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고이기 전에

호카곶

by 레쏘

유럽 대륙의 서쪽 끝, 호카곶.

과거 사람들은 '세상의 끝'이라고 믿었다.


유럽의 최서단을 알리는 기념비에 새겨진 포르투갈의 시인 카몽이스(Luís de Camões)의 시구.


AQUI......

ONDE A TERRA SE ACABA E O MAR COMEÇA

여기,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


시인은 군더더기 없이 한 줄로 경이를 담아낸다. 누구나 아는 단어로 쓴 문장인데 마음을 흔든다.

끝이지만 동시에 다른 시작이 있는 곳.

'여기까지인가' 싶을 때, 눈을 들면 다른 시작이 앞에 펼쳐져 있다는 응원처럼 다가왔다.


투어의 마지막 일정은 호카곶에서의 일몰 감상이다.

낮은 돌벽 위에 자리를 잡았다. 11월 초의 밤, 해안의 추위를 예상해 챙긴 두툼한 옷이 낮에는 거추장스러웠지만, 지금은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낮 기온에 맞춰 입고 온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들 추워서 어쩌지? 호카곶 일몰 일정을 체크 안 했나?' 싶었다.


그러나 곧 그 생각은 쓸데없어졌다.

투어사에서 담요를 준비해 옷차림이 가벼운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정보가 부족했던 사람은 오히려 나였을지도 모르겠다.


돌벽 위에 앉아 오전에 산 베개빵을 꺼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대는 통에 한 손으로는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잡고, 한 손에는 카메라를 들고 있어 빵을 먹기엔 벅찼다. 빵에 잔뜩 뿌려져 있던 설탕이 통에서 새어 나오는 바람에 가방 안은 설탕으로 엉망이 되어있었다. 설탕을 털어내고, 머리를 정리하고 빵을 먹었다. 찬 바람과 정신없는 상황 때문이었는지 달았다는 기억만 남았다.


이젠 차분하게 지는 해를 바라보는 일만 남았다. 옆쪽에서는 버스킹을 하고 있어 로맨틱한 분위기가 되었다. 거기에 더해 가이드가 준비된 와인을 한 잔씩 나눠주었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앉아, 지는 태양을 묵묵히 바라봤다.

평소에는 해가 지는지도 모르고 사는데, 여행지에서는 달랐다. 낯선 곳에서 천천히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것이 여행에서 느끼는 여유다.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곳에서 같은 것을 보고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태양과 눈앞에서 일렁이는 파도, 무슨 곡인지 모르지만 감미로웠던 버스커의 노래...

조용히 일몰을 바라보는 사람, 와인잔을 들고 돌벽에 앉으려다 떨어뜨린 사람, 노래를 따라 부르는 사람, 일행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이 모든 모습이 호카곶 일몰의 또 하나의 배경이 되었다.


와인잔을 들고 친구들의 얼굴을 봤다. 말없이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고, 얼굴은 일몰과 함께 붉게 빛났다.


음악을 들으며, 와인을 마시며, 함께 나눌 친구들이 옆에 있다는 사실에 눈물이 날 뻔했다. 눈물이 고이기 전에 건배했다.

"우리의 멋진 포르투갈 여행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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