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인연의 조각

넌 왜 밤새 그렇게 울어대는 것이냐

by 낮에 뜨는 별

방금 30일 같은 1시간이 지났다.

1. 엄마들은 밤에 깊은 잠을 자는 게 쉽지 않은데, 뱃속 태아일 땐 발차기를 심하게 해서 깨거나, 아주 어릴 땐 낮과 밤이 없어 울거나, 통잠을 자지 않고 수유를 해야 하거나, 이 앓이를 한다거나, 쉬가 마려워서 운다거나, 성장통이 있어서 고통스러워서 운다거나.... 많은 이유로 밤새 울어대는 아이 덕분(?)이다.

아이들 우는 소리는 날카롭고 상대방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울음소리를 견뎌내는 일이 보통 힘든 게 아니다.
낮에는 여러 가지 다른 소음들이 있기 때문에 이 고통의 소리에 집중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고요한 밤엔 오로지 나와 아이 둘이서 견뎌야 하는데 이게 보통 힘든 것이 아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감각이 예민한 우리 아들은 고통을 더 격하게 받아들이고, 아픔이 잠잠해질 때까지 심폐소생술을 내 귀에 대고 ‘아프다. 무섭다’를 악을 쓰며 외쳐댄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픈 곳이 어딘지를 확인하고, 열심히 마사지를 해주고 고통의 시간이 무사히 지나가가기를 견뎌주는 일이다.

보통의 엄마들이 이런 고통의 순간들. 아이들의 울음을 함께 견뎌준다. 그리고 속으로 삼키는 울음이 늘어가면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간다. 그 모든 순간이 그냥 시간이 지난다고, 울지 말라고 윽박지른다고 점프-업 되는 것이 아니다. 알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누군가 잠을 쪼개고 그의 온기로 나의 고통을 덮어주며 같이 견뎌주었기에 우린 어른이 되었다.

2. 타인의 고통을 우린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사랑하는 아이의 울음도, 나의 컨디션이 괜찮아야 겨우 견뎌낼 수 있다. 내가 지치고 힘들면 ‘나한테 왜 그러는 거냐’며 우는 아이를 붙잡고 같이 밤새 울어대는 것이 보통의 엄마다. 잠을 자지 못하는 고통, 당장 내일 처리해야 하는 일의 압박감이 몰려올 때, 아이를 돌보느라 내 업무를 처리하지 못했을 때의 고통이 너무 커지면 결국 ‘우는 아이’에 대한 원망이 치솟아 오른다. 엄마인데 견뎌내지 못한 자신을 향한 자책과 실망감, 원인을 제공한 아이에 대한 원망감을 동시에 느끼며 괴로운 밤을 혼자 견뎌낸다. 그게 보통의 엄마들이다.

우리 센터의 아이들 중 그런 보통의 엄마가 성장하면서.. 한 번도 없던 아이가 있다. 자신이 고통을 호소하면, 나는 더 힘들다며 울거나, 아이에게 신세 한탄을 하거나, 항상 술을 마시고 아이에게 욕설을 퍼붓거나, 정서적 폭력을 가하는 어른들이 주변에 있었을 뿐이다.

항상 먹을 것을 주거나 해도 아이는 강하게 거부를 했다. 안 먹어도 상관없지만, 굶지는 마라고 이것, 저것을 주는 선생님에게 절대 먹지 않겠다고 하던 녀석이, 어제 3달 만에 처음으로 내가 준비한 에너지바를 먹었다. 아이들이 뭘 주면 먹지 않는 것이 보통의 사춘기 아이들에게도 얼마나 흔한 일인가. 그저 굶지 않고 뭐라도 먹으면 다행인 것을..

3.
‘강하게 키워야 하는데, 우린 너무 친절하다 ‘는 말을 수 없이 듣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보통의 엄마가 된다. 어쩌면 사회로 나가기 전 이 아이에게 마지막 울타리가 이 곳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우유와 함께 건네 준 에너지바를 다 먹고 동생들 간식 설거지까지 다 해놓는 녀석이고, 우리 반 도토리에게 남이 보지 않아도 물을 주는 녀석. 이런 기특한 녀석을 이보다 더 어떻게 강하게 키운단 말인가.

내일은 이 녀석에게 맞는 병원을 찾으러 간다. 자신의 고통과 울음을 ‘탓’ 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해주는 어른을 만나야 아이들이 큰다. 덩치는 산만한, 마음속에 우는 아이와 같이 살고, 조커를 멋지다 하는 그 어두운 녀석이 웃고 있다는 것 그것보다 중요한 게 무언가.

4. 센터 아이들에게 코로나로 누가 제일 힘든지를 물어봤다. 대부분은 ‘의사’ 그리고 ‘배달하는 사람’ ‘나’라는 의견이 나왔다. 자기중심적이라고 혀를 끌끌 차는 어른도 있지만, 진짜 이 힘든 시기를 어떤 돌봄도 없이 혼자 견디던 어떤 녀석에겐 그것이 솔직한 생각이 맞다.

내가 더 건강하고, 마음이 여유로워져야겠다고 다짐한다. 너울 위 조각배를 탄 이 녀석들이 ‘괜찮다. 난 할 수 있다’를 믿기 위해선 진짜로 자신을 믿어주고, 울음을 견뎌 준 어른이 있어야 하니까. 어차피 나는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 없다. 삶을 전환하는 것은 오로지 신만 가능하다. 그러나 생각의 방향을 조금 다르게 틀 수 있게 하는 조각이 될 순 있을 것이다. 내가 그냥 어른이 된 줄 착각하지만, 나 역시도 그 무수히 많은 낯선 조각의 인연 덕에 지금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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