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꿈꾼 집

페나 성

by 레쏘

다시 다음 행선지로 떠날 시간이다.

투어버스에 올라타고 마음 편히 쉬었다. 언제 어디서 내릴지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버스에 타서 앉기만 하면 졸음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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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나궁은 꽤 높은 지대에 있어 날씨가 좋으면 리스본에서도 실루엣이 보인다고 한다. 투어버스가 입구 근처까지 올라가는 동안 창밖으로 걸어가는 관광객들의 행렬을 구경했다. 버스로 오르막길을 편하고 빠르게 올라갔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걸어가니 동화에 나오는 성같은 모습이 보여 사진부터 찍기 시작했다.

'어릴 적 그림책에서 보던 바로 그런 성이네.'


요철모양의 성벽, 레이스를 붙인 듯 화려한 아치, 양파모양의 지붕. 노란색과 빨간색으로 칠해진 성이라니!

성 꼭대기에선 라푼젤이 머리를 내려뜨리고, 백설공주가 일곱 난쟁이들과 함께 마중 나올 것만 같았다.


이렇게 예쁜 것들을 모은 건축양식, 낭만주의 건축의 정수가 바로 페나궁이라고 했다. 고딕의 뾰족한 탑, 마누엘 양식의 해양 장식들, 무어 양식의 아치와 문양, 르네상스식 균형감...

이 모든 다양함을 한곳에 표현해냈는데도, 과하다는 느낌은 들지않았다. 예쁜 것들만 모아놔도 어울리지 않으면 오히려 어지럽기만 한데, 페나궁은 달랐다. 각각의 요소가 눈에 띄지만, 튀지 않았다.

'이거 완전 19세기판 디즈니랜드 같은데!'

구역마다 다른 테마가 있고, 페르난두 2세의 취향을 마음껏 펼친 꿈의 집. 왕이 만든 개인용 디즈니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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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별궁이라 유럽의 유명한 왕궁처럼 크지 않았다. 내부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곳은 중정이었다. 무어식 아치와 타일들을 보자마자 이슬람식 중정이 떠올랐다.

이슬람 건축양식이 겉은 수수하고, 내부는 화려하다고 들었다. 낭만주의 건축에서 이런 아름다움을 빼놓을리 없었을 것이다. 페나성의 중정은 사진으로 본 알함브라의 사자의 정원이나 헤네랄리페에 비하면 매우 소박했다. 페나성의 메인도 아닌 이곳이 왜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아 있을까.


여행전 찾아본 페나성의 사진들 중에 중정 사진은 없었다. 막상 와서 가장 기억에 남는건 사진에서 눈에 띄지도 않았던 작은 중정이었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복도와 달리 조용한 공간이 신기했다. 반복되는 아치들이 나를 사진으로만 보던 그곳으로 데려다 놓을 것 같았다.


알함브라도 그럴까? 사진 속 화려한 사자의 정원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어떤 공간이 날 사로잡을까?


여행하면서 이슬람 여행자들을 많이 봤었다. 기차에서 차도르 복장을 한 여인 옆에 앉았을 때, 진한 향수 냄새와 화장, 화려한 네일과 장신구들이 인상적이었다. 겉으로는 알 수 없지만, 그 안에 존재하는 세계가 있을 것 같았다. 수수한 외벽 너머, 상상할 수 없는 화려함이 있는 이슬람 건축처럼.

나는 아직 그 안을 모른다. 알함브라에 가면 알게 될까?


알함브라가 다음 목표가 된 건, 아직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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