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넘기는 것 말고는 없던 시간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어디 있겠어? 그냥 어렸을 때부터 형편 안 되니까 사회에 나가서 일한 것밖에 더 있나. 엄마 안 계시고, 아버지도 그때 품팔이하러 다니셨으니 집에 있어도 할 일이 없었지.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공장에 나가게 됐어. 형틀 공장, 마대 공장, 뭐 여기저기 닥치는 대로 일했지.
좋은 기억? 그런 건 없었어. 집구석이 그러니까 꿈같은 것도 없었고, 그냥 되는 대로 살았지. 그래도 한때는 "열심히 해서 돈 좀 벌어야지." 그런 생각도 했어. 근데 그게 내 팔자가 그런 건지, 체격이 약한 건지, 아니면 그냥 술이 문제였던 건지…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술 생각밖에 안 나더라고. 술 먹고 잊고, 또 술 먹고 잊고,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
행복? 원래 그런 거 없었어. 힘들었던 기억은 많아. 열몇 살 때부터 엄마 돌아가시고, 집에서도 딱히 신경 써주는 사람 없으니까 그냥 떠돌았지. 이모네 집에서도 자고, 여름에는 씨발! 산에서도 자고… 밥도 이모네 가서 얻어먹고, 친구네 가서 한 끼 얻어먹고, 그렇게 살았어.
그때는 그냥 버티는 게 전부였어. 꿈도 없고, 미래도 없고, 그냥 그날 하루를 어떻게 넘기느냐, 그게 다였어.
15살 때쯤인가, 16살쯤인가… 정확히 기억은 안 나. 서울이라는 곳을 원래 몰랐어. 그냥 파주 쪽에서만 놀았지. 그러다 누가 그러더라고.
"서울 가면 공장도 많고, 일자리도 많다."
그 말 듣고, 별생각 없이 무작정 나왔어. 아버지한테는 "서울 가서 취직할 거다." 하고 말하고 집을 나왔지.
서울역에 도착했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더라고. 그냥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얼쩡거리는데, 어떤 놈이 다가오더니 묻더라.
"취직하러 왔어?"
그러면서 담배 한 대를 툭 내밀었어. 그렇다고 했더니, 술도 한잔 사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됐지. 그러다 보니 그놈이 "내가 취직시켜 줄게." 그러더라고.
덜컥 따라갔지. 어디라도 가야 하니까.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그냥 공장 같은 게 아니라, 결국 구두 닦는 일이었어.
그래서 그날은 거기서 하루 자고, 다음 날부터 본격적으로 구두를 닦기 시작했어. 그렇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길거리에서 사람들 구두 닦아주면서 1년 정도를 보냈지.
그때는 그냥 살아남는 게 목표였던 것 같아. 어디 딱히 기댈 데도 없었고, 어떻게든 먹고살아야 하니까. 그게 내 서울 생활의 시작이었어.
옛날에 용산 참사 났을 때쯤이었나… 그때는 고물을 주웠었어. 겨울이었는데, 방도 없어서 여름에는 공원에서도 자고, 밤에도 그냥 노숙하면서 버텼지. 근데 겨울이 되니까, 정말 잘 데가 없더라고.
그때 아는 형이 방 같이 얻어서 쓰자고 했어. 그 형이 결핵에 걸린 줄도 모르고, 그냥 같이 방 얻어서 살았지. 둘이서 밥도 해 먹고, 술도 같이 마시고… 그렇게 지내다가 나도 결국 결핵에 걸렸어. 그 형이 먼저 떠나고 나니까, 내 몸도 이상하게 변하더라고. 어떤 날은 추웠다가, 어떤 날은 더웠다가… 몸이 점점 말을 안 듣는 거야.
그래서 서울역 근처에 가서 의사협회인가 뭔가 있는 데서 물어봤어. 근데 거기 의사라는 놈이 감기라고 하면서 감기약이나 먹으라고 하더라고.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왔어.
그러다 아는 놈한테 얘기했더니, "너 이거 아무래도 이상하다, 영등포 요셉병원 가 봐라" 그러는 거야. 그래서 거기 갔지. 소변 검사, 엑스레이, 혈당 검사 싹 다 해봤더니 결핵이래. 그날로 바로 서북병원으로 가서 입원했어.
거기서 1년 정도 지냈어. 치료받으면서 하루하루 버티다가, 내 동네 사는 형을 우연히 만나게 됐어. 그리고 그 형 덕분에 여기까지 오게 됐지. 참,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거야.
솔직히 말해서, 즐거운 것도 없었어. 하루는 그냥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났지 뭐. 아침에 일어나면 술부터 찾았고, 낮에도 술, 저녁에도 술. 어디 가기로 해도, 뭘 하기로 해도 결국 동네에서 술 마시는 걸로 끝났어. 하루가 그냥 술에 묻혀서 흘러갔지.
그게 그냥 내 일상이었어. 특별한 것도 없고, 의미 있는 것도 없고. 그저 술 마시고, 취하고, 또 마시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냈어.
어려운 건 없어. 근데 왜 안 뒈지나, 그 생각만 계속 들어. 얼른 뒈지고 싶은데, 그게 고민이야.
그래, 얼른 뒤져야 되는데… 왜 안 데려가나 싶어. 그냥 조용히 끝나면 될 텐데, 그마저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거 같아. 하하하.
나를 진짜로 챙겨주고 도와준 사람들이 많아. 통장 누나도 그렇고, 동네 형들도 그렇고. 덕배 형, 성일이 형… 다들 나한테 잘해줬어.
담뱃값 없을 때 담배값도 빌려주고, 내가 어려울 때 진짜 마음으로 도와줬지. 그런 사람이 진짜 고마운 사람이잖아. 뭘 달라고 하기 전에 먼저 손 내밀어 주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덕분에 나도 이렇게 살아가는 거지. 그래서 다 고맙지. 뭐.
아, 이제는 좀 느지막하게 편안하게 살아야 하는데, 그 형편이 안 되니까… 앞으로 어떻게 존나게 살아야 하나, 그게 걱정이지.
그렇잖아. 내가 뭐 자식이 있어? 마누라가 있어? 의지할 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 안 그래?
맞잖아. 그냥 하루하루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