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언어를 가진다는 것

말할 수 있지만 말할 수 없는 사람들

by 낮에 뜨는 별

'자신의 언어를 갖는다'는 것을 권력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의미인지 잘 알 수가 없다. 주변에 있는 사람이 운 좋게 중심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그 사람들의 언어와 사고를 배워서 적응하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배제되곤 한다.


엄마가 되었을 때에 여성의 언어가, 감정적이며 비이성적이라는 시각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조금 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언어와 사고의 구조를 갖추도록 요구되는 것도.


지방 출신이 서울에 정착해 살아가는 동안, 나의 사투리를 부끄러워하고 자연스럽게 서울의 언어를 (표준어) 익혀 중심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을 해야 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학사 출신으로 석박사 출신의 사람들(엘리트) 같이 작업을 할 때면, 분명 나의 활동이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지라도 그들이 인정할 수 있는 논리와 학문적인 언어로 포장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 학부 때부터 결정되는 견고한 이너서클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도. 그들이 인정하는 권위자가 나를 지지하지 않으면 그냥 나는 듣보잡이 된다는 것도 잘 알았다. 그래서 입을 닫았다. 자연스럽게.


그런 나 역시도, 내가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해외 현장에서 관계를 맺을 때, 상대를 나도 모르게 '연구 대상화' 하기 시작하면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언어는 그래서 힘을 갖는다.


아이가 어른의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생각은 종종 무시된다. 소수자들의 언어 또한 그러하다. 그리고 다름에서 오는 '낯섦'은 '배제'되는 편이 효율적일 때가 많다. 그래서 많은 아이들은 자주 입을 닫을 것을 요구받는다.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조용히 해'


교사들 안에서도 계층화는 무의식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그 사람의 자질과 능력이 아니라, 그가 근무하는 학교가 어디이며 그가 가르치는 학생들과의 산출물에 의해서. 누군가는 후광효과를 입고, 누군가는 무시되고 은연중에 입을 다물게 된다.


'다름'을 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상처 받은 친구와 열 내면서 통화를 마치고, 자기 검열을 해봤다. 내가 쉽게 말할 수 있는 것들, 입을 다문 사람들. 입을 다물어야 하는 존재인데 자꾸 내 언어로 그들에게 떠들었다가 상처 받았던 경험까지. 이런저런 생각들이 빗물에 흘러간다.


부디 사랑하는 나의 친구가 자신의 언어를 소중히 여기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이중언어를 사용하기까지 어려움은 많지만, 그들의 언어로 구분 짓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균열을 낼 수 있으며, 자신의 언어로 같은 사람들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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