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기평가 폐지, 단순한 문턱 낮추기가 해답일까
‘2025년 후반기 학사사관’ 추가 공고를 보며
육군이 2025년 후반기 학사사관(예비) 선발 계획에 대해 추가 공고를 발표했다.
이번 공고의 핵심은 명확하다. 바로 필기평가가 전면 폐지된 것이다.
기존에는 필기시험 15점, 대학 성적 25점으로 평가되던 방식이,
이제는 대학성적(수능·내신 포함) 40점으로 대체된다.
즉, 시험 없이도 대학 성적과 고교 내신만으로 간부 후보생을 평가하겠다는 뜻이다.
공식 안내문은 다음과 같이 전한다.
“필기평가 미시행에 따른 평가 배점 조정 : 필기평가 15점, 대학성적 25점 → 대학성적(수능, 내신 포함) 40점. 인성검사 및 서류, 신원조사 일정은 기존과 동일하며, 필기 일정(11월 15일)은 삭제.”
(육군모집 홈페이지 ‘2025년 후반기 학사사관(예비) 군 가산복무 지원금 지급대상자 선발 계획 추가 공고’ 中)
[후반기 학사사관 선발계획 추가 공고 안내]
안녕하십니까? 학사사관 선발 업무 담당자 입니다.
후반기 학사사관 선발 계획 관련 추가 공고가 있어 안내문자 드립니다.
후반기 공고 이후 변동된 사항(필기평가 미시행) 관련 추가 공고가 [육군모집 홈페이지] - 모집공고 에 『'25년 후반기 학사사관(예비) 군 가산복무 지원금 지급대상자 선발 계획 추가 공고』 의 제목으로 공고가 될 예정입니다. 이번주 이내에 공고된 문건에 첨부파일을 확인하시어 전형과정에 누락되는 사항이 없도록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변동사항 안내]
1. 필기평가 미시행에 따른 평가 배점 조정 : 필기평가 15점, 대학성정 25점 → 대학성적(수능, 내신 포함) 40점)
* 점수 반영 방법과 세부 점수 반영 사항 첨부 문서 확인요망
2. 평가일정 조정(변경된 사항만 안내)
* 필기평가 일정 삭제(11월 15일, 토요일 필기평가 미시행)
* 인성검사 : 10월 27일 ~ 11월 5일
* 서류접수 / 신원조사 : 11월 6일 ~ 11월 19일
* 신체검사, 면접 등 기타 일정은 전과 동일
3. 제출 서류 및 성적 반영방법 변경
* 대학 1학년 : 대학 성적증명서 미제출 → 제출(1학년 1학기 성적표)
* 수능 및 고교 내신 반영 제한 인원 추가 서류 제출 및 점수 반영방법 반영(첨부파일 확인 요망)
위와 같이 변동된 사항에 대해 꼭 개인이 확인하시고 추가 문의사항은 이 번호로 연락해 주시면 성심성의껏 답변 드리겠습니다.
육군은 ‘지원자의 부담 완화’와 ‘지원율 확대’를 목표로 시험을 폐지했다.
하지만 나는 이 결정이 단기적인 유입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장기적인 간부 선발의 공정성과 전문성을 해칠 위험이 있다고 본다.
간부 선발의 본질은 ‘역량 검증’이다
장교는 단순한 군인의 한 직책이 아니다.
국가 안보의 핵심 리더이자, 수백 명의 병력을 지휘하는 의사결정자다.
그만큼 지적 역량, 판단력, 상황 인식력이 요구된다.
즉, 리더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사고력과 지식을 평가할 공정한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조치처럼 필기시험을 완전히 없애고, 학교 성적과 내신만으로 평가한다면,
그 과정은 ‘공정성’보다 ‘편의성’에 치우치게 된다.
대학별 성적 편차, 전공별 평가 난이도, 고교 내신의 상대평가 문제 등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시험이 어렵다’는 이유로 시험을 없애는 것과 다르지 않다.
‘들어가기 어렵다’는 이유로 문턱을 낮추는 것은 일시적인 지원율 상승은 만들 수 있을지 몰라도,
국 군 간부의 질적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ROTC의 교훈 — ‘폐지의 길’이 답은 아니다
이미 ROTC(학군사관) 제도는 수년 전부터 모집난에 시달리고 있다.
과거에는 ‘명예의 길’로 여겨지던 ROTC가 최근에는 “복잡하다”, “지원 과정이 어렵다”, “임관 후 진로가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지원율이 급감했다.
그 결과, 일부 대학은 학군단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상황까지 왔다. 이 때문에 ROTC 제도의 일부 단계가 축소·간소화되었지만, 결과적으로 간부의 질적 저하와 조직 내 리더십 약화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번 학사사관 필기시험 폐지 결정은, 그때의 ROTC와 닮은 길을 가고 있다.
‘유입률’을 높이기 위해 ‘선발 기준’을 낮추는 것은, 장기적으로 조직의 신뢰를 잃는 선택이 될 수 있다.
다른 군은 여전히 ‘평가’를 유지한다
흥미로운 점은, 타 군(공군·해군·해병대)은 여전히 간부선발도구 평가를 시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군 학사장교: 인성검사 외에도 간부선발도구 필기시험 필수
해군 학사장교: 직무적성평가 및 간부선발 필기 진행
해병대 학사장교: 해병 특성에 맞는 별도 선발도구 평가 유지
공군 부사관: 여전히 간부선발 필기와 인성평가를 병행
이처럼 다른 군은 여전히 ‘시험’을 통해
지원자의 사고력, 판단력, 논리력, 가치관 등을 검증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전문직 간부 선발의 기본 원칙이다.
그런데 육군만이 ‘시험 폐지’를 선택했다면,
이것은 단순한 ‘제도 간소화’가 아니라 선발 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문턱 낮추기”가 아닌 “신뢰 높이기”가 필요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지원율을 높이기 위한 ‘시험 폐지’가 아니라,
지원자가 신뢰할 수 있는 공정한 평가 구조다.
시험이 어렵다면, 평가 내용을 조정하거나 준비 프로그램을 강화하면 된다.
그런데 제도를 없애버리는 것은 ‘기회의 공정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간부는 단순히 지원자 수로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지원자 수’가 아니라 ‘지원자의 수준’이 군의 미래를 결정한다.
그래서 지금의 방향은, ‘문턱 낮추기’가 아닌 ‘신뢰 높이기’로 가야 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국방부 차원의 일원화된 인재선발 기준이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육군은 필기시험을 없애고, 대학 성적만으로 평가하겠다고 했지만
공군·해군·해병대는 여전히 ‘간부선발도구’ 필기시험을 유지하고 있다.
이 말은 곧, 대한민국 군 간부 선발 기준이 군별로 따로 논다는 뜻이다.
한 나라의 국방 인재를 선발하면서 어떤 군은 시험을 보고, 어떤 군은 시험을 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공정성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 방향의 혼란’이다.
현재 공군 학사장교, 해군 학사장교, 해병대 학사장교, 그리고 공군 부사관 선발은
모두 간부선발도구를 기반으로 한 필기평가를 필수 항목으로 시행하고 있다.
이 시험은 단순한 암기 평가가 아니다.
지원자의 논리적 사고력, 판단력, 상황판단능력을 검증하기 위한 도구다.
즉, 군 리더로서 갖춰야 할 ‘생각하는 힘’과 ‘결정하는 능력’을 평가하는 기초 역량검사다.
공군과 해군은 이 시험을 통해 지원자가 단순히 체력이나 스펙으로만 평가되지 않도록 방지하고 있다.
그런데 육군은 이 시험을 없앴다. 이는 마치 “지원율을 높이기 위해 공정성을 희생하자”는 발상과 같다.
결과적으로, 군별 기준이 제각각인 지금의 구조는
‘국방부 차원의 통합 인재선발 체계’가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행정의 편의주의이며,
‘국방력 강화’라는 대전제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NCS를 도입한 민간기업과의 비교
흥미로운 점은, 대한민국의 주요 공기업·대기업들은 모두 NCS(국가직무능력표준) 기반 평가를 시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NCS는 지원자의 전공이나 스펙보다, 업무 수행 역량과 문제 해결 능력을 중심으로 평가한다.
이는 곧 “능력 중심 사회”를 위한 제도적 장치다. 국방부의 ‘간부선발도구’는 사실상 이 NCS와 동일한 구조를 갖는다. 지원자의 인지적 판단, 추론력, 사고력, 공간 인식, 언어 이해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다시 말해, 리더가 되어 명령을 내리고, 부하를 지휘하며, 위기 상황에서 판단할 수 있는지를 측정하는 시험이다. 그런데 민간기업은 이 시험을 필수로 보면서도, 정작 국가를 지키는 간부 선발에서만 이를 폐지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대기업조차 사람 한 명을 뽑을 때 수 차례 평가를 거치는데,
국방부는 “지원자 부담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국가 안보의 리더를 시험 없이 선발하겠다는 발상을 내놓았다.
이것은 국가 인재 양성 정책의 정체성을 잃은 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 式 정책결정
국방부가 이번 정책을 내놓으면서
‘누가’ 실무적 판단을 내렸는지는 명확히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지원율 하락을 해결하기 위한 단기적 처방이다.
하지만 장교 선발은 단순한 지원자 수 싸움이 아니다.
문턱을 낮춘다고 해서 지원자가 늘어나면,
그만큼 질적 수준이 낮은 간부가 현장에 배치된다.
이는 결국 장기적으로 부대 내 리더십 저하, 지휘력 혼선,
그리고 정책 신뢰 붕괴로 이어질 것이다.
지금의 결정은 ‘간편함’을 택한 행정 편의주의에 불과하다.
문제를 덮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눈 가리고 아웅”식의 정책은
결국 매년 반복되는 장교 실력 저하 현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국방부는 모든 군의 선발체계를 통합해야 한다
이제 국방부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육군·해군·공군·해병대의 선발체계를 통합하고 일원화하는 것이다.
‘어떤 군은 시험을 보고, 어떤 군은 안 본다’는 제도는
리더십 양성의 기본 철학조차 흔들리게 만든다.
국방부는 “유입률을 위한 제도 간소화”가 아니라,
“역량 중심의 공정한 평가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간부는 수많은 생명을 지휘하는 사람이다.
그들의 사고력과 판단력을 검증하지 않고 선발하는 것은
결국 국가의 생명줄을 시험 없이 내어주는 일이다.
결론
장교의 실력 저하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곧 부대의 전투력 저하, 국가 방위력 약화, 조직 신뢰 상실로 이어진다.
시험이 부담스럽다고 해서 시험을 없애는 것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문제 은폐’다.
국방부는 이제라도
군별로 따로 노는 선발체계를 바로잡고,
간부선발도구를 포함한 통합적 평가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국가의 리더를 뽑는 데 있어 ‘간편함’이 아닌 ‘검증된 실력’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