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지 말았어야 했다.
“아내가 병원에 입원해야 할 것 같아.”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병원에 입원하시겠다고요?”
“응. 이번에는 꼭 간다고 했어. 아내 먼저 보내고 나도 얼마 있다가 입원하려고.”
잠시 말을 멈췄다가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처럼 계속 술을 먹으면 곧 죽을 것 같아.”
그 말에는 꽤 진심이 느껴졌다.
나도 진심으로 말했다.
"그러면 술을 드시지 않고 내일 다시 아내분과 같이 오세요."
만나기로 한 날은 금요일 오후였다. 일부러 전화를 하지는 않았다. 스스로 마음을 잡고 오지 않으면 결국 입원은 어렵기 때문이다.
약속한 그날, 부부는 오지 않았다. 나는 당연하듯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알코올병원에 입원한다는 것은 한동안 나의 자유를 내려놓는 일이다. 그 사실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었다.
사무실에 앉아 행정업무를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때 한 주민에게 전화가 왔다.
“선생님, 김 씨네 부부 있잖아요. 병원 간다고 엊그제부터 술도 안 먹고 선생님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나는 더 말을 묻지도 못한 채 쪽방으로 달려갔다.
부부는 나무쉼터에 앉아 있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이러했다.
“다음 날 가려고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술을 먹었어.
그러고 나서 생각이 났지. 오늘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는 걸.”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수줍게 말했다.
“못 가겠더라고.
술 안 먹고 만나기로 했는데 약속도 못 지키고 말이야.
정말 미안하게 됐어.”
그는 미안하다는 말을 계속했다. 그 모습을 보니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해졌다.
나는 그들이 이미 포기한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다짐이 진심이라는 것을 확인했으니 이제부터는 실전이었다.
여기저기 전화를 돌렸다.
빠른 시간 안에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야 했다.
한 시간 정도 전화를 돌린 끝에 이틀 뒤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았다. 사는 곳에서도 꽤 가까운 거리였다. 우리는 그날 함께 병원에 가기로 약속했다. 그렇게 약속을 정해 두고 그날을 기다렸다.
당일, 아침부터 사무실이 분주했다. 이곳저곳에서 요청하는 자료가 많았고, 숨 돌릴 틈도 없이 업무가 쏟아졌다. 결국 나는 후임에게 병원을 함께 가 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실수였다.
후임이 모시러 갔지만 그는 함께 가기를 거부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전화를 걸어 다시 한번 같이 다녀오시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그는 나와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약속을 미뤘다.
미루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알코올 환자는 마음먹었을 때 가지 않으면 다음이 없다.
그렇게 우리의 약속은 어긋났다.
시간은 흘러갔다. 그의 아내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술에 취한 채 길에서 해맑게 웃으며 떠들고 있었다. 약속은 이미 잊힌 지 오래된 듯했다.
나 역시 다시 일상으로 흘러갔다.
몇 달이 지났을까.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울먹이며 말했다.
“어제 새벽에 사고가 났어. 그래서… 죽었어.”
잠시 숨을 고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술에 취해 새벽에 밖에 나간 모양이야. 나도 술에 취해 자느라 몰랐어. 아침에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어. 갑자기 도로로 뛰어들었고 새벽 버스에 치였대. 그리고… 거기서 죽었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상투적인 말을 꺼냈다.
“마음이 아프시겠어요. 안타깝게 되었네요. 힘내세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나는 분노에 휩싸였다. 정말 한심하고 못난 놈이라는 생각이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바쁜 척하지 말았어야 했다.
후임에게 부탁하지 말았어야 했다.
다음으로 미루지 말았어야 했다.
약속을 어기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그녀는 살았을지 모른다.
다음날부터 나는 그를 만나기 어려웠다. 그는 내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하염없이 미안했다.
하지만 미안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는 나에게 고마워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