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에서 만난 가족들, 그리고 기억하는 사람에 대하여
사람에게는 저마다 다른 형태의 가족이 존재한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도 있고, 반려동물이나 이웃처럼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가족도 있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서로에게 기대며 살아간다. 쪽방도 예외는 아니다. 형님과 아우라 부르고, 친구라 부르며, 혈연은 아니지만 엄마라 부르는 관계들이 그곳에 있다. 다양한 언어와 표현으로 그들만의 가족이 형성된다.
쪽방에는 하나의 특징이 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무연고자라는 점이다. 처음부터 가족이 없었던 사람도 있고, 가족에게서 버림받았거나, 혹은 스스로 가족과의 관계를 끊은 사람도 있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 관계에서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쪽방 밀집지역이다.
그러나 그들은 새로운 가족을 만든다. 옆집 사람, 앞집 사람, 동네 슈퍼 아주머니, 또래 친구들, 어르신과 동생들. 호칭에는 정해진 규칙이 없다. 부르기 나름이다. 나이 차가 많이 나도 형님이나 형으로 불리고, 서너 살 차이는 “야 인마”, “이 자식아”로 불린다. 그 안에는 서열이 아니라 관계가 있다.
이들은 가족처럼 모여 술을 마시고, 애달픈 삶을 나누며 정을 쌓는다. 각자의 공간은 한 평 남짓한 쪽방이지만, 서로 얽혀 살아가는 하나의 공동체다. 사연을 품은 사람들이 모여 만든 가족이다.
이들의 시련은 삶이 끝나는 순간 시작된다. 현행 제도에서 혈연관계가 아니면 행정상 가족으로 인정되기 어렵다. 무연고자인 그들은 죽는 순간 비로소 가족을 잃는다. 사망 이후에는 무연고자로 분류된다. 다행히도 법에 따라 공영장례가 치러진다. 공공은 무연고자의 마지막을 최소한으로 배려한다.
공영장례 빈소는 쪽방과 비슷한 크기다. 보통 두 명이 합동으로 장례를 치른다. 간소한 절차를 거쳐 화장이 진행되고, 화장된 고인의 유골은 무연고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항아리에 함께 담긴다. 누구인지 모를 이의 유골과 섞인다.
빈소 앞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이곳은 가족 해체와 빈곤 등으로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연고 없이 돌아가신 무연고 사망자, 저소득시민을 위한 소박한 빈소입니다. 즉, 가족과 지인이 없거나 재정적으로 어려운 분들이 장례의식과 빈소도 없이 안치실에서 화장장으로 바로 가는 직장방식이 아닌 고인의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지 않도록 공공이 배려하여 사회적 애도가 가능하도록 최소한의 장례의식 공간과 시간을 보장하고자 마련한 엄숙한 곳입니다.
무연고자에게 빈소를 마련하고 애도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내가 경험하고 바라본 현실은 조금 달랐다.
쪽방 주민 대다수는 행정적으로 무연고자일 뿐, 실제로는 가족이 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이웃이 있고, 형님과 아우가 있으며, 그들과 함께했던 사회복지사와 도움을 주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 있다. 혈연은 아니지만 때로는 진짜 가족보다 더 깊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과연 무연고란 무엇인가? 혈통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서류에 이름이 없다는 이유로 무연고라 부른다면 맞는 말일 수 있다. 그러나 그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연고가 없는 존재일까.
우리는 흔히 무연고자의 죽음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있다.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고, 기억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완전히 무연고인 인간은 존재하기 어렵다.
무연고자 장례식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정보는 그들의 삶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들이 살아온 모든 이야기를 알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그들이 불쌍함의 대상이 될 만큼 불쌍하게만 살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을 기억하려 한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해맑게 웃던 얼굴을 기억한다. “나”가 아니라 “너”를 위해 싸우던 모습을 기억한다. 강아지와 고양이를 끌어안고 얼굴을 비비던 따뜻함을 기억한다. 화재가 났던 날, 누구보다 먼저 울던 당신의 마음을 기억한다. 비 오는 날 말없이 어르신 머리 위에 우산을 씌워주던 손길을 기억한다. 소주 한 병 살 돈이 없어도 함께할 수 있도록 배려하던 밤을 기억한다. 배고프다는 말에 말없이 빵 한 봉지를 건네던 순간을 기억한다.
내 기억 속의 죽은 이는 무연고자가 아니다. 수백 명의 가족을 가진 사람이었다.
죽은 이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영혼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오래된 철학이 있다. 무연고자로 분류되어 장례를 치렀지만, 내가 당신을 기억하고 있으니 영혼만큼은 평온하기를 바란다.
나는 당신을 기억하고 있는 사회복지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