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생각3
기억은 신의 선물이고, 망각은 신의 축복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 나는 그 축복이 조금 원망스럽다.
사진 속의 이 장면이 너무 그리운데 그곳에서 내가 무엇을 하며 지나갔는지, 무엇을 느끼면서 이 사진을 찍었는지가 기억나지 않는다.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사진만이 증거처럼 남아, 내가 분명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말해줄 뿐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내가 가진 기억들은 온전한 것이 없다. 아름다웠던 순간들은 내 의지로 더 아름답게 각색되어 있고, 슬펐던 순간들은 드라마틱한 비극으로 포장되어 있다. 그렇게 각색된 기억들은 지금의 나를 정당화하는 도구가 된다. 지금 내가 기쁘다면 그건 과거의 내가 잘해온 성과이고, 지금 내가 슬프다면 그건 내 탓이 아니라고 변호해 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그렇게 산다. 기억을 편집하며, 자신에게 유리한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그것을 나쁘다고만 할 것은 아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버틸 수 있는 순간들이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제부터 조금 다른 길을 가보려고 한다. 지금까지 내 안에 쌓인 흐릿한 기억들, 그 안에서 내가 선명하게 만든 기억들 사이에서 새로운 방식을 찾아보려 한다.
더 솔직한 기억을 만들 수 있을까. 덜 각색하고, 덜 정당화하고, 그저 있는 그대로를 기억할 수 있을까. 망각이란 축복 사이사이에 내가 의도적으로 남기는 기억들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나는 무엇을 기억하고 싶은가.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고 있는가.
중력을 거슬러 오르는 우주선 안에서 창문 너머로 점점 작아지는 지구를 바라보는 시야는 어떨까. 익숙한 모든 것이 멀어지고, 알 수 없는 세계가 가까워지는 그 순간.
트램에 올라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는 지금이 그런 기분이다.
삶의 중력이라는 안정감은 편안하지만, 동시에 나를 움츠러들게 한다. 기억은 친절하게 증거를 대며 그때 실패했으니 이번에도 힘들거라고. 여기가 안전하다고.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이것은 안정감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이 될까 두려워하는 마음이구나.'
그렇다면, 나의 기억이 보증하지 못하는 곳으로 가자. 모두가 걱정하는 그곳에서 넘어지고, 헤매고, 다시 일어서며 새로운 기억으로 나를 채워보자. 실패는 내가 중력을 이기고 날아올랐다는 증거다. 이제 창밖을 보자. 저 낯선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내 인생의 항해일지에 "새로운 항구를 발견했습니다"라는 문장을 계속 새길 수 있길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