 결국 지속적으로 투입 가능한 병력 자원의 크기였다.
미군의 최소계획비율 교리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미군은 방어 시 아군 병력이 적의 3분의 1, 공격 시에는 적의 3배 이상이어야 작전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규정한다. 이를 한국군에 대입해 보면, 북한군 128만 명에 맞서기 위해서는 최소 50만 명의 상비병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군은 이미 45만 명 수준으로 줄었고, 가까운 미래에는 35만 명 수준까지 감소할 수 있다. 이 경우 방어조차 불가능해진다. 현행 한미연합작전계획은 한국군이 초기 방어선을 지키고 미군 증원이 이루어져 북진 반격을 하는 구조인데, 초기 방어선이 붕괴되면 이후의 반격은 성립할 수 없다. 따라서 병력 절벽은 단순한 숫자의 변화가 아니라 한미동맹 작전체계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구조적 위기다.
현장의 징후는 이미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GOP와 해안 경계 병력이 줄어들어 경계 임무에 공백이 발생하고 있으며, K9 자주포 같은 핵심 화력 장비조차 인력 부족으로 정상 운용이 어려운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보병 소총수의 부족은 전투부대의 기본 체력이 급속도로 약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전투 장비가 아무리 첨단화되더라도 이를 운용하고 전장을 지키는 것은 사람이다. 1,000억 원짜리 스텔스 전투기와 1조 원짜리 이지스함도 운용할 병력이 없다면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역사적 사례 역시 같은 교훈을 준다. 6·25 전쟁에서 한국군은 초기 북한군의 10만 명 이상 병력 공세에 밀려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해야 했다. 당시 국군의 장비와 전투력 수준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도 병력 열세가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결국 전세를 반전시킨 것은 미군을 비롯한 UN군의 대규모 병력 증원이었지, 첨단 무기가 아니었다. 걸프전에서는 미군이 첨단 정밀 무기를 투입해 단기간에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 기반에는 50만 명 이상의 병력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전개된 사실이 있었다. 첨단 무기와 병력은 대체 관계가 아니라 보완 관계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해외 국가들의 흐름도 이 점을 잘 드러낸다. 독일은 최근 징병제 재도입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고 있고, 스웨덴은 이미 징병제를 부활시켰다. 프랑스는 예비군 제도를 강화하고 병력 풀을 확충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첨단 무기 개발과 병력 확보를 병행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첨단화된 현대전 시대에도 일정 규모 이상의 병력 확보가 필수적이라는 국제적 공감대를 반영한다.
따라서 대한민국이 병력 절벽 상황에서 자주국방을 이루기 위해서는 병력 확보와 기술 혁신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대통령의 스마트 강군 구상은 분명 미래 지향적이지만, 당장의 병력 부족 문제는 기술로만 메울 수 없다. 기술은 개발과 실전 배치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그 사이에 병력 공백은 현실로 다가온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병력 절벽을 완화하거나 지연시킬 수 있는 정책적 해법이다.
대한민국이 직면한 선택지는 명확하다. 첫째는 복무 기간 연장이다. 현재 18개월로 단축된 복무 기간을 21개월이나 24개월로 되돌리는 방안은 정치적 부담이 크지만, 병력 확보를 위해 불가피할 수 있다. 둘째는 여성 징병제 도입 논의다. 덴마크나 노르웨이처럼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의무 복무를 부과하는 제도는 병력 자원 확보의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셋째는 예비군 제도의 근본적 개혁이다. 현재의 형식적인 예비군 훈련으로는 전시 전투력 유지가 불가능하다. 예비군을 실질적 전투력으로 전환하지 못한다면 전시 동원 체계는 유명무실해질 것이다. 넷째는 첨단 무기의 조기 전력화다. 드론과 AI 무기체계가 연구실 단계를 넘어 실제 전장에 배치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가 관건이다.
21세기 전쟁은 분명 과거와 다르다. 드론이 폭탄을 투하하고, 사이버 공격이 전투의 시작을 알리며, 인공지능이 작전 결정을 보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첨단 무기와 전략의 마지막을 완성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이다. 사람이 전장을 점령하고 사람이 전투를 마무리하며 사람이 승리를 확정한다. 따라서 대한민국이 병력 절벽이라는 위기 앞에서 선택해야 할 길은 분명하다. 최소 50만 명의 상비병력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첨단 무기체계의 조기 전력화를 병행해야 한다. 기술만으로는 병력 부족을 상쇄할 수 없고 병력만으로는 첨단 전쟁을 감당할 수 없다. 병력과 기술의 균형, 이것이 병력 절벽 시대 대한민국 군대가 지향해야 할 진정한 스마트 강군의 모습이다. 이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국가 생존을 위한 냉혹한 현실 인식이며, 미래 세대를 위한 안보의 최소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