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에 다시 쓰는 일기 (11)
"넌 너무 진지해."
뭐가 문제일까? 내가 진지한 게 뭐 어때서..
한 친구가 내가 너무 진지해서 어색하고, 깊이 있는 대화를 꺼낼까 항상 긴장이 된다고 한다.
인간관계에서 긴장은 그다지 좋지 않은 것 같아서 그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 혼자 또는 소수와 어울리는 것
- 진지한 대화와 깊이 있는 연결
- 정적인 활동
그런데 그 친구 주변 사람들은 이런 나와는 정 반대였다.
내가 좀 충격적이었던 것은 난 그동안 이 친구도 나와 같은 성향인 줄 알았다는 점.
어느 순간부터 좀 뭔가 다르다 싶었는데 이제야 확실히 알겠다.
그런데 그와 알고 지낸 지가 하루, 이틀이 아닌데 지난 수년 동안 그는 나와 1대 1로 대화를 많이 했고, 그런 대화들은 주로 서로의 가치관이나 성격, 내면 탐구 등 깊고 진지했다.
그는... 그동안 불편한 것을 참은 걸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가 먼저 그런 대화들을 꺼낼 때도 많았으니까.
그가 말한 나와 본인 주변 사람들과의 차이는 결국 나의 특성이고 나의 본질이다. 그게 불편하고 어색하다면 더 이상 인간관계를 지속하기 어렵겠지 싶다. 하지만 그와 나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서로의
차이에서 많은 것을 배워왔다.
여기까지 생각하던 나는 혹시 균형이 무너진 것인가 싶었다. 나는 밥보다 빵을 좋아한다. 그래도 삼시 세끼 빵을 먹지는 못 한다. 나는 락과 힙합을 즐겨 듣는다. 이런 나도 가을이면 발라드를 듣는다.
그 친구와 나의 인간관계에서 '균형'이 무너진 것인가 싶어졌다. 최근의 대화들을 돌이켜보니 지나치게 무거웠고 그 속에서 서로의 의견 차이를 끝내 좁히지 못하고 덮어야 했던 대화도 있었다. 그 친구에게도 분명 깊이 있는 대화를 원하는 마음은 있을텐데 그 마음이 나의 진지함과 만나서 점점 무거워진 모양이다.
이런 차이가 생기는 동안 그 친구는 점점 본인과 성향이 잘 맞는 친구들과 '재미있는' 관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나 역시 나와 성향이 맞는 친구들과 점점 더 깊어지고 있었다.
이러다 멀어지는 걸까?
결이 다르긴 해도 오래 보고 싶은 소중한 친구다.
그런 친구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보니 마음속에 오래 남고 고민이 된다.
어떤 변화와 노력을 해야 하는 시점인가 싶다.
그 친구는 대화 주제를 바꿔보자고 했다. 나는 대화를 듣는 나의 마음을 바꿔보기로 했다.
너무 깊게, 너무 심각하게 듣지 말고 아이를 키울 때의 마법의 단어 "그랬구나"처럼
공감해 주고 가볍게 들어주려고 한다.
그리고 가볍고 즐거운 경험들을 많이 쌓아보려 한다.
그 친구와는 깊고 진지한 대화를 많이 하다 보니 좋은 기억보다는 우울한 기억이 많다.
내가 누구에게 진지하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나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극심한 내향형 인간이라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내가 그나마 사람들과 친해지는 방법이 1대 1로 깊은 대화를 통해서이다.
진지한 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다만, 조절은 해야겠다.
나의 진지함이 누군가에게 무겁지 않도록 조절하면서, 나의 개성으로 다듬는 계기로 삼아야겠다.
좀 더 빛나는 나를 위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