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늘 오케이였다.
경로당 앞마당에는 두 키쯤 되는 목련나무가 있다. 그 목련나무는 담벼락 밖으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고, 쪽방거리와 맞닿아 있었다.
봄이 오면 그 나무는 가장 먼저 티를 냈다.
아직 공기는 차가운데, 목련은 혼자 먼저 계절을 바꾸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아래에 앉아 있었지만, 정작 나무를 올려다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목련나무 밑은 특별한 공간이었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술을 마시고, 화투를 치며 시간을 보내던 자리였다.
목련이 핀 담벼락에는 빨간 냉장고가 하나 놓여 있었다. 원래는 소화기를 보관하는 통이었지만, 사람들에게는 빨간 뚜껑 소주를 잠시 넣어두는 곳이었다.
봄을 알리는 목련이 활짝 필 때가 되면, 그 자리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던 사람이 있었다.
일명 ‘오케이맨’이라고 불리던 사람이었다.
그는 술에 취해 있든, 취해 있지 않든, 기분이 좋든 나쁘든, 누군가 욕을 하든 말든, 항상 “오케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오케이맨’이라고 불렀다.
그 자리를 지나갈 때면, 오케이맨은 나에게 늘 말을 건넸다.
“오늘도 수고해. 오케이?”
나는 웃음을 띠며 말했다.
“오늘은 조금만 드시고 들어가 쉬세요.”
그는 흥이 넘치는 목소리로 한마디를 남겼다.
“오케이!”
그는 늘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빨간 뚜껑 소주를 전용냉장고(소화기함)에 하나 꺼내 놓고, 누가 오든 안 오든 혼자 먼저 잔을 채웠다.
누군가 옆에 앉으면 잔을 건네며 말했다.
“오케이, 한잔해.”
그는 몇 해 전, 갑작스럽게 뇌경색을 앓았다.
뇌경색이 오기 전에는 일용직으로 근근이 살아갔지만, 병이 온 뒤로는 수급자가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늘 ‘오케이’였다.
하지만 그의 삶은 ‘오케이’ 일 수 없었다.
그가 사는 곳은 쪽방 중에서도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지하였다. 늘 곰팡이와 싸워야 했고, 불을 켜지 않으면 낮인지 밤인지조차 알 수 없는 곳이었다.
마음속은 늘 ‘오케이’였지만, 그는 계단을 내려가다 수없이 넘어졌고, 누군가와 시비에 휘말려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몇만 원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경찰서에 불려 가기도 했다.
그래도 그는 늘 “오케이”라고 말했다.
술은 그의 삶을 망쳐 놓았다.
끝내 그는 술을 이겨내지 못했다.
일어서는 것조차 힘겨워졌을 때, 나는 그를 요양병원으로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병원차에 그를 모시곤 단호하게 말했다.
“몇 달 술을 끊고 회복해서 오세요. 건강해야 또 술을 드시지요.”
그는 아픈 몸을 병원차에 눕힌 채 말했다.
“오케이. 나중에 보자.”
그렇게 그는 회복을 약속한 사람처럼 조용히 떠났다.
몇 달이면 퇴원할 줄 알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상태가 좋지 않았는지, 그해에는 돌아오지 못했다. 다만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만 들려왔다.
그렇게 다음 해가 되었고, 목련이 핀 자리 아래에는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다. 자리의 주인이 아직 돌아오지 않아,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이 어색해 보였다.
'오케이맨'은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듯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병원으로부터 그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가 병마와 싸우며 얼마나 버텼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는 활짝 피었다가 금방 사라지는 목련을 닮았다.
꽃잎이 떨어지듯, 그렇게 떠났다.
목련은 해마다 그가 앉았던 그 자리에 다시 꽃을 피운다.
목련이 필 때면 그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오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