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사람의 시간
쪽방에는 부부가 아닌데도 부부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다. 같은 방을 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보낸다. 아침이면 서로의 방문을 두드리고, 병원 가는 날이면 시간을 챙겨주고, 저녁이면 자연스럽게 같은 자리에 앉아 밥을 먹는다. 누가 먼저라고도 할 것 없이 서로의 하루를 알고 있는 사이. 그렇게 20년을 붙어 지낸 두 사람이 있다.
그 중 한 사람은 오랫동안 신장투석을 해왔다. 정해진 요일이 되면 말없이 병원으로 향했고, 돌아오면 늘 지쳐 있었다. 다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그를 기다렸다. 투석이 있는 날이면 술을 덜 마셨고, 밥은 조금 늦게 먹었다. 특별한 약속은 없었지만, 그들에겐 이미 오래된 생활의 리듬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 리듬이 멈췄다.
그들이 사는 고시원에는 작은 공용 주방이 하나 있다. 그날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밥을 챙겨 먹기 위해 두 사람은 주방으로 향했다. 한 사람은 조리대 앞에 서서 냄비를 올렸고, 다른 한 사람은 그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쿵.”
뒤를 돌아보니, 투석을 하던 그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갑자기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끓이던 물을 그대로 둔 채 그는 쓰러진 사람을 흔들어 깨웠다.
“야! 일어나 임마!”
몇 번을 불러봤지만 대답은 없었다. 숨이 붙어 있는지 확인하려 얼굴을 가까이 대보니, 호흡은 이미 가늘게 끊어질 듯 이어지고 있었다.
119를 불렀다.
그리고 그날 이후, 그와 함께하던 하루의 리듬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고시원을 갈 때마다 친구를 잃은 그를 마주하게 된다. 매번 축 늘어진 어깨, 표정 없는 얼굴, 그리고 눈가에는 마르지 않는 눈물이 고여 있다.
"주방에 가면 그놈이 생각나."
잠시 말을 멈춘다.
“몸 관리 좀 하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나한테 한마디도 안 남기고, 그렇게 허무하게 가버렸어.”
나는 말을 삼켰다.
20년의 시간을 몇 마디 위로로 대신할 수는 없었다. 한참 뒤에야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지워요. 같이 산 세월이 그만큼인데.”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저도 십수 년 전에 할머니를 보내드렸어요. 지금도 문득 생각나면 가슴이 아파요.”
그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잊히진 않더라고요. 대신... 마음에 두고 사는 거죠. 같이 웃었던 기억이 남아 있으니까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어갔다.
“지우려고 하지 않아도 돼요. 그냥… 그렇게 남겨 두세요. 같이 있었던 시간이, 언젠가는 힘이 되어 줄 테니까요.”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더 말을 보태지 않았다.
그 마음이 닿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와 함께 있고 싶었다.
쪽방에서의 우정은 가족보다 조용하고, 그래서 더 깊다. 돌아갈 집이 없는 이들에게는 서로가 마지막 인연이 되기도 한다.
이곳의 우정은 대단이 특별하지 않다. 생일을 챙겨주거나, 기념일을 기억해 주는 일은 드물어도, 대신 병원 가야하는 날을 기억하고, 술을 너무 많이 마시지 못하게 잔을 빼았는다. 아침에 일어나면 방문을 한번 두드리고 기척이 있는 살핀다. 언제 약을 먹었는지, 며칠째 밖에 나가지 않았는지, 돌아오지 않았는지, 밥을 챙겨 먹었는지, 그런 사소한 것들이 이곳에서는 안부이고 관심이다.
가족은 아니지만 함께한 세월이 가족보다 더 하다. 그 세월은 말없이 서로의 습관을 익히게 하고, 말투를 닮는다. 그리고 걸음의 속도까지 맞춰 놓는다. 그래서 그 중 한 사람이 빠지면, 결국 함께 맞춰왔던 하루의 속도가 무너진다.
식탁의 의자는 그대로 두개지만, 앉는 사람은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