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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도 끝도 혼자인 사진 촬영 업무

중년에 다시 쓰는 일기 (10)

by 다시


꽤 중요하고 긴 촬영이 있는 날 아침.

8시간 동안 7개의 장소를 방문하는 일정이다. 그야말로 강행군이다. 촬영 담당자는 나 혼자다.

내부 행사만 촬영하던 때와 다르게 살짝 긴장감이 돈다.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 미리 출근해서 장비들을 체크했다.

배터리도 여유분까지 넉넉하게 챙기고, 비상시를 대비해 메모리 카드도 하나 더 챙겼다.

배터리는 전날 충전을 해두었지만 다시 한번 확인한다.


비가 오는 시간에 야외 촬영이 생길 것 같아 우비와 우산까지 챙겼다.

비 오는 날 야외 촬영은 정말 싫은데, 비가 많이 올 것 같지 않아 야외행사가 예정대로 진행될 것 같다.


다들 각자의 역할로 바쁘기 때문에 촬영과 관련된 장비와 동선을 체크하는 것은 오롯이 내 몫이다.

촬영 중간에 지쳤을 때를 대비해 간식도 넉넉히 챙겼다.


출발 5분 전.

오늘 하루 잘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밀려왔다.

무엇보다 걱정인 것은 나의 팔과 허리, 발목이었다. 이미 각종 아대와 파스로 도배를 했지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사진의 퀄리티보다 나의 체력이 더 걱정이다.





"출발합니다!"


사장과 임원진들이 앞서고 그 뒤를 직원들이 따른다. 높은 분들이 걷거나 건물에 들어가는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나는 누구보다 앞서서 걷는다. 내향적인 성격이라 어느 자리에 가건 구석이나 눈에 안 띄는 곳을 좋아하는데 촬영을 할 때는 예외다.


첫 번째 장소에 도착했다.

긴장이 고조된 상태이고 몸이 풀리지 않아서인지 몸이 뻣뻣하다. 머리도 잠에서 덜 깼는지 움직이지 않아서 멍한 순간조차 생긴다.


두 번째 장소의 촬영이 시작되자 몸이 풀리는 것이 느껴진다. 다양한 구도를 찾아내서 셔터를 누른다.

적당히 찍고 빠지라는 눈치도 받는다. 그러나 그걸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눈치 보느라 적당히 찍고 결과물이

안 좋으면 결국 지적을 받는 건 나 혼자다. 다행히 사장은 내가 회의나 행사를 방해하며 촬영해도 사진만

잘 나오면 전부 다 허용해 주는 편이다.


두 번째 촬영을 마치자 허기가 몰려온다. 점심을 평소보다 많이 먹고 커피를 마시며 숨을 돌렸다.




"조퇴하고 싶다."


평소보다 긴 일정과 규모가 큰 행사이기에 몸이 계속 긴장되면서 쉽게 지친다. 간식으로 챙겨 온 초콜릿을 먹으며 긴장을 풀어본다. 다른 직원이 담배를 피우며 한숨을 돌리는 모습을 보니 나도 담배를 배울걸 그랬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러나 촬영도 체력이 필수라 운동을 안 할 거면 술담배라도 안 하는 편이 좋다.


겨우 겨우 모든 촬영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대로 지쳐서 책상 위에 엎어진다.




8시간 동안 1500장 정도를 찍었으니 많이 찍은 것 같기도 하고 적당히 찍은 것 같기도 하다. 이제 선별하고 보정하는 작업이 남았다.


장소별로 사진을 분류하고, 개인 사진도 장소별로 선별해야 한다. 현장에서 사진 촬영도 혼자 몫이었지만 그래도 주변에 행사 담당자 등 누군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오롯이 혼자다.


"이 사진이 잘 나왔어? 저 사진이 잘 나왔어?"라고 물어보고 싶지만 내 옆에는 아무도 없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과 사장님이 좋아하는 사진이 엇갈릴 때면 갈등도 생긴다. 물론 그런 경우 사장님 취향이 우선이다.


작업실에서의 긴 작업을 끝내고 자리로 돌아오면 아무도 없다. 긴 행사가 있는 날이니 다들 일찍 퇴근을 했을 것이다. 고단한 하루를 술로 달래기 위한 회식이 열렸다. 그러나 나는 작업 특성상 함께하기가 어렵다. 큰 행사 사진일수록 사장이나 임원들은 사진을 빨리 받아보고 싶어 한다.




"그러니까 대충 적당히 찍지!"


회식에 못 간다고 하자 누군가가 나에게 핀잔처럼 한 말이다. 그러나 지적이 아닌 아쉬움에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한 귀로 흘렸다.


사실 나는 이 말이 제일 싫다. 행사 기획안을 작성하면서 며칠을 고민하면서 사진은 왜 한 번만 찍으면 인생샷이 나올 거라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아무리 설명해도 서로의 업무가 달라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이니

그냥 웃어넘길 뿐이다.




외롭다.


분명 사람들 속에서 사진을 찍었고, 화려한 조명과 음악이 넘치는 공간에서 촬영을 진행했지만

그 상황에서도 나는 언제나 혼자다. 그리고 사진을 선별하고 보정하는 순간에도 말이다.


간혹 이런 상상을 한다. 촬영 업무가 확대되어 나랑 똑같은 일을 하는 누군가 한 사람이 더 생겼으면 좋겠다고. 파트너가 있으면 좋겠다고.


그런 날이 오면 파트너랑 호흡이 안 맞아서 스트레스 받으려나? ㅎㅎ


혼자라는 외로움이 밀려올 때 오늘 내가 찍은 사진들을 슬라이드쇼로 넘겨본다. 사진을 찍던 순간 순간의 감정들이 되살아나면서 가슴이 뿌듯해지기도 한다.


모든 보정을 마치고 컴퓨터를 끄고 기지개를 켠다. 그리고 가방을 메고 사무실을 나선다.

그리고 나에게 말해준다.


"오늘도 수고했다. 오늘도 회사의 역사 한 페이지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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