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뜬 채 웃고 있던 사람에 대하여
2023년, 1월이었는지 2월이었는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따갑던 찬바람이 조금은 누그러지던 때였다. 업무차 방문한 쪽방 건물 안은 서늘하고 허름했지만, 이상하게도 따뜻한 기운이 감돌던 날이었다.
나는 2층에서 주민을 만나고 있었고, 함께 동행한 후임은 3층에서 다른 주민을 만나고 있었다.
오래된 이야기들, 이른바 그들의 ‘라떼 시절’을 듣다 보니 차갑던 얼굴에 홍조가 돌고, 방 안에는 묘한 훈훈함이 차오르던 순간이었다.
그때였다.
후임녀석이 갑자기 계단을 쿵쾅거리며 씩씩거리기 시작했고 호흡이 뒤엉킨채 나에게 이야기를 했다.
“팀장님, 올라오셔서 확인해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웃상인 녀석이 얼굴이 굳어 있다. 패딩속 살결에서는 이미 소름이 돋고 있었다. '분명 뭔가 있다.'라는 불길한 느낌이 발끝에서 머리 끝까지 훝고 지나갔다.
나는 괜찮은 척, 담담한 척,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정씨 아저씨가 방 안에 누워 있었다. 늘 그랬듯, 술에 만취한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상했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나는 자연스럽게 어깨를 흔들며 말을 걸었다.
“괜찮아요? 일어나 보세요.”
반응이 없다. 그런데 숨은 쉬고 있는 듯하다.
손을 잡고 다시 흔들었다.
“일어나 보세요. 정신 차려 봐요.”
손을 놓자, 팔은 힘없이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그제야 생각했다. ‘아직은 살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마치 술에 취해 잠을 자는 것 처럼 보이지만 이상하게도 눈을 깜박거리지 않는다.
웃고 있다. 눈을 뜬채로...
당뇨라는 기저질환이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고 순간적으로 평소와 전혀 다른 상태임을 인지했다.
"일단 119부터 호출하자. 전화좀 해줘!"
후임이 119에 전화하여 상황 설명을 하였고 출동할거라고 말해 줬다. 그리고 뭐라고 계속 이야기 하는데 잘 들이지는 않았다. 일단 좀 더 깨워 보자.
가슴을 꼬집었다. 꽤 아플만하게.
반응이 없다. 눈을 뜬채로 미소만 짓고 있다.
큰소리로 다리를 흔들며 말을 했다.
"일어나 보세요! 움직여 봐요!"
몇 차례 꼬집고 흔들고 고함을 질렀더니 진이 다 빠졌다.
곧 119 구급대원이 도착했다.
바이탈체크 후 심박수가 너무 희미하다며 심폐소생술을 해야 되겠다 했다.
함께 힘을 모아 정씨아저씨를 방에서 복도로 꺼냈다. 묵직했다. 그리고 분명 난 정씨 아저씨가 내뿜는 간절한 온기를 느꼈다
심폐소생술이 시작됐다.
1분.
2분.
5분.
10분.
힘에 부쳤는지 추가 지원을 요청했고 잠시 후 다른 팀이 도착했다. 번갈아 가며 심폐소생술을 이어갔다.
그러다 갑자기, 정씨 아저씨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갈비뼈가 부러져 폐를 찔렀을 것이다. 민방위 교육에서 들었던 말이 스쳤다. 강한 심폐소생술은 갈비뼈를 부러뜨릴 수 있다고.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일어나 주길 바라는 것뿐이었다.
구급대원의 얼굴에서 무언가 계속 정씨 아저씨의 가슴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땀인지, 피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살리려 애쓰는 모습에 존경심이 밀려올 즈음, 병원으로 이송하겠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보호자가 동승해야 한다고 했다. 보호자를 자청하고 나 역시 두 번째 구급차에 올라 강북삼성병원으로 향했다.
“살 수 있어요?”
짧게 물었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정답 같지도, 위로 같지도 않은 대답이었다.
앞서가는 구급차에서도 계속 심폐소생술이 이어지고 있다는 무전이 들려왔다. 종교는 없지만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버텨달라고 속으로 계속 빌었다.
덜컹거리는 차 안, 삐용삐용 울리는 사이렌.
이보다 더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가 있을까.
멀미할 틈도 없었다. 빨리 도착해야 했다.
병원에 도착해 곧장 응급실 소생실로 들어갔다. 그때부터는 기다림이었다. 언제까지일지는 몰랐지만 그저 살아만 있기를 바랐다. 아니, 조금 전까지 분명 살아 있었다.
30여 분 후, 온몸이 땀으로 젖은 의사가 보호자를 찾았다.
사망했다는 말을 들었다.
죽었다.
왜?
절차상 몇 가지 질문에 답하고 귀가하기로 했다. 용산119센터에서 태워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들를 곳이 있어서요. 먼저 가세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머쓱한 웃음을 남기고 헤어졌다.
갑자기 화가 났다. 이렇게까지 화가 나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왜 죽었지?'
분명 내가 갔을 때는 살아 있었는데...
병원에서 사무실까지 도보로 약 40분.
그냥 걸었다. 아무 생각 없이.
화가 났고, 말없이 눈물이 흘렀다.
걷다 보니 정씨 아저씨와 내가 자주 나누던 대화가 생각났다.
내가 말했다.
“맨날 안주도 안 드시고 술만 드시면 정말 큰일 나요. 겁주려는 게 아니라, 진짜 죽을 수도 있어요.”
정씨 아저씨는 늘 같은 대답을 했다.
“난 술 먹고 자다가 그냥 죽는 게 소원이야.”
그래.
본인이 바란 죽음을 바람대로 이룬 걸지도 모른다. 아내도, 자식도 있으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이유로
노숙을 택한 사람이었다.
‘죽는 것도 자유롭게 선택하셔서 다행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왜 혼수상태에서 웃고 있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
그 이후로 죽음에 대해 쉽게 말하지 않게 되었다. 다음에 또 그런 순간이 온다면 나는 조금 더 버티자고 말할 것이다. 억울해도 일단은 살아 보자고.
그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직은 필요하다고 믿으면서.
나는 기억한다. 눈을 뜬 채 웃고 있던 그 얼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