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의전 사진을 찍는다 (6)
40대 중반에 십자인대와 연골 수술을 하니 재활이 느렸습니다. 더구나 바쁘다는 이유로 운동을 게을리하다 보니 재활이 더욱 늦어졌습니다. 가볍게 걷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출퇴근을 하는 정도는 됐지만,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과 비탈길을 걷는 것은 힘들었습니다.
의사가 목발과 보조기를 그만해도 된다고 했지만, 출퇴근 길에 만나는 수많은 상황과 장시간 서서 대기해야 하는 행사 현장의 특성상 목발과 보조기를 꽤 오래 착용했습니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래서 재활이 더 늦어졌다고 하더군요.
제가 찍는 사진은 모든 상황과 프로 모델이 있는 스튜디오 촬영이 행사장에서 자신들의 자유의지로 움직이는 '내빈'들을 찍어야 하는 의전 사진입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상황이 아니라 저의 신체와 카메라뿐입니다. 제가 내빈들에게 무언가를 요청할 수 있는 순간은 단체 사진을 찍을 때 박수와 파이팅 등 포즈를 요청할 때뿐입니다. 대부분은 그분들의 자세와 표정에 맞춰서 제가 움직여야 합니다.
내빈들이 악수를 하는 사진을 찍는 경우가 많은데,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악수를 할 때는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내빈들이 자리에 앉아 있는 분들에게 고개를 숙여서 악수를 할 때는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런 장면을 찍으려면 제가 무릎을 굽혀서 자세를 낮추고 로우 앵글로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빈들의 표정과 눈을 담으면서 악수하는 포즈도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릎 수술 후 아직 무릎을 굽히는 것이 힘들었고 굽혔다가 일어날 때는 이를 악물어야 했습니다. 행사장에서는 내빈들의 위치와 동선에 따라 제가 좀 더 달려 나가야 할 때도 있고 갑자기 방향을 바꾸게 되는 일도 많습니다.
행사장에서 예사로 일어나는 이런 순간들이 전부 저의 '무릎'에는 무리가 갔습니다. 앞으로 갈 것으로 예상됐던 내빈이 뒤에 있는 반가운 분을 발견하고 달려갈 때, 저도 모르게 급하게 방향을 바꾸다가 무릎 통증을 느끼고 주저앉기도 했고, 로우 앵글을 위해 자세를 더 낮추려다가 무릎이 너무 아파서 눈물을 찔끔 흘리기도 했습니다.
저의 무릎이 어디까지 가동될 수 있는지 알고는 있었지만, 현장에서는 마음이 급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다치기 전 퍼포먼스를 내려다가 통증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런 일이 거듭되다 보니 도저히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찍을 수 없는 구도는 포기하게 됐습니다.
대신 제가 찍을 수 있는 상황에 집중했고, 다치기 전에 익숙했던 구도 대신 다른 구도를 찾아야 했습니다. 10년 넘게 의전 사진을 찍고 있어서 저도 모르게 '의전 사진의 구도는 뻔하다'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새로운 구도를 위해 다른 사람들의 사진을 평소보다 열심히 보고 대입해 보며 제 상황에 맞는 구도를 찾기 위해 애썼습니다.
신기하게도 '너무 뻔하다'라고 생각했던 장소와 행사 속에서도 그래도 찾아보니 '새로운 구도'가 보이더군요.
다리는 아팠지만, 그런 새로운 구도를 찾아낼 때는 정말 즐거웠습니다.
로우 앵글은 무릎을 굽히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스위블 액정을 사용했습니다.
저는 사진은 뷰파인도로 보고 찍어야 마음이 편한 중년입니다. 스위블 액정은 영상을 찍을 때를 제외하고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노안이 있어서 스위블 액정을 보는 것은 영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무릎을 지키려면 스위블 액정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적응이 되지 않아서 초점도 좀 흔들리고 노안 때문에 스위블 액정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카메라를 믿고 셔터를 눌렀고 점차 익숙해졌습니다.
그런데 무릎이 안 굽혀지자 자꾸 허리를 굽히게 되다 보니 이젠 허리가 좀 아프네요^^;;;
현장에서 최대한 많은 컷을 건지려던 욕심도 버렸습니다. 내빈이 인사말을 할 때면 단상 앞에서 클로즈업 컷을 얼른 찍고 내려와서 행사장 중간과 맨 뒤에서 전체 컷도 함께 찍어야 합니다. 별 것 아닌 컷이지만 그렇게 찍어야 인사말이라는 단순한 순간이 하나의 스토리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요.
혼자서 촬영을 하더라도 다리를 다치기 전에는 조금 빨리 걷거나 뛰면 충분히 내빈 한 명이 인사말을 하는 동안 세 가지 컷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행사장 규모에 따라 특정 컷은 포기해야 되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저는 단상 위에서 인사말을 하는 내빈의 클로즈업 컷에 집중하고, 뒤에서 찍는 풀샷은 함께 수행을 온 다른 직원에게 핸드폰으로 찍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화질이 아쉽긴 해도 기록의 순간을 놓칠 수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요즘 핸드폰은 정말 잘 나오더군요^^
포기해야 하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반대로 더 집중하게 되는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찍을 수 있는 순간순간의 한 컷이 소중해졌고 그래서 더 열심히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예전만큼
다양한 컷을 담을 수 없다 보니 보정에 좀 더 신경을 쓰게 됐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운동을 하게 됐습니다. 운동을 정말 싫어하지만 어쩔 수가 없더군요.
가볍게 느껴지던 카메라가 너무도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손목, 팔, 허리가 다 아팠고 체력도 금방 지쳤습니다.
수술 후 두 달을 거의 누워서만 지냈고 그 뒤로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다 보니 근력과 체력이 모두 떨어졌습니다. 활동량이 줄다 보니 자연스럽게 살은 찌고 몸은 더 무거워졌습니다.
나름 젊었을 때는 다이어트를 하려고 운동을 했었는데 이젠 살기 위해 운동이 필요한 상황이 됐습니다.
이렇게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상황들을 마주하게 되면서 저는 저의 '완벽주의'와 만났습니다.
완벽주의에 심하게 시달리던 때가 있었고 그것을 많이 내려놨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내 안에 '완벽주의'가 강하게 자리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악수하는 사진은 이렇게 찍어야 한다. 인사말은 이런 구도여야 한다 등등 어찌 보면 그것들도 전부 저의 '완벽주의'에서 오는 '고집'인 것 같았습니다.
고개 숙여 악수하는 사진을 모든 의전 사진가들이 로우 앵글로 찍지는 않거든요. 조금 뒤에서 고개를 드는 순간에 주변 인물과 함께 찍으면 로우 앵글이 아니어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다만 제가 로우 앵글을 '고집'할 뿐인 거죠. 이젠 그 '고집'이 제 건강을 해치게 된 상황이라 저도 저를 좀 포기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하나, 둘... 저에게 익숙했던 것들을 돌아보고 포기하고 새로운 것을 찾다 보니 어색한 것도 있지만 나의 한계, 나의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게 되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무릎 부상을 통해 저는 나를 좀 더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며 포기할 줄 아는 지혜를 얻은 것 같습니다.
중년의 나이가 되면 새로운 것을 '더하기'보다는 포기할 것을 빨리 포기하고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익숙한 것을 포기하는 것이 쉽지 않더니 십자인대 부상을 통해 조금 쉽게 포기하게 된 것 같습니다. 세상에 나쁘기만 한 일은 없다더니 고통 속에서 이렇게 하나 또 배우게 되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