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D-1

크리스마스 이브 이야기

by 나자영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연차를 내서 쉬는 날이다.

느긋하게 일어나서 아침으로 (베이글이 아닌) 올리브 빵과 사과, 그리고 삶은 달걀을 먹었다. 어제 사놓은 카프레제 샐러드도 곁들여서. 이렇게 먹으니 생각보다 든든해서, 바로 점심을 준비하지 않고 우선 집을 나섰다. 미리 봐두었던 마이아트 뮤지엄에서 하는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 Lautrec) 전시회 표를 예매하고 곧바로 버스를 탔다. 크리스마스 이브지만 그래도 주중 낮이어서 그런가, 생각보다 길은 한산했다. 여유롭게 버스를 타고 도착한 박물관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고요했다. 마치 내가 대관한 것처럼 천천히, 조용히 작품 하나하나를 관람할 수 있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이 얼마 만에 느끼는 평온함인가. 그렇게 1시간가량 작품을 음미한 후에 카페를 갈까, 잠시 고민을 했지만, 이후 일정을 소화하려면 시간이 빠듯할 것 같아 일단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점심 겸 저녁으로 리조또를 준비했다.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넉넉하게 시간을 잡기 잘했다 싶었다. 여하튼, 홈메이드 리조또를 든든히 먹고 정리하고 보니 벌써 교회 성탄절 음악회를 위해 집을 다시 나설 시간이었다. 시내 명동으로 이동해야 했기에, 시간 여유를 두고 출발하기로 했다.


일찍 집을 나서기 잘했다. 명동이 가까워질수록 차가 많이 막혔다. 아니 그냥 서있었다. 다행히 음악회에 늦지는 않았지만, 차가 자꾸만 서서 약간의 멀미 이슈가 있을 뻔했다.


늘 가는 교회 가는 길이지만 오늘은 뭔가 설레는 마음이었다. 약간 들뜬 기분으로 교회 문지방을 넘어 음악회를 하는 곳으로 직진하려는데 어떤 분이 음악회 가는 길을 물으신다. 아, 이게 오늘 내 역할이구나, 싶었다. 교회를 처음 오시는 분인데, 음악회 포스터를 보고 오셨다고 한다. '잘 오셨어요!' 나도 모르게 외쳤다. 교회 건물이 넓어서 어디가 어딘지 몰랐는데, 나를 만나서 다행이라며 고마워하시는 모습에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더 많은 대화를 해야 할까, 내일 성탄 축하 예배도 있다고, 주일 예배는 언제 언제 있다고 안내를 해야 할까, 속으로 생각했지만, 아무 말없이 조용히 내 뒤를 따라오시는 분을 보고 그저 나도 조용히 길을 안내했다. '좋은 시간 보내세요.' 인사로 나도 내 자리를 찾아 앉았다.


오늘 음악회는 성탄절 찬양으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더 특별했다. 멘델스존의 'Lobgesang'(Hymn of Praise, 찬양의 노래), 시편 150편 '호흡이 있는 자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라'에 기초한 주제가 처음부터 마지막 부분까지 계속 변주와 반복을 지속하며 발전한다(음악회 안내지에서 인용한 문장입니다). 또 마지막에 다 같이 부른 곡은 전통적인 성탄절 찬양이었는데, 지휘자님이 우리를 향해 지휘를 하시는 모습이 너무 멋있고, 뭉클했다. 땀을 흘리며 지휘를 하시는 그 모습이, 우수에 찬 그 얼굴이 나는 잊히지 않는다. 나와 같이 내가 안내한 그분도 오늘 같은 감동을 받으셨을까? 교회의 문지방을 넘기까지 수많은 고민들이 있었을 텐데, 부디 마음에 감동이 있었기를, 그리고 마음이 열려서 교회를 계속 나오셨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음악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분명 외로웠다. 대부분 연인들 또는 친구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홀로 한강다리를 건너는 버스 안에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분명 잠시 잠깐 외로움을 느낀다.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일 것 같다. 그렇지만, 오늘 밤만은, 외로움이 내 주 감정이 아니고, 그저 이 고요함, 이 평안함이 가득한 내 마음에 집중하고 싶다. 부디 오늘 밤도 모두 평안하기를.




어제 '크리스마스 D-2'에 이어 '크리스마스 D-1' 글을 써보았습니다.


어제 계획했던 그대로 모두 실행하지는 못했네요. 베이글을 먹지 않았고 카페를 가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홈메이드 리조또를 맛보고, 그동안 미뤘었던 전시회를 가고, 음악회에서 멋진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듣고, 또 이렇게 브런치 글을 썼습니다. 이 정도면 꽤 괜찮은 하루였던 것 같습니다.


내일은 성탄절 예배를 다녀와서 맛난 새우감바스와 파스타를 먹고, 이번 연말에 꼭 해야 하고 하고 싶은 사진 정리 그리고 한강 작가님 소설책을 읽어야겠어요. 그리고 이번 크리스마스 연재 마지막인 '크리스마스 D-DAY'를 쓰려고 합니다. 내일도 함께 해주세요!


KakaoTalk_20241224_220642720.jpg <마이아트 뮤지엄, 툴루즈 로트렉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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