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by 나자영

오늘은 주말 이벤트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 중인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을 감상하고 왔다.


집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부랴부랴 버스를 탔다. 오늘 광화문 일대에 시위로 교통이 혼잡할 예정이어서 여유 있게 시간을 잡고 오라는 극장의 문자를 받아서 마음이 더 바빴다. 광화문에 도착하니 아니나 다를까 시위대가 이미 거리를 꽉 채우고 있었다. 한쪽은 우파, 한쪽은 좌파. 나도 정치 색깔이 있지만은 정말이지 이런 갈등이 너무 싫다. 남북으로 분단된 것으로 모자라서 오른쪽 왼쪽으로까지 분단이 되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너무 비통하다.


이런 비통한 마음으로 극장에 들어가서일까, 오늘 연극은 너무 암울했다. 사실 연극 내용 자체가 그렇다. 제목이 스포일러이다. 극에 나오는 세일즈맨은 죽는다. 평생을 아등바등 살아오다 결국은 허망하게 생을 마감한다.


물론 세일즈맨 윌리 로먼 역의 박근형, 린다 로먼 역의 예수정, 비프 로먼 역의 이상윤, 모두 너무 멋졌다. 박근형 배우는 지난번 신구 배우과 함께 출연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한번 봤었는데 연기에 대해서는 당연히 할 말이 없을 만큼 놀라웠다. 예수정 배우도 브라운관에서 처럼 어찌나 역할을 잘 소화해 내던지. 이상윤 배우는 의외였다. 그저 훤칠하고 멋있는(사실 아주 잘생긴) 배우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보니 연기자는 연기자다. 매우 진지하게 극에 임하는 모습에 반할 정도였다. 그러나, 극장을 나오는 나의 마음은 우울했다. 요즘 시국 때문인지 나의 현재 여러 가지 상황 때문이지(아니면 나의 시야를 가리던 앞 줄의 해그리드만 한 덩치를 가진 관객 때문인지), 우울한 이야기들보다는 조금 더 활기차고 희망찬 이야기를 접하고 싶은 것 같다. 다음에는 조금 더 밝은 내용의 공연을 찾아봐야겠다.


아무튼 그렇게 연극을 마치고 나는 곧장 고속터미널로 향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신세계백화점 지하 식품관에서 두씨밀레 두부 과자를 사야 했기 때문이다(달지도 않고 건강에 좋아서 어르신 선물로 추천드린다). 설을 앞두고 여기저기 선물할 데가 많아 미리미리 준비 중이다. 볼 일들을 다 본 후에 출출해서 아예 저녁을 먹고 들어갈 생각을 하는 찰나, 날씨도 쌀쌀하니 국밥이 당겼다. 고속터미널 호남선 쪽에 있는 삼백집이 생각나서 곧장 그리로 향했다. 콩나물국밥과 모주를 시켰다. 역시는 역시다. 뜨끈한 국밥과 모주는 정말이지 환상적이었다. 나는 알코올 분해 효소가 없어서인지, 술을 영 못 마신다. 도수가 낮은 맥주여도 금방 취해서 잠이 들어버리고 속도 매우 쓰려서 다음날까지 고역이다. 그래서 술은 입에도 안 댄다(그래서 사회생활이 힘들긴 하다). 그런데 모주는 유일하게 마셔도 괜찮다. 모주(母酒)는 어머니가 술을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여러 가지 약재를 넣어 만든 술이라고 한다. 그래서인가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지기도 하고 실제로 술이 그렇게 강하지 않다. 나 같은 알쓰(알코올 쓰레기)도 마시는 것을 보니.


국밥을 다 먹었는데도 모주가 조금 남아서 남은 배추김치, 깍두기와 함께 마저 마셨다. 이 순간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참 간사한 사람 마음이다. 그러던 찰나에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고속버스 탑승구들이 하나 둘 보였다. 목포, 익산, 여수, 전주... 문득,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오랜만에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떠나다' 이 한마디가 이렇게 설렐 일인가. 어디든 좋으니 떠나고 싶다. 버스, 기차, 뭐든 좋으니 어디로든 훌쩍 떠나고 싶단 말이다. 그만큼 여기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큰 요즘인가 보다. 혹시 이게 번아웃인가? 어쩌면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괜찮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자주 들여다봐야 한다.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너 정말 괜찮아?'


사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내가 괜찮은지 잘 모르겠다. 그저 오늘 하루를 살고, 하루하루가 모여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된다. 때로는 괜찮지 않고, 때로는 안 괜찮아도 그냥 지나고, 그리고 다행히도 때로는 괜찮은 순간들이 모여서 찰나의 행복으로 내게 다가온다. 잠시 잠깐이어도 이런 행복들을 가득히 느끼며 살아가기를 바라본다.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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