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올 사랑, 정혜윤

by 낮에 뜨는 별

1. ‘어쩐지 이상했어’

작은 손수레에 엄청나게 높이 쌓여있는 종이박스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방지턱이 있었다. 얼른 가서 뒤에 서서 조용히 그 리어카를 같이 밀었다. 바퀴가 있어도, 가벼운 종이라도 무거운 건 무거운 것이다. 그래서 수레가 도착하는 곳까지 계속 같이 밀었다.

고물상에 무사히 도착해서 몰래 가려는데 갑자기 할머니가 나오셔서 내 손을 꽉 잡으셨다. 그리고 어쩐지 평소랑 다르게 가벼웠다고, 어쩐지 이상했다고, 몇 번을 쥐어주셨는지. 그때의 손아귀의 힘.

그 힘은 내가 쉽게 얻을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무수히 많은 시간 동안 삶의 희로애락과 고통의 순간을 통과한 이들이 나누어 주는 사랑이 가진 힘. 우연이든 필연이든 삶의 고통과 마주할 때, 새 순이 돋아나야 낯선 당신에게 마음을 건낼 수 있다.

새순이 돋아날 때까지 삶이 기다려줄 수 없는 고통의 쳇바퀴 속에 살더라도 품위를 잃지 않고 사랑과 감사를 나누는 삶이 얼마나 귀한가. 나는 보이지 않는 나를 밀어주는 존재에 대해 얼마나 인지하고, 감사를 표현하며 살았던가. 그 미묘한 차이를 깨닫게 해 준 그 할머니의 손아귀가 생각났다.

2. ‘제가요. 온라인 강의 진짜 짜증나는게요. 자꾸 출석을 하라고 접속하래요. 저희 집은 와이파이가 안 되거든요? 그래서 1학기 내내 맨날 접속 안된다고 담임 선생님 전화받아요. 와이파이 찾으려면 지하철역 가야 돼요. 1학기 내내 지하철에 가야 해서요. 2학기에 이사 갔어요.’

묻고, 들어야 추측하지 않고 상상하지 않게 된다. 아이들의 이야기는 만날 수 있을 때 들어야 한다고, 잠깐 거쳐가는 캠프라도 집중해서 묻고, 듣고, 기록해야 한다고 우겨서 이번 주 내내 학교에 있는 중도입국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나는 지난주의 나는 다른 또 다른 내가 될 수 있다.

내가 들어준다고 누군가의 삶이 달라질 것이 있는가? 내가 구조를 바꿀 힘이 있는가? 구조의 끝에 있는 개인이, 가족이라는 구조 안의 개인을 향해 내가 교사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라도 있던가, 하며 자책을 하더라도.

조금의 균열은 낼 수 있지 않을까, 무수히 많은 촉수를 뻗다 보면, 누군가와 닿지 않을까, 힘이 있는 누군가를 움직이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혹시나 하는 마음이 또 나를 일어서게 한다.

3. '네가 직접 해봐. 노래가 나와?'

왜 이렇게 척박한 환경을 떠나지 않는지, 그래도 되는데 왜 그러지 않느냐 묻는 나에게, <동물>은 나의 가족이라고 말했던 원주민 부족 친구들이 있었다. 내 가족이 이 곳을 떠날 수 없는데, 어떻게 이곳을 떠날 수 있는지.

교과서에서 수없이 시험문제로 가르치던 '사막화'라는 단어 너머로 숲이 없어지고, 우물이 말라가지만 낙타에게 언제나 고마움을 표현하고, 그 낙타에게 먼저 물을 먹이던 친구들이 있었다.

친구들과 뜨거운 사막 모래바람을 맞으며 함께 물을 긷던 시간들. 철없던 나는 '외국인들이 오면 부르는 노래'가 노동요인지 궁금했다. 과거 우리나라 여인들이 열심히 방망이를 두드리며 부르던 그 한 서린 노래들일까, 아니면 노래 속에 어떤 '영혼'이 담기는 걸까.

내 질문을 들었던 친구는 나에게 '직접 해보라, 노래가 나오는지' 답해줬다. 4시간여의 걸음이 끝나고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숨을 쉰다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호흡할 때마다 뜨거운 모래바람이 들어왔으니까.

호기심은 낯선 너와 나를 연결하지만, 그 무모함이 나를 아프게 한다. 경계를 넘고, 누군가의 삶을 함께한다는 것은 이렇게 예상치 못하는 순간을 내가 견딜 수 있을까, 하는 무수히 많은 나 자신을 향한 의심과 두려움을 이겨야 가능하다. 두려움을 이기는 힘은 나와 연결된 너와의 '사랑'에서 온다.

사랑은 그래서 낯선 활력이자 고통이다.

4. '사랑은 동사이며, 쓰는 것은 곧 사랑이다'

오늘 아침, 관심단 연수에서 #앞으로 올 사랑의 저자이신 #정혜윤 PD님을 만났다. 그리고 몸이 아직도 아프다. 여태 만났던 사람들이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나서, 나에게 안녕을 물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존재들이, 내가 당시에 함께 지었던 누군가의 시간들과 고민들, 삶의 무게들이 갑자기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휘몰아치고 갔다.

얼마 만에 그렇게 꺼이꺼이 울었는지 모르겠다. 아마 오프라인 강연이었다면 나는 민폐 중의 민폐였을지도 모르겠다.

내 삶의 영역을 확장하며 산다는 것은 무수히 많은 어퍼컷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 많은 '피난처'가 필요한 것인지도..

머릿속에 뒤엉킨 실타래들과 생각들, 무수한 만남들을 진짜 정리해야겠다. 나도 글을 써야겠다. 그 뜨거운 사랑의 이야기를 정리해야겠다. 그래야 나의 뜨거움이 남을 태우지 않고, 살랑거리는 바람으로 당신에게 다가갈 수 있을 테니..

‘그래서, 우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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