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이야기 10] 고양이 아빠

버려진 것들 곁에 남은 사람

by 진형

아주 어릴 때 일이야. 어느 날, 아버지랑 어머니가 크게 싸우셨어. 아버지가 어머니를 많이 때렸고, 그 모습을 도저히 보고 있을 수가 없었어. 어린 마음에도 너무 무섭고, 견디기 힘들었나 봐. 그래서 집을 나와서 뒤뜰 쌀가마 사이에 숨어버렸어. 그냥 아무도 못 찾게 조용히 숨어 있으려고 했는데, 얼마나 긴장했었는지, 아니면 너무 지쳐 있었는지, 그만 거기서 잠이 들어버렸지.


그 사이에 집에서는 난리가 났더라고. 어머니랑 아버지가 나 찾는다고 온 동네를 돌아다녔대. 근데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깊이 잠들어 있었지. 아침이 돼서야 눈을 떴는데, 눈앞에 어머니가 계셨어. 나를 보자마자 울고 계시더라고. 밤새도록 나를 찾았다고, 죽은 줄 알았다고 하시면서… "여기서 잤냐." 울먹이면서 물어보시는데, 어린 마음에도 괜히 죄송한 마음이 들었어.


그때가 여름이었어. 날이 더워서 밖에서 그렇게 잠들 수 있었던 거겠지. 근데 내겐 그냥 무섭고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어.


내가 열다섯 살 쯤엔 사출기 만드는 회사에 들어가서 일했지. 근데 거기 공장장이란 놈이 있었는데, 진짜 무식했어.


그날도 정해진 할당량을 채워야 했는데, 내가 그걸 다 못 맞췄어. 그러자 갑자기 공장장이 화가 났는지, 파이프렌치를 들더니 내 머리를 그대로 내려치는 거야. 순간 너무 아팠지만, 그 자리에서 쓰러질 수도 없었어.

머리가 점점 부어오르더라고. 힘줄이 터졌는지, 이마에 커다란 혹이 생겼어. 결국 병원에 갔더니 피가 안에서 고여서 그런 거래. 의사가 피를 빼줬지만, 그때 생긴 상처가 아직도 남아 있어.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사출기 만지는 일만 하다 보니 조금씩 돈을 벌게 됐어. 경력이 쌓이면서 기사 자격도 따고, 월급도 점점 괜찮아지더라고. 그러다 보니 "그래, 내 공장을 한 번 해보자." 싶었어. 그래서 공장을 임대해서 동네 형이랑 같이 운영을 시작했지. 그때까지만 해도 장사가 꽤 잘됐어. 일도 많고, 돈도 잘 돌았고. "아, 이제 좀 살만해지나?" 싶었는데… 갑자기 IMF가 터진 거야.


모든 게 순식간이었어. 돈을 막을 데가 없었고, 수금하러 가도 돈 줄 사람이 없었어. 다들 망하기 직전이었으니까. 결국 나도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망해버렸어. 한순간이더라.


IIMF 때 다 망하고, 한 3년 정도 떠돌아다녔어. 사실상 노숙이나 다름없었지. 형님 집에서 몇 달 신세 지고, 시골 내려갔다가 1년 넘게 막노동도 하면서 버텼어. 그래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다시 서울로 올라왔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고. 결국 노숙생활을 한 2년 정도 했어.


그러다 겨우 일용직을 시작해서 조금씩 살만해지나 했는데, 어느 날 길거리에서 갑자기 쓰러졌어. 배도 너무 아프고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데, 사람들이 그냥 지나가더라. 아무도 물어보지도 않고. 어쩔 수 없이 택시 타고 병원에 갔는데, 종아리에 종양이 8개나 있다고 하더라고. 결국 수술을 받았고, 병원에서 서울역 ‘다시 서기’ 센터를 소개해줘서 주거 지원을 받았어. 그렇게 해서 지금 이 쪽방으로 오게 된 거야.


처음 여기 왔을 때, 집주인아줌마가 새끼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있었어. 시간이 지나면서 고양이들이 제법 커졌는데, 그러니까 사료값이 많이 들잖아? 그래서 못 키우겠다고 버린다는 거야. 말 못 하는 짐승이라고 사료값 아깝다고 버리면 안 되지 않냐고, 따지다가 그냥 내가 키운다고 해버렸어. 그렇게 한 마리랑 같이 지내게 됐어.


그렇게 2년쯤 지났을 때였나, 내가 일하러 나가면서 사료를 챙겨두고 갔는데, 어느 날 방에 돌아와 보니까 시커먼 고양이 한 마리가 내 방에서 밥을 먹고 있더라고. 몇 번을 쫓아내도 나갈 생각을 안 해. 오히려 배를 딱 깔고 날 빤히 쳐다보는 거야. 나가라고 해도 안 나가고, 오히려 나 따라오고… 결국 그냥 키우기로 했어. 그렇게 두 마리가 됐지.


그렇게 또 시간이 흘러서, 두 마리랑 잘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오 씨’라는 사람이 키우던 고양이를 버리고 갔어. 처음엔 밖에서 밥만 줬는데, 몇 년 지나면서 이놈이 자꾸 감기에 걸리는 거야. 안 되겠다 싶어서 결국 방으로 들였지.


그렇게 세 마리가 됐어.


지금도 솔직히 사료값이 만만치 않긴 한데, 그래도 난 얘네를 버릴 수는 없더라. 나도 떠돌던 시절이 길어서 그런지, 버려지는 게 얼마나 서러운지 아니까. 그렇게 세 마리랑 같이 살고 있어.

요즘은 그냥 집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고양이나 키우고 있어. 할 일도 없고, 밖에 나가봐야 딱히 갈 데도 없고… 그냥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고 있지. 고양이들 밥 주고, 쓰다듬어 주고, 그게 내 하루야.


근데 솔직히 말해서, 상담소 선생님들 아니었으면 난 여기까지 못 왔을 거야. 진짜로. 다른 곳에 있었으면, 아마 벌써 무너졌겠지. 지금 내 몸 상태로는 일도 쉽지 않은데, 그래도 일할 수 있게 길을 열어준 것도 선생님들이었고, 방세 밀렸을 때도 상담소 직원분이 도와줬고… 주민센터에서 긴급지원까지 해 줘서 숨통이 좀 트였어.


이렇게라도 살아갈 수 있는 게 다 그분들 덕분이야. 진짜 너무 감사하지. 내가 힘들 때 누군가 손을 내밀어 준다는 게, 그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살아보니까 알겠더라.


고양이 밥 정도는 내가 벌 수 있으니까, 그 정도만 벌면 충분해. 더 욕심낼 것도 없고, 더 바라지도 않아. 그냥 고양이들이 배고프지 않게, 나도 너무 힘들지 않게, 그 정도만이면 돼.


이제 새로운 곳으로 들어가면, 적어도 지금 이 쪽방보다는 조금 더 나을 테니까, 거기서 편안하게 살려고 해.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 것도 좋지만, 이제는 조용히, 내 속도대로 살고 싶어. 너무 많은 걸 기대하지 않고, 그냥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무리하지 않고 살아가고 싶어.


생이 끝날 때까지, 고양이들과 함께 지내다가… 조용히 마무리하고 싶어. 특별한 거 없어도, 대단한 일이 없어도, 그저 고양이들이 내 곁에 있고, 내가 그 아이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고양이랑 사는 게 내 낙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냥 그렇게 살려고. 아침에 눈을 뜨면 고양이들이 옆에 있고, 밥 주고, 쓰다듬어 주고, 또 하루가 지나고. 그렇게 조용히, 평온하게, 마지막까지 함께할 수 있으면, 그걸로 난 충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