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포르투.
게임 <대항해시대>에서 초반은 근거리 무역이 필수다. 리스본으로 시작했다면 리스본을 기준으로 북쪽에는 포르투, 남쪽에는 파루가 있고, 조금 더 내려가면 세비야가 나왔다. 물론 실제의 세비야는 항구도시가 아니지만, 게임에서는 큰 도시들이 항구에 표시되곤 했다.
게임 속 도시였지만, 자주 오가다 보니 친밀감이 쌓였다. 재미있는 건, 게임 속 무역품들이 실제 그 지역의 특산물과 겹친다는 점이었다. 포르투에는 와인이 있었고, 리스본 앞바다에서는 정어리가 잘 잡혔다. 가상의 세계를 통해 익숙해진 도시와 풍경이, 나중에야 현실의 지명과 특산물로 이어졌다.
게임을 통한 내 기억 속 본 포르투는 도시라기보다 작은 어촌 마을에 가까웠다. 리스본을 본거지로 삼은 초반 플레이어가 자금을 마련하려면 몇 번이고 들러야 하는 곳, 그 정도의 장소였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SNS에서 포르투 사진이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도루강을 따라 늘어선 건물들, 동루이스 다리 위에서 보는 강은 햇빛에 반짝이다가 밤에는 불빛에 반짝이는 풍경들. 기억 속 작은 항구는 어느새 여행자들이 꿈꾸는 도시가 되어 있었다. 작은 어촌 마을이라는 기억은 점점 화려한 이미지에 덮여 갔지만, 포르투갈에 대한 호기심은 더 커졌다.
포르투 버스터미널에서 숙소로 향하는 차 안에서, 처음 마주한 포르투는 기대와 많이 달랐다. 사진과 영상으로 보던 반짝이던 포르투는 보이지 않았다. 흐린 날씨 때문이었을까, 일요일이라 그랬을까. 거리는 한산했고, 건물들은 생각보다 낡고 칙칙했다. 외곽이라 그럴 거야라며 마음을 다독였지만,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은 서서히 사그라드는 지방 도시처럼 느껴졌다.
조금 더 중심부로 들어가 숙소와 가까워지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건물도 정돈되어 있었다. 숙소가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에는 안도감이 환호에 가까운 감정으로 바뀌었다. 낯선 도시에서 숙소는 생각보다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날의 포르투는 적어도 그 부분에 있어서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짐만 대충 내려두고 곧장 도루강 쪽으로 향했다. 시청사에서 강으로 이어지는 길은 프라하의 바츨라프 광장을 떠올리게 했다. 점점 더 사람들이 많아졌고, 거리의 분위기도 관광지로 바뀌었다.
동루이스 다리 위를 가득 채운 사람들의 흐름을 따라 강을 건넜다.
'아, 여기가 바로 그곳이구나.'
사진과 영상으로 그렇게 많이 보아 온 풍경, 내가 상상했던 그곳에 내가 서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대와 설렘만 있지는 않았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묘한 허전함도 함께 올라왔다.
아마도 머릿속에 그리며 알고 있다고 생각한 포르투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도시였기 때문일 것이다. 게임 속에서 먼저 익숙해진 도시, 사진으로 눈에 담은 도시, 내가 상상 속에서 만들어 온 포르투는 현실의 포르투보다 작고, 선명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의 도시는 늘 그렇듯, 더 크고 더 무심하고, 기대보다 덜 극적이었다.
저녁 식사 때, 그 허전함을 달래기라도 하듯 포트 와인(Vinho do Porto)을 마셨다.
몇 년 전부터 여행 중 일행과 함께 식사할 때는 그 지역의 술을 곁들이려 한다. 술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술맛을 구분할 줄도 모르지만, 그 지역의 술을 식사와 함께 맛보는 건 그곳을 더 가까워지게 하는 방법 같았다.
포트와인은 발효 도중 브랜디를 넣어 발효를 멈추게 한 강화 와인이다. 그래서 단맛이 진하고 도수도 높다.
내가 느낀 포트와인은 이랬다.
진득한 단맛이 혀에 남고, 이어 목구멍을 지나며 알코올의 싸한 감각이 올라왔다. 마지막에는 포도향이 코끝에 남았다.
밤이 되자 도루강 주변의 풍경은 낮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강가의 불빛은 낮보다 훨씬 짙어졌다. 밝고 경쾌하기보단 짙고 농축된 풍경이었다. 마치 포트와인처럼.
낮의 포르투에서 기대와 현실 사이의 틈을 보았다면, 밤의 포르투는 그 틈을 조금 더 깊은 색으로 채워 주고 있었다. 내가 상상했던 포르투가 아닌, 내가 모르고 있던 포르투에 조금 더 다가간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