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 끝의 안전지대

아제냐스 두 마르

by 레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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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 절벽 마을 아제냐스 두 마르에서 먹었다. 이 투어를 선택한 이유는 이 마을 때문이었다.

사진 한 장이 나를 사로잡았다. 절벽 끝에 모여 있는 하얀 집들과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 재난영화 속 마지막 남은 안전지대 같았다. 나는 그곳에서 바다 바람을 맞고 서 있는 나를 상상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정말 단 하나 남은 안전지대. 재난영화나 좀비물에는 늘 그런 장면이 나온다.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곳으로 가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 위협들로부터 분리되어 있긴 하지만, 완벽하게 완전한 곳은 아니다. 그저 마지막으로 남은 곳. 나는 그 마을을 보며 그런 장면들을 떠올렸다.


가이드에 따르면 11월 우기에는 만나기 힘든 화창한 날이었다. 외투를 벗고 전망대로 올라갔다. 올라갈수록 마을 전체가 눈에 들어왔다. 사진으로만 보던 바로 그 풍경이었다. 땅 끝에 모여 있는 집들, 그 아래 쉬지 않고 몰아치는 위협적인 파도, 그 위로 펼쳐진 평화로운 하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며 왜곡된다. 나를 사로잡았던 풍경은 내 안에서 더 웅장해지고, 더 벅차게 변해 있었다. 그곳을 직접 본 순간, 그 쌓였던 기대가 터져나왔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절벽 끝. 그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세상과 단절된 것처럼 보이면서도, 여전히 삶이 계속되는 곳.


나는 왜 그 마을에 그토록 끌렸을까.

재난영화에서 안전지대로 가면서 위협과 맞서기도 하고 도망치기도 하는 것처럼, 나도 지금 그런 상태다. 현재의 재정적 어려움 때문에 경제활동을 더 하려고도 하고, 때로는 도망치듯 여행을 가고 싶어 한다. 돈을 벌어도 내가 자유롭게 쓸 수 없다. 일 자체는 괜찮지만, 쓸 수 없는 돈이라는 생각에 우울하다.


포르투갈 여행은 오랜 바람이었다. 조금씩 준비하고 있었는데 소멸될 마일리지가 아까워서, 어쩔까 하다가 가게 됐다. 가야 할, 가고 싶은 여행이었다. 그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비슷한 구도로 여러 장 남겼다.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는 무언가를 마음에 새기려 애썼다.


절벽 끝 마을을 보며 내가 느낀 건 무엇이었을까.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서 오히려 초연해지는, 다 내려놓게 되는 느낌이었나 싶다. 그곳에서 바람을 맞는 상상을 한 건, 적어도 얼마 정도는 안전한 곳에서 마음 놓고 깨끗한 바람을 맞으며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절벽 끝의 안전지대. 그건 안전지대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는 마지막 지점. 그래서 오히려 평화로워 보이는.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애쓰지 않아도 되는.

지금도 절벽 끝 마을의 사진을 보며 묻는다.

나는 정말 안전을 원하는 걸까, 아니면 더 이상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끝을 원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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