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허락'한 교육에 대해
[학교 가는 길] 영화를 보다
처음에 장애학생의 교육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학교에 갑자기 장애인 주차시설이 설치되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도블록이 생긴 이후부터였다. 그 이유는 체육관 공사를 위해 필요했기 때문이고, 2015년 베리어프리 건축법이 생기고 나서 학교나 공공시설에 무엇인가를 증축하기 위해서는 장애학생이 없더라도, 그 건물이 베리어 프리 인증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생긴 장애인 주차시설, 보도블록, 점자 안내판을 보면서 우리 학교는 장애인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건물이라는 사실이 너무 충격이었다. 양천구에 존재하는 10%의 장애학생은 어디로 학교를 가고 있나. 어떤 아이들은 집 근처 학교를 배정받는 게 너무 당연하고, 어떤 아이들은 멀리멀리 학교를 가야 하다니.. 그때부터 장애인의 교육권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관심 있는 주제라서 열심히 봤는데, 보다 보니 호흡이 가빠지면서 감정을 추스르는 게 너무 힘들었다. 졸업식에 학교를 떠나지 못하고 학교 주변을 맴도는 아이들 모습이.. 작년에 우리 센터 졸업할 때 펑펑 울면서 몇 시간이고 체육관과 교실에 있던 우리 반 S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10년간 학교를 못 가고 있는 아이도 생각났고, ‘어차피 한국 학교에 와도 이렇게 한국말 못 하면 적응 못해요’라고, 너무나 냉정하게 말씀하시던 모 학교의 교무부장님과의 통화도 생각났다. ‘잘 알아듣는다’ 말씀드려도, 말하기가 서툰 아이와 그 아이의 부모는 쉽게 거절해도 되는 존재다. 이곳저곳으로 토스되고 뱅뱅이 되는 아이들. 아이들은 언어 능력에 따라서, 혹은 그 전학 교 성적이 좋은 경우에,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정한 등급에 따라 부분적, 선별적으로 분리되었다.
‘장애’ ‘국적’ ‘빈곤’이라는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선택할 수 없었던 것들을 아이들의 선택처럼, 책임지게 하는 오늘날 실제 존재하는 등급화에 대한 분노와 차별이 온몸을 불태워서 영화를 다른 사람들처럼 감동적으로만 볼 수가 없었다. ‘발명학교는 매년 오는 사람들이 와요. 정보 아는 사람들이. 과학고 같은데 보낼 때 생기부 기록되고 좋거든요’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도 오버랩되었다. 영재교육에 대한 지원을 누가 ‘역차별’이라고 말하는가 싶어서.
영화는 좋았다. 이 영화를 단순히 특수학교 보내려는 엄마들을 영웅화하지 않고, 굉장히 입체적으로 상황을 보려고 노력한 점. 균형감을 잃지 않으려고 한 점. 내부적 갈등, 왜 평생교육의 측면으로 가야 하는지 미래에 다한 담론, 교육청과 정치계를 항한 비판, 빈곤과 소수자를 격리하여 ‘처리’해버리려는 사회의 모습을 잘 드러냈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 싸워줄 부모가 없는 아이들은 어째요?’
나라에서 목소리를 높여도 되는 ‘정상’ 인으로의 핏줄. 부모가 없는 아이들은 어떻게 목소리를 내야 하나. ‘엄마가 지켜줄게’라는 구호가 그래서 너무나 가슴을 후벼 팠다. 또한, 부모회에 참석한 100%의 엄마들이 속상했다. ‘엄마’가 이제 앞으로 고생하시겠네요.. 왜? 그래야 하지..
‘정상’을 기준으로 포맷된 세상에서 개별화된 다른 삶은 같은 돈을 가지고도 훨씬 버티기가 어렵다. 휠체어를 탄 경우 유지보수 비용이 얼마나 많이 들겠는가. 하다못해 시력이 나빠서 렌즈와 안경을 끼어야 하는 나도 돈이 엄청 들어가는데... 외벌이로 이 상황을 버텨야 하는 아빠도 힘들겠지. 그럼 한부모 가정인데 장애 아이를 키워야 하는 경우는 어쩌나. 한국에서의 생존이 목적이라 교육에 관심이 1도 없고, 그냥 집에 방치해둔 아이들은.. 부모가 있어도.. 싸워줄 수 없는..
‘우리 사회는, 우리 교육은 이 아이들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나? 모두가 중요하게 입이 닳도록 말하는 ‘기초학력’에 대한 논의에서, 이 아이들은 고려의 대상이 되고 있나요? 학교에서 그냥 받아주기만 해도 감사한 건가? 학교 밖에서 어슬렁 거리면 눈에 거슬리니까 단순 보육시설, 그 이외의 상상은 시도조차 안 하는 건 아닐까? 그냥 맡아줄 곳, 그 이상의 교육은?’
복잡한 생각들. 진짜 고통스러웠다.
누군가에겐 ‘감동’,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의 계기,
‘두 번 눈물이 흐르는 포인트가 있는 영화’.
‘모성’...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정말 용기를 내서 3번이나 도전 끝에 나에게도 발언권이 주어졌다. 무슨 정신으로 말했는지 기억도 안 나고 막 울먹이며 말한 것만 생각나는데.. 기억나는 건. 위에서 내가 주절거린 이야기들에 더해 감독님께 두 가지 질문을 했다.
‘내가 만난 다문화 배경 아이들이 전체가 아닌 것처럼, 장애의 스펙트럼도 넓은데, 발달 장애인이 모든 장애의 표준이 아닐 텐데, 하나의 모습으로 대상화되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으셨을 텐데. 이걸 어떻게 풀어가셨는지’
‘주변인으로 내가 당사자의 부모가 아닌데.. 가야 할 길은 멀고.. 복잡한 감정처리를 어떻게 하셨는지?’
감독님은 참 좋은 분이셨고, 대답 역시 균형감을 잃지 않아 좋았다.
특수교사 출신 예비 장학사님 한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아이들이 있어야 할 곳은 특수학교가 아니라, 여러분이 계시던 학교여야 하고 결국은 통합교육으로 가야 한다’는 말에 격하게 공감하면서 그 ‘통합’에는 사회의 더 많은 배제되고 분리돼서 처리되는 존재들이 포함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 얼마나 더, 딱한 존재로서의 삶이 드러나야 존재를 동등함으로 ‘인정’할까. 아니 ‘허락’할까. 시민권은 무엇이며, 시민으로 허가받은 이는 누구인가. 이 씁쓸함이, 동정의 시선들이 동료를 향한 환대로 모두를 위한 기본권으로 연결되기 위해 지금 이 순간도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균열을 내는 누군가와 오늘도 걸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