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10개월, 20만원의 약속
“우리 내기할까요?”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계속 술을 끊겠다, 줄이겠다 몇 년째 약속만 하시는데… 실천은 안 되시잖아요? 이번에도 못 끊는다에 저는 한 표 걸겠습니다. OO님은요?”
그는 잠깐 멈칫하더니 콧방귀를 뀌었다.
“야. 내가 한다고 하면 하는 놈이야.”
나를 노려보며 덧붙였다.
“내기해볼까? 얼마 줄 건데?”
예상보다 쉽게 물러서지 않는 모습에 잠시 당황했다.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좋아요. 10개월 금주하면… 20만 원 드리겠습니다.”
그는 크게 웃었다.
“20만 원? 그래, 좋아. 누가 이기나 해보자!”
나는 잠시 정신을 붙들고 덧붙였다.
“대신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는 탐탁지 않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10개월 안에 한 번이라도 술 마시면, 이 동네를 떠나는 겁니다.”
그리고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그 정도는 해야 저도 20만 원을 걸 수 있을 것 같아요.”
순간 그의 표정이 굳었다.
“야! 내가 어디 겁나서 술 못 끊을 것 같냐?”
나를 세차게 노려보며 쏘아붙였다.
“내가 이리 봬도 한다면 하는 놈이야. 10개월 안에 내가 술 마시면, 네가 떠나라고 안 해도 내가 알아서 떠날게.”
우리는 잠시 서로를 노려봤다.
그렇게 우리의 내기는 성사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를 믿지 않았다.
수년 동안 수없이 금주를 약속했지만, 단 한 번도 지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늘 말했다.
“이번엔 진짜야.”
그리고 나는 늘 고개를 끄덕이며 응원해 줬다.
하지만 결과는 늘 같았다.
이번만큼은 사회복지사가 아니라, 남자 대 남자로 맞붙어볼 생각이었다. 응원이 아니라, 진짜 승부였다.
그래서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동네 사람들에게 먼저 알렸다.
“OO님이 10개월 금주하기로 했습니다.”
이번엔 사람들이 콧웃음을 쳤다.
“이번엔 진짜래? 웃기지 마.”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혹시 술 마시는 거 보시면... 저한테 조용히 알려주세요.”
첫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다. 나는 일부러 가까이 앉아 말을 붙였다. 혹시라도 술 냄새가 나는지 확인하려고.
그런데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에게도 물어봤다.
“혹시 술 마시는 거 본 적 있어요?”
다들 고개를 저었다. 밤에도 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건.
그렇게 조용히, 아무 소리 없이 8개월이 흘렀다. 그는 여전히 술을 마시지 않았다.
문득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러다 정말 20만 원을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괜히 계산기를 두드려봤다.
20만원, 생각보다 아까운 돈이었다.
점점, 내기를 먼저 꺼낸 내가 한심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판을 더 키웠다.
“누구든지 OO님이 술을 마시는 것을 목격하거나, 마시게 한다면 이 자리에서 현금 5만 원 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의 눈이 잠깐 반짝였다.
20만 원을 주는 것보다는, 5만 원으로 막는 게 싸게 먹힐 것 같았다.
어차피 내가 이겨도 상관없었다.
“괜찮아요. 다음에 또 도전하면 되지요.”
그렇게 한마디 타이르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5만 원을 노리는 사람은 있었다. 일부러 술을 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피했다. 자리를 뜨거나, 말을 돌리거나, 아예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결국 5만 원을 노리던 사람들도 하나둘 줄어들었다.
그렇게 10개월이 다가왔고, 약속한 날짜가 되었다.
그는 담담한 얼굴로 내 앞에 섰다.
“오늘 날짜 알지?”
나는 준비해 둔 20만 원을 봉투에 담았다.
그리고 크게 적었다.
‘금주를 경축드립니다!’
봉투를 건네며 말했다.
“약속 지키셨네요.”
그는 봉투를 열어 돈을 한 장씩 세어봤다.
“응, 20만원 맞네. 고마워.”
그리고 홀연히 자리를 떠났다.
나는 졌다.
그런데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5년이 지난 지금, 그 이야기는 우리 사이에서 가장 큰 이야깃거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