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감각 02 | 설리를 닮은 아빠

“선생님아, 나 좀 도와줘.”

by 진형

2020년 어느 날이었다.

흡사 애니메이션 몬스터주식회사의 ‘설리’를 닮은 외모.

호탕하고 걸걸한 말투의 한 주민이, 마치 별일 아니라는 듯 사무실로 조용히 들어와 귓속말을 했다.

“선생님아, 나 좀 도와줘.”

나도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받았다.

“무슨 일 있으세요? 뭐든 말씀해 보세요.”

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말했다.

“아내가 임신한 것 같아.”

“아, 그래요? 그럼 일단 가까운 산부인과 가서 검진부터 받아보셔야죠.”

마침 바로 아랫건물에 병원이 있었다.
그곳에서 검진을 받아보시라고 안내했다.

두세 시간이 지났을까.
그는 다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번엔 서류 한 장을 내밀며 말했다.

“선생님아… 큰일 났어. 다음 달에 출산이래.”


순간, 온종일 쌓였던 피로가 번쩍 가셨다.

“네? 다음 달이요? 언제요?”

“9월 10일이래.”

“아니… 만삭이신데 그동안 모르셨어요?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설리’를 닮은 그는 여전히 아무 일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배가 자주 아프다길래 소화제만 먹었지. 임신한 줄은 몰랐어. 어쩌긴 어째, 낳아야지.”


무심한 건지, 정말 몰랐던 건지.

“아이를 낳아 키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특히 쪽방에서 신생아를 키우는 건 더더욱 어렵고요. 감염 위험도 크고 환경도 너무 열악해요. 일단 제가 좀 생각해 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무책임한 말 같아 화가 났고, 그래도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다행이라면, 우리 아들이 곧 돌을 앞두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출산과 육아에 대한 기억이 아직 생생했다.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노트에 하나씩 적어 내려갔다.


무엇보다 엄마의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

출산을 지원할 병원을 연계해야 한다.

출산 후 바로 쪽방으로 갈 수는 없다. 산후조리원이 필요하다.

신생아를 쪽방에서 키울 수는 없다.


순서대로, 아니 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그런데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혹시 이 부부에게 아이를 키울 의지가 없다면?


부부를 함께 만나 진지하게 물었다.

“아이를 키우는 건 정말 많은 책임이 필요한 일이에요. 혹시라도 자신이 없으시다면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그럼 아이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아볼게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이 돌아왔다.

“낳아서 열심히 키울 거야.”

짧지만 단호했다.

“알겠습니다.”


그날부터 정신없이 움직였다. 보건소에 연락했고, 다행히 쪽방주민 출산과 관련된 건강지원 사업이 있었다.

담당자가 직접 나와 도와주겠다고 했다. 노숙인진료소에 연락해 보라매병원으로 진료·출산 연계도 가능해졌다.

병원비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이제 남은 건 집과 돈이었다.


전세임대, 매입임대를 모두 알아봤지만 당장은 불가능했다.
그때 알코올의존이 있으신 분들의 주거지원을 지원해 주고 있는 연수원이 떠올랐고, 사정을 설명해 임시 거처 한 곳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현실적인 문제.


돈.


어려울 때 돕겠다고 했던 두 교회에 연락했다. 사정을 들은 두 곳 모두 망설임 없이 손을 내밀었다. 필요 금액은 약 400~500만 원.

산후조리원 2주, 기본적인 육아용품을 마련할 최소한의 금액이었다.

한 교회에서 400만 원을, 다른 교회에서는 주말 모금을 통해 약 450만 원을 마련해 주었다. 단 2주 만에 850만 원이 모였다.


이제부터는 정말 바빴다. 보라매병원 근처 산후조리원을 예약하고, 신생아 용품을 하나하나 준비했다. 공갈 젖꼭지, 젖병, 기저귀, 냉장고, 세탁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손을 보태주었고, 집은 거의 완벽에 가깝게 갖춰졌다.

그리고 한 달 뒤, 엄마는 병원으로 들어갔고 자연분만으로 건강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아빠에게 물었다.

“이름은 지었어요?”

“응. 수빈이. 하수빈.”

“이름 참 예쁘네요. 아빠가 된 기분은 어때요?”

그는 머쓱하게 웃었다.

“아직 잘 모르겠어. 좋기도 하고 얼떨떨하기도 하고…”

“엄마는 이제 산후조리원에서 2주 동안 잘 쉬실 거예요. 아빠는 그동안 저랑 아빠 교육받으시면 됩니다. 하하.”


‘설리’를 닮은 수빈이 아빠는 조용히 말했다.

“고마워요. 잘 키울게.”


잘 됐다. 아이도, 엄마도, 아빠도. 그리고 도와준 사람들도. 나도.


이후 한 교회에서는 1년 동안 한 달에 두어 번씩 찾아와 아이를 돌봐주고, 집을 청소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주었다.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우리 아들보다 한 살 어린 수빈이는 이제 일곱 살이 되었다. 한두 달에 한 번씩 연락이 온다.


“놀러 갈 테니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자.”

그럴 때마다 잔소리를 한다.


“애 잘 키우겠다는 사람이 소주 생각만 하면 되겠습니까? 하하.”

2025년 겨울에는 정신이 없어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깜빡했다.


“일 때문에 올해는 못 챙겼네요.”

그러자 ‘설리’를 닮은 수빈이 아빠가 설리처럼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지금 보내면 되잖아?”

“네… 알겠습니다.”


몬스터주식회사 ‘설리’를 닮은 아빠를 둔 수빈이에게.

잘 커라.

삼촌이, 계속 지켜보고 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