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먼저 멈춰버린 사람들
쪽방은 늘 나이 들어간다.
주민들이 살고 있는 이곳은 한 50년 정도 되었을까? 정확한 연식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오래되었다는 것만은 모두가 안다. 낡은 대문, 닳아버린 문지방, 브라운관 tv, 해마다 더 얇아지는 이불.
주변엔 온통 오래되어 간다. 사람도, 물건도, 공간도 같이 늙어간다.
쪽방에서는 오늘도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고, 내일도 오늘과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하루를 보낸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감각을 점점 잃어버린 채 살아간다.
그날도 그런 시간의 감각이 무뎌진 주민과의 이야기였다.
늘 그렇듯 방문을 두드리고,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묻기 위해 방 안으로 들어갔다. 특별한 것 없는 하루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그 방의 아저씨는 앉은 채로 아무 말이 없었다.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고, 한참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생각이 어딘가에 가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자연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아저씨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니, 별 일은 없는데, 내가 왜 사는지 모르겠어."
그는 한숨을 쉬듯 말을 이었다.
"나는 그저 일하고 밥 먹고 잠자기만 했을 뿐인데 말이야."
아저씨의 말이 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더 슬퍼 보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슬퍼 보여요?"
내 질문에 아저씨는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울먹거리며 나에게 이야기했다.
"내가 오늘 어디를 갔는데 말이야. 예순이 넘었다고 어르신이라고 부르더라. 어르신이라는 말을, 난 오늘 처음 들었어."
그리고 말을 이어 나갔다.
"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았어. 지금도 일용직이지만 열심히 일하고 있고 몸도 이렇게 멀쩡한데 말이야."
아저씨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조금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오늘 어르신이라는 말을 들으니까..."
" 그동안 난 아무것도 해 놓은 게 없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 살아왔나 싶더라."
말끝이 흔들렸다. 아저씨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한참을 바닥만 바라봤다.
"지금도 억울하고 화가 나. 눈물이 멈추질 않아. 내가 뭘 그렇게 잘못 살았나 싶고."
그 말이 끝나자 방 안이 조용해졌다. 아저씨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나는 그 침묵을 깰 자신이 없었다. 어르신이라는 말은 존중의 표현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에게는 자신이 이미 지나가 버린 사람처럼 불리는 순간이었을지도 몰랐다.
나는 무언가를 더 묻지 않았다. 괜찮다는 말도, 앞으로는 괜찮아질 거라는 말도 쉽게 꺼낼 수 없었다.
쪽방에서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보다 시간이 멈춰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오늘이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고, 내일도 오늘과 비슷할 것 같을 때 사람은 나이를 먹는 대신 그 자리에서 머물게 된다.
아저씨는 늙은 것이 아니라 누구 보다 오래 머물러 있었던 것뿐이다. 하루의 삶을 쌓아갔을 뿐인데, 그 시간은 결국 어르신이 되었다.
나는 방을 나서기 전에 한 마디만 남길 수 있었다.
"몸은 아직 괜찮아 보이세요."
고개를 끄덕였지만 위로의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쪽방은 나이 들어간다. 공간도, 시간도, 사람도.
그리고 그렇게 또 하루를 조용히 쌓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