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하루가 간다
1. 어떤 아이가 자퇴를 했다
지금 실력으로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기 때문에
4년 뒤에 1등급을 받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원하는 것이 분명했던 아이는
다른 방법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하고
누군가 툭, 하고 했던 말 한마디에
생이 무너질 것처럼 울고 삶에 급제동을 걸었다
아이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 아니고
부모의 판단을 비난할 것도 아니고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 때문에 아이가 수년 뒤의 인생에 일어날 일이
당장 내 앞에 펼쳐질 것 같은 두려움에 압도당하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다
무엇이
아이의 불안과 긴장을 이렇게 높여둔 것일까?
2. 잘 모르겠다
아이의 기질 검사를 했다
이런 것 같기도 하고, 저런 것 같기도 하고
아이가 알쏭달쏭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서
검사하는 내내 혼란스러웠다
아이를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아이를 잘 모른다
사실 나도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나를 잘 모른다
언제쯤 나를, 너를 '잘 안다' 할 수 있을까
3. 어떤 아이 하나가 나를 기다린다
사회의 규칙과 자신의 규칙이 다른 것을
받아들이기 힘든 자폐 성향의 아이를
한 달 전에 만났다
어떤 어른도 아이의 15년 인생 동안
아이가 다르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느리다고 윽박지르고 머리를 때리고
강제로 말하도록 혼냈을 뿐이다
한 달 동안
울다 소리 지르다 내내 음악만 듣다
아이는 드디어 무언가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규칙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어서 너무 기특하다
노래를 내 시간에만 부를 수 있고
친구들에게 '동의'를 구해야 하며
다른 수업시간에 밖에 나가고 싶다면
선생님의 '허락'을 구하고 안전하게 나가야 한다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참아야' 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배워간다
세상이 내 규칙대로만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4. 그렇게 하루가 간다
어깨 찢어지도록 힘든 날
현실의 나를 온전히 마주하면
삶의 무게 때문에 눈물이 멈추지 않을까 봐
일부러 나를 외면하면서 사는 날들
정신줄을 붙잡지 않으면
너무 많은 일들이
어긋 날 수 있어서
여유가 없는 날들
문제없는 집이 어딨냐며
씁쓸한 자기 위로를 건네보지만
그냥 달리고 걷고, 멈추고, 그러다 자고
일어나면 또 하루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다 보면 또 살아지는 것이 인생
삶이 바닥만 있는 것도
삶이 천국만 있는 것도 아니기에
물 흐르듯 흘려보내고
뚜벅뚜벅 오늘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