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대한 예의, 권석천

by 낮에 뜨는 별

2021년 두 번째 책 ‘사람에 대한 예의’ 권석천, 어크로스

* 올해는 새로운 일을 벌이기보다, 하나를 하고 끝맺음을 제대로 하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그래서 작년에 사놓고 다 읽지 않은 책들을 차근차근 읽으려고 한다. 그리고 작년에 시작하고 끝맺음하지 않은 일들이 많아서 계획보다는 ‘마무리’를 그때그때 하는 해가 되길 소망한다.

* “ “부분은 책에서 발췌.

1. 책을 읽는 내내 여러 가지 장면들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지는 바람에 많이 힘들었다.

여전히 지지부진한 중대재해 처벌법 역시 ‘개인’의 탓으로, 가해자의 책임을 피해자의 책임으로 덧입히는 현실에서 한걸음 나아가기가 수월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으니까. 그리고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감히 ‘여성’이자 ‘노동’을 하는 ‘노인’들이 감히 권력에 ‘저항’하고 있는 것에 분노하여 젊은 남성 인력들로 하여금 어떤 음식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모습이 오늘의 모습이니까.

어찌 보면 우리 사회의 힘의 논리가, 힘을 가져도 되는 사람들의 감정과 논리에 어긋나는 사건이 터진다면, 급 물살을 탈 것들도. ‘어차피 힘을 가진 사람들에겐 노력해도 알 수 없는 경계 너머의 감상적 저항’ 일 시간들 때문에 서글퍼진다. 사회가 대대적으로, ‘당신의 존엄’을 보장하는 것은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야 하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고,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확인을 시켜주는 시간들이 시베리아의 바람보다 매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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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피라미드 아래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다. 아니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2. 너를 위한 폭력, 늙은 애, 내가 해봐서 아는데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모 아니면 도라는 생각은 사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나의 일터, 그리고 훨씬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그리고 생각보다 가까운 이들에 의해 우린 ‘너를 위한 것’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겪곤 한다. 속칭 길들이기, 혹은 희생양 만들기, 가스 라이팅 등의 이름으로 우린 수많은 억압 아래 놓인다.

작년에 나르시시즘에 대해 공부를 했었다. 책 몇 권 읽는다고 전문가가 되고, 그것을 안다고 말하면 사기꾼이다. 그래서 정확하게 말하긴 어렵지만, 그럼에도 우리 주변의 이웃들, 선배들, 가족들, 동료, 직장 상사, 애인, 친구 할 것 없이 타인을 정서적으로 길들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확실하다.

실제로 ‘너만 아니었으면’ 혹은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들으며, 의견이 짓밟힌 경험을 수없이 했던 나. 그리고 주변의 ‘의문 쟁이’ 여성들이 많은 시간 자학이나 자책,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나보다 힘이 약한 사람에게는 친절하지만, 사회에서 더 힘이 있음을 인정받은 사람의 말에 항상 ‘의문’을 품었기 때문에 때론 저주의 말을 듣기도 하고, 폭력의 피해자가 되었으며, 더 이상 나의 의도를 <증명> 하지 않아도 되기까지 수십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나 역시 갑질의 피해자였으나 이젠 때론 갑질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산다. 더 이상 나에게 불편한 말을 말하는 사람이 적어졌다는 건 ‘내가 힘을 가진 사람’의 위치가 되었다는 것이다. 나를 객관화하여 보지 않으면 쉽게 덫에 빠지게 된다. 나의 기억도, 감정도 진짜 나의 것인지 늘 비판적으로 성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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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를 위한다’는 속삭임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혹시 자식을 위한 게 아니라 부모 자신의 비교 우위를 남에게 인정받기 위한 것은 아닐까. 후배 직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장이나 이사 자신이 얼마나 잘났는지 보여주기 위한 것은 아닐까.”

“그 서열의 고리 속에서 젊지도, 늙지도 않은 인간형들이 차고 넘친다. 젊지만 나이 든 척 행동하는 ‘애 늙은이’와 나이 들었지만 철들지 않은 ‘늙은 애’들이 공생하고 있다. ‘애 늙은이’들은 조직의 문제점에 패기 있게 도전하지 않는다. 기존 체제에 기민하게 적응하려고만 한다. ‘늙은 애’들은 욕망을 자제하지 못한 채 냄새만 맡으면 무섭게 이 ‘애 늙은이’와 ‘늙은 애’들의 세상에서 어른다운 어른은 보이지 않는다.”

“남자들은 도덕률을 만들고 여자들에게 그걸 받아들이라고 요구한다” 남자들의 도덕률은 힘 있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말한다. 세상을 지배하는 자들은 동료를 사랑해야 하고, 지배하는 자는 지배받는 자를 통치해야 하며, 지배받는 자는 지배하는 자를 우러러야 한다고 한다. 한국은 남자들의 도덕률에 중독돼 있다.”

3. 사람은 피는 꽃이다.

‘여러분에게 이런 세상을 보여줘서 미안합니다.’라고 학생들에게 사과를 여러 번 했었다. 세월호 때, 혐오 사건 때, 플라스틱 쓰레기, 코로나 때.. 어른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사과할 일이 자꾸 늘어서 얼굴을 들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되고 싶다. 침묵하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다. 불이 켜졌을 때, 지적 투성이인 삶을 살고 있더라도 불을 켤 용기를 갖고 싶다. 자신을 직면하는 것,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더라도, 부끄럽지 않고 싶지만 부끄러운 자신이라 해도, 기꺼이 불을 켜고 살겠다.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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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배신했다고 모든 게 끝나는 건 아니다. 때로는 배신이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 우리 모두는 부모를 배신하며 성장한다. 예수의 제자 베드로는 배신을 통해 성자가 되었다. 그는 닭이 울기전 예수를 세 번 부인했고, 그런 자신을 인식했고, 문 밖으로 나가서 슬피 울었다. 그가 예수의 뒤를 따라 십자가에 거꾸로 순교할 수 있었던 것도 철저한 배신과 자각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사람이 변하는 건 큰 병을 앓았거나 내면이 부서지는 좌절을 경험했을 때다. 자기 자신에게 걸려 넘어졌을 때 자신이 누구인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하게 된다. 그동안은 마주하지 못했던 본질적 질문 앞에 서게 된다.”

* 처음부터 끝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가지고 신선한 포맷으로 글이 쓰여있어서 잘 읽었다. 진짜.


* ‘반응의 노예가 되지말자, 모든 혁명가는 원칙의 방패와 현실의 칼로 무장한 철학자다. 언어는 사고를 규정한다.’

* 그리고 어김없이 등장한 한나 아렌트. 이틀째 다른 책에서 한나 트가 등장하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은 여성 학자들의 글을 읽지 않는다. 교사들이 청소년들 작가들이 쓴 글을 잘 읽지 않는 것과 비슷한듯. 올해는 더 중심에서 벗어난 글을 읽기로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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