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3살 때까지 부산에서 살다가 1975년에 양동으로 이사를 왔어요. 그때 밑에 있던 건물, 지금은 건설 사무실이지만, 원래는 고추 방앗간이었어요. 우리 아버지 하고 어머니가 그 옆에서 장사를 하셨죠.
그런데 어머니가 나를 부르시더니, 우리 아버지가 바람을 피웠다고 하시더라고요. 둘째어머니가 있고, 심지어 딸까지 있었어요. 어린 마음에 충격을 많이 받았죠. 그래도 그곳에서 쭉 살았어요. 은행에서 일할 때까지, 그러니까 1975년부터 계속요. 동네 사람들은 다 알죠, 나도 그만큼 오래 살았으니까.
꿈? 그런 거 없었어요.
상고 졸업하고 은행 들어가서 한 10년 근무했어요. 근데 꿈같은 건 없었어요. 돌아보면 그냥 나태하게 산 것 같아요.
힘든 건 딱히 없었지만, 가난했죠. 부모님이 늘 일수를 놓으셨거든요. 그러니까 일수 받으러 사람들이 매일같이 찾아왔어요. 그걸 보면서 어릴 때부터 좀 충격을 많이 받았죠. 우리 아버지가 사고도 많이 치셨어요. 남들한테 돈 빌려서 가게 차렸다가 결국 우리 어머니가 빚을 다 갚으셨죠. 어머니는 결국 설거지만 하면서 사신 거예요.
행복했던 기억은... 글쎄요. 부모님은 장사하느라 바빴고, 나는 젊었을 때 친구들이랑 술 마시고 노는 게 전부였어요. 가족 간의 대화 같은 건 거의 없었죠.
인생에서 큰 변화는 은행을 그만두면서 시작됐어요. 1993년에 은행을 그만두고 나서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졌죠.
사실 적성에 안 맞았어요. 매일 밤 12시까지 일하는 것도 힘들었고, 위에서는 잔소리가 심했어요. 나를 무시하는 것 같기도 했고요. 나는 아부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결국 극복을 못 했어요. 그냥 술로 조졌죠.
지금 돌이켜 보면, 세상을 너무 좁게 봤던 것 같아요. 이제는 좀 더 넓게 보이고, 여유도 생겼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친구 두 명이 암과 뇌졸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어요. 내 양팔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었죠. 그때 세상 사는 게 너무 싫었어요.
지금은 하루하루 무료하게 보내요. 하루 종일 집에 있으니까 심심하죠. 그래서 치매 예방도 할 겸 이것저것 해요. 이번에 경마장도 가봤어요. 많이 배팅하는 건 아니고, 500원, 1천 원 정도씩만 걸어요. 로또도 하면서 나름 공부하고 있어요. 틱톡도 많이 보고... 근데 사기도 많이 당했어요. 하하하.
나를 도와주는 사람도 있어요. 우리 큰 형님(아랫집 형님)이 나한테 많은 도움을 줘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우게 해 주죠. 형님이 항상 그래요. "아우야, 걱정하지 마라. 내가 이번에 한 건 해서 너랑 나랑 먹고살게 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물론 빈말이겠지만, 그래도 고맙죠.
사실 신용불량 상태라서 신용회복위원회도 찾아갔어요. 법원에 압류된 게 있는데, 해결이 안 되더라고요. 부산까지 가야 한다는데, 갈 수도 없고... 날짜도 놓쳐서 더 어렵게 됐어요.
앞으로? 욕심 없어요. 이제 살 만큼 살았으니 무슨 소망이 있겠어요? 그냥 덜 아프고, 갈 준비 하면 되죠. 욕심은 다 버렸어요. 여기가 내 고향이나 마찬가지예요. 부모님도 여기 계셨고, 지금은 친구들도 안 만나지만 그래도 여기가 나한테는 가장 익숙한 곳이에요. 다른 곳에서는 못 살 것 같아요.
우리 형님은 "한 건만 하면 북한산 근처에 빌라 얻어서 같이 살자"라고 하는데... 그건 그냥 희망사항이죠. 매주 형님이 그러세요.
"야, 일주일만 지나면 1억 들어온다!"
그런데 일주일 지나면 또...
"야! 계약 끝났다. 파산됐다. 그놈이 돈을 안 넣었다."
결국 인생은 베풀고, 의지하면서 사는 거죠. 크게 욕심부릴 것도 없고, 가진 거 있으면 나누면서 사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냥 그렇게 살면 되는 거죠,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