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화 리뷰

<소년이 온다>를 읽기 전과 후

by 나자영

한강 작가님의 <소년이 온다>를 읽기 전과 후는 같을 수가 없어요. 아니, 같으면 안 돼요. 나는 어젯밤에 이 책을 읽었어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달라요. 그동안 왜 이렇게 이 책 읽기를 미루었나 모르겠어요. 한강 작가님이 수많은 문학상을 받고 심지어는 작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는데 말이죠. 그냥 미룬 게 아니고 아마 망설여졌나 봐요. 이 책을 읽으면 괴로울 걸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주저했었나 봐요.


어젯밤은 이 책을 꼭 읽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2월 한 달간 매주 수요일 밤 창비 북클럽에서 진행하는 <야자시간>, 모두 모여 줌을 켜고 조용히 한 시간 동안 각자 책을 읽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렇게 나는 4번의 수요일동안 내가 읽다가 멈춘 책들을 다시 펼쳐 완독을 하기로 다짐을 했지요. 그런 책들 중 하나가 <소년이 온다>였어요. 작년 연말 즈음이었을 거예요. 분명 나는 <소년이 온다>의 첫 페이지들을 읽고 깊은 충격에 빠졌어요. 긍정적인 충격이요. 글을 어떻게 이렇게 잘 쓸 수 있지, 이런 감탄이요. 살면서 글이 살아 숨 쉬며 내 앞에 글들이 책에서 튀어나와 서 있는 느낌을 받는 건 처음이었어요. 그런데 몇 장을 그렇게 읽고 나는 책을 덮고 말았어요.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덮었던 책을 다시 펼친 건 어젯밤이었어요. 밤 9시에서 10시, 1시간 동안 책을 읽는 거였는데 나는 10시가 넘어서도 멈출 수가 없었어요. 아니, 멈추면 안 될 것만 같았어요. 지난번에는 읽는 도중에 멈췄지만, 이번에는 나도 모르게 어떤 힘이 나를 누르고 있었어요. 계속 읽으라고. 끝까지 읽으라고. 두 눈 부릎 뜨고 보라고. 내 안에서 내가 나에게 말하는 듯한 목소리였어요.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거짓말처럼 온 세상이 조용했어요. 늘 시끄럽게 공사하던 옆집이 그날밤 따라 조용했고, 바쁘게 돌아다니는 택배원도 복도에 없었어요. 마치 내가 책을 조용히 집중해서 읽을 수 있도록 온 우주가 도와주는 것처럼요. 나는 책을 읽는 동안 내내 경악을 감추지 못했어요. 왼손으로 책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내 입을 막고 있었어요. 너무 괴로웠어요. 괴로워서 눈물이 났어요. 왜, 도대체 왜. 알 수 없는 끔찍한 일들이 일어났던 그 시대와 현장을 함께 살아가지 않았지만, 시간과 공간을 넘어 그들의 괴로움이 나의 괴로움이 되었어요.


자정이 넘어서야 나는 책을 덮었어요. 책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려하는데, 고개를 들 수가 없었어요. 우리가 어떻게 고개를 들 수가 있겠어요. 우리는 그들에게 빚졌어요. 광주 시민들에게 빚을 진 거예요. 그리고 이번 12.3 계엄 당시에 버선발로 국회 앞으로 뛰어나간 국민들에게 빚을 진 거예요. 빚진 마음으로 살아야 해요. 그래서 그들이 지켜내 준 오늘 하루를 잘 살아야 해요. 그들의 피로 물든 이 대한민국에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인생을 허투루 살면 안 돼요. 허투루 시간을 쓰면 안 돼요.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숭고한 마음으로 살아야 해요. 나는 그들과 같은 용기가 없어서 앞장서서 국회 앞에, 길에 나가 목에 피맛이 날 때까지 소리 지를 수 없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서 나의 방법으로 이 빚을 갚아야만 해요. 그리고 만약 그조차 하지 않는다면 부끄러워하며 살아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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