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청와대 정책기획위원회의 ‘포스트코로나시대의 온라인정치참여 발전방안’이라는 연구에 대한 자문 내용을 정리하였습니다.
빠띠가 서울시의 민주주의 플랫폼인 민주주의 서울을 설계한 내용을 먼저 참고로 드립니다. 플랫폼 기획 운영을 담당했고, 플랫폼 운영 가이드 및 소스도 오픈소스로 데모스엑스 시민협력플랫폼 운영 가이드로 공개하였습니다. https://demosx.org
현시점에서 대규모의 시민협력플랫폼을 기획할때 ( 저희는 참여 플랫폼보다는 협력 플랫폼이란 단어를 선호합니다 ) 여러가지 현실적인 부분, 제도적인 부분, 기술적인 부분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현실적인 부분은 공무원 조직이 아직 시민 제안을 여러가지 이유로 반려하는 경향이 높고, 시민 제안을 비롯해 대규모의 토론이나 공론화 과정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못한다는 점이라면. 제도적인 부분은 아직 국민 제안과 토론, 그리고 이후의 투표가 어떤 과정을 거쳐야 법적으로 근거가 있는 토론이나 결정이 되는지 정의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민주주의서울을 설계할때 결정에 방점을 찍기보다는 토론에 방점을 찍고, 결정의 결과도 구속력을 갖기보단 선출된 기관장이 책임있게 대응하는 방식으로 설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현재 온라인을 통해 진행되는 투표나 토론이 양이 크고 작음과 상관없이 실질적으로 유권자나 시민을 대표하고 있는지 실제로 신뢰할만하다고 볼 수 있는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시의 주요 안건에 대해 논의하고 투표하는데 실명인증을 거칠지, 거친다고 해도 실제 그 사람이 맞는지, 또한 토론에 참여하는 사람이 서울시민인지 아닌지 등을 아직은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대표성과 신뢰성을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 디지털 방식의 토론과 투표에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해서 “공론화 하는 공론장 운영”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동시에 주민 인증, 실명 인증, 블록체인 도입 등의 기술적인 부분을 준비하였고, 단순 토론, 단순 투표가 아니라 댓글을 통한 투표 결과를 다양한 스펙트럼과 방법으로 분석해서 시각화하거 해석해서 정책에 반영하는 방법등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현재 시점에서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발견되지 않았던 의제들이 제안되고, 정부가 정책을 수행하기 전이나 과정에 시민들의 의견이 취합되고, 또 사회적으로 중요한 쟁점들을 결정하기 이전에 다양한 방식으로 시민들에게 전달하면서 동시에 토론에 참여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 즉 공론장을 만들고 그 안에서 토론과 숙의의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온라인 플랫폼만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프라인 공론장을 오가면서 토론회나 공청회, 시민 제안 워크숍 등을 동시에 함께 진행하였고 하나의 주제를 놓고 최소한 한 달 이상의 토론이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나고, 거기서 나오는 여러 주제들 또한 정부가 보유하는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진행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경험한 사례 중 하나는 재건축 지역의 길고양이를 보호해달라는 시민 제안인데요. 분명히 캣맘으로 불리는 시민들이 제안을 하고, 토론과 투표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영향을 끼치긴 하였으나. 저희가 열었던 오프라인 토론회에서 해당 커뮤니티에서 오신 분들이 “길고양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 주제를 더 많은 시민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공론화해야 한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특정 주장을 가진 이들의 주장이 사회에 공적인 정책으로 받아들여지려면 정보 공개, 토론을 통한 설명과 이해를 거쳐서 공감을 얻어야 하는 시대라는 것을 시민들은 금새 이해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스템적으로는 국민청원이 가지고 있는 한계이자 민주주의 서울에서 개선하려고 했던 지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특정 주장을 가진 사람들의 제안이 특정 조건을 넘으면 가장 높은 직위를 가진 사람이 답변한다는 구조에서는 특정 목소리가 높은 집단과 정부가 1:1로 대면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러나 제안 단계에서는 주장을 공감하는 사람들이 힘을 모으되, 그 다음 단계인 공론과 숙의 과정을 반드시 거치도록 설계하고 공론과 숙의 과정에 필요한 정부 보유 데이터와 정보, 입장이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들을 취합해서 시민들에게 전달하고, 적극적으로 사람들이 토론에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해서 의견을 표출하도록 제공하는 것 즉 주제를 공론화하는 공론장을 운영하는 것이 현시점의 정부가 만들어나가야 할 중요한 역할이라고 보았습니다. 이 공론장이 체계적으로 운영된 후에, 서두에 이야기한 제도적, 기술적 장치들이 보완된다면 공론장을 거친 주제를 놓고 함께 투표를 통해 결정하는 단계까지도 갈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그 계획을 민주주의 서울 5단계 계획에 담았고, 숙의 공론장은 5단계의 1단계였습니다.
제도적 시스템적으로 도입이 되려면. 현재 법적으로 정의되어 있는 시민 제안과 공무원 답변 제도를 더 발전시켜서, 일상적인 공론장을 운영하는 체계로 바꾸어야 합니다. 또한 중앙 정부를 비롯한 지방 정부 모두가 시민의 제안, 정부가 시행전에 시민과 함께 검토가 필요한 정책 등을 논의하는 공론장 운영 전담 체계가 모든 정부의 핵심 요소로 정의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서울시는 민주주의서울 추진반을 따로 운영하기도 했고, 이후 민주주의 위원회라는 규모로 확대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조직을 구성하는 동시에 시민 제안 규정을 더 발전시켜서 주민 투표에 준하는 결정과 토론 장치에 대한 제도 논의도 필요합니다. 시민 참여 예산, 조례 제정에도 시민이 발안하고 제정하는 조건들이 온라인으로도 가능하도록 관련 법이 점차 발전하는게 예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단순 댓글이나 투표가 아니라 빅데이터 분석 등을 활용한 다양한 방식의 분석 기술, 그리고 블록체인 및 주제에 맞는 투표 기술의 고도화 등에 대한 연구 작업도 필요합니다. 인터넷의 핵심 기술이자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인 제안, 토론, 투표 기술들이 더 발전할 수 있도록 공적으로 지원하고 육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빠띠에서는 시민협력플랫폼이란 이름의 기관 주도의 공론장이나 제도 공론장(예를 들어 광화문1번가, 민주주의 서울 등)을 운영하는 것과 별도로 시민들이 주도적으로 자체 공론장을 운영하고, 이슈와 관심사 기반의 커뮤니티가 늘어나도록, 또한 쉽게 캠페인을 벌일 수 있도록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관은 중립적이면서도 투명하고 개방적으로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고 시민들이 서로 논의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며 동시에 토론과 투표의 결과가 반영되도록 제도적인 기반과 기술적인 시스템을 제공한다면. 여기에 참여하기 이전에 시민들 사이에서 각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주제를 중심으로 쉽게 조직화할수 있고, 조직화된 주장이 캠페인의 형태로 사회 전반에 전달될 수 있으며, 제도적인 변화 이전의 인식 변화나 정보 전달, 설득 등을 위해 시민들 사이에서 토론이 일어나는 공론장을 운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을 거친 후에 만들어진 제안들이 또한 이 과정을 통해 형성된 사회적 공감대를 거쳐서 기관이 운영하는 제도 공론장에 합의된 프로세스에 따라 제안되고 토론되고 결정을 거쳐서 확립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 정부는 시민운동, 시민활동, 시민교육이 일어날 수 있도록 커뮤니티 지원 사업, 시민들 주도의 공론장 운영 등을 지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2020년에 빠띠가 진저티프로젝트와 함께 한 여성가족부의 버터나이프크루가 커뮤니티를 만드는 사업이었고, 서울시의 작은 도서관들과 함께 한 공론장 운영 사업은 시민이 주도하는 공론장을 열고 그 안에서 다른 시민들을 초대해서 제안과 토론, 결정이 일어나는 사업이었습니다. 커뮤니티와 공론장을 시민들이 구성할 수 있도록 돕는 사업이 기관의 사업의 성격을 넘어서서 시민이 제안하고 시민의 활동이 촉진되도록 설계하는 일은 성과의 불분명성이나 부서의 성과로 남기기 어려움 등의 이유로 아직 대부분의 정부에선 낯선 일입니다. 그럼에도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기업을 지원하는 것 만큼 시민 활동을 촉진하는 사업이 확대되고 기반이 마련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의 플랫폼이 제안-답변의 단순 구조에서 벗어나서 시민과 함께 운영되는 협력적 플랫폼으로 나아가야 하듯이, 더 나가 시민이 주도적으로 과제를 제시하고 팀을 구성하고 거기서 나온 결과물들을 정책화하든 예산에 반영하든 조례로 만들든 하는 정책 실험 공간이 마련되는 것이 실질적인 온라인 정치참여의 다음 단계로 보고 있습니다. 정책 랩, 리빙 랩을 비롯해서 앞서 말한 버터나이프크루, 작은 도서관 공론장, 그리고 서울시의 공유도시 촉직 사업으로 진행한 빠띠의 공익데이터실험실이 예시이며, 시민 개발자(시빅해커)들의 코드포코리아가 공적마스크 앱을 함께 개발한 사례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우선 기술입니다. 기술은 IT기업이나 스타트업이 활용해서 멋진 유니콘을 만드는데 활용된다는 인식을 넘어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기술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그 중 민주주의를 위한 기술(제안, 토론, 투표, 데이터 공개, 개인 정보 보호, 개인 인증, 허위조작 정보 검출)은 더 나은 사회의 핵심 근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기술을 발전시키기에 필요한 지원 체계는 기업 육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공공의 이익을 위해 열린 기술을 만드는 빠띠와 같은 협동조합 모델로는 정부가 주도하는 펀드로 운용되는 민간의 투자도 받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사회 전반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해 열린 기술을 활용해 열린 플랫폼을 제공하려는 사회적 협동조합에 대한 투자와 지원, 주식 상장이 아닌 커뮤니티로 엑시트할 수 있는 성장 경로 마련이 절실합니다. 플랫폼 협동조합에 대한 정부의 정책 자금 운용 같은 것들이 연구되고 준비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앞서 이야기한 민주주의에 필요한 다양한 기술이 더 많이 열린 기술의 형태로 공공성에 기반해서 사회에서 많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현실적이 난관들에도 불구하고 빠띠는 영리기업이 아닌 사회적 협동조합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는 민주주의 활동가입니다. 민주주의란 다수의 사람들이 서로 신뢰하고 협력하는 과정이자, 숙의를 거쳐서 결론에 이르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공공의 자원을 활용할 방향에 대해 함께 결정하는 것입니다. 빠띠의 경험으로는 앞으로 더 복잡해지는 사회에서 숙의와 결론, 신뢰와 협력 과정과 기반에 대한 필요는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부가 시민과 협력을 하고, 더 나가 시민이 주도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려는 노력을 하듯이. 민간에서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이와 같은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나은 민주주의에 대한 욕구가 발견되고 있습니다. 또한 국가적으로도 서로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한국 사회에서 신뢰가 회복하려면 권한을 나누고, 협력을 하고, 숙의와 토론을 거쳐 공동의 의견을 도출하는 등의 경험들을 거쳐야만 실질적인 신뢰가 증진될 수 있을 것입니다. 빠띠는 다양한 영역에서 민주주의 활동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활동하려는 사람들이 효과적이고 성공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방법론과 플랫폼을 만드는 동시에, 이들이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재무적 기반도 제공할 수 있도록 민주주의 활동가들의 협동조합을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고객 혹은 파트너로서 정부를 비롯해 사회의 많은 영역의 기관이나 단위들이 민주주의 활동가들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