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에 다시 쓰는 일기 (12)
사진 촬영 작업을 마치고 나면 얼른 집에 가서 브런치에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너무 피곤하거나 차분하게 브런치를 쓸 상황이 안 될 때는 일기를 쓰거나 가까운 친구에게 메일이라도 보냅니다. 그것도 안 되면 인스타에 짧은 글을 올리고요. 어쨌건 무엇이든 '글'과 관련된 것이 쓰고 싶은 마음이 커집니다. 그리고 이런 때는 핸드폰 말고 키보드를 두드려 가며 글을 써야 제 맛입니다.
사진에는 촬영자의 의도가 담깁니다.
인물을 찍거나 행사장의 풍경을 찍을 때도 눈앞에 있는 피사체를 나름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보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좋은 결과물이 나올지에 대한 고민도 결국은 촬영자의 의도입니다.
그런데 아마 촬영자의 의도를 반영할 수 있으려면 프로 작가 정도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처럼 회사에서 높은 분들을 촬영해야 하는 사내 촬영 담당자라면 자신만의 의도를 담기 어렵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구도와 색감보다는 높은 분들이 좋아하는 표정과 구도가 우선이죠. 평소에 그분들의 선호도를 파악해서 사진에 잘 담아야 할 뿐입니다.
사진을 통한 나의 표현욕구보다는 높은 분에게 잘 보이기 위한 사진이 되는 것이죠.
한 때, 고집을 부리면서 제 눈에 보기 좋은 사진을 고집한 적이 있습니다. 뻔히 예상되는 것처럼 오래 고집을 부릴 수 없었죠. 물론 10장 중에 몇 장은 슬쩍 제 고집이 담긴 사진을 포함시킬 수는 있겠지만 말이죠.
예술사진이 아니라면 결국 사내 촬영 담당자에게 사진은 '창작'이 이 아닌 '업무수행'입니다. 이 과정이 꽤나 곤욕스럽습니다. 가끔 사진을 고를 때 동료들에게 물어보기도 합니다.
"나는 A컷이 잘 나온 것 같은데 어때?"
"나도 A가 맘에 들어. 하지만 사장님이라면 A보다는 B를 좋아하실 것 같아. B로 해."
이런 식이죠.
이렇게 촬영을 마치고 나면 담당자의 가슴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깁니다. 촬영, 사진 선택, 보정까지 이어지는 긴 작업 기간 동안 촬영자의 마음의 기준은 내내 다른 사람에게 맞춰져 있으니까요. 나의 기준은 잠시 뒤로 미뤄둬야 하지요.
커다란 구멍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은 "공허함"입니다. 이 공허를 달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습니다.
술을 마실 수도 있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작업의 피로를 잊을 수도 있겠죠. 맛있는 음식을 배 터지게 먹고 잠을 자기도 하고,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기도 합니다.
저는 내향적인 성격이라 그런지 이런 경우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헤드폰을 하나 쓰고 노래를 한 참 듣습니다. 때로는 책을 읽고, 가볍게 산책이나 명상을 합니다. 그리고 차나 커피를 내려 마시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허전했던 내면이 채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방법이 무언가를 쓰는 행위입니다. 하다 못해 이면지에 그때 그 순간 떠오르는 생각이라도 끄적이면 기분이 조금은 나아집니다.
오늘처럼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날은 운이 좋은 날이지요. 마침 집에 아무도 없고, 촬영을 마치고 집에 와서 가슴이 허전한 상태거든요. 여기까지 글을 쓰는 동안에도 마음이 평온해지고 따듯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해서 나만의 이야기로 나를 채우는 시간.
그것이 글쓰기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나만의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또 브런치의 매력이고요. 사진을 찍는 일을 하지만, 사진 걱정 없이 글만 올려도 되는 브런치는 마음이 참 편합니다^^
별 내용도 없는 글이었습니다. 여기까지 따라와서 같이 읽어주신 분들에게 죄송하네요.
오늘은 저를 채우기 위한 글이었습니다.
질문 하나 드려볼까 합니다.
"허전한 마음이 들 때 무엇으로 채우세요?"
저는 글쓰기와 제가 익숙했던 것들 외에도 조금 더 몇 가지들을 찾아봐야겠다 싶습니다. 보여주기 위한, 업무용 사진이 아니라 내가 찍고 싶은 나만의 사진에도 도전해 봐야겠습니다.
한 100가지쯤 완성하면 그 어떤 스트레스와 공허함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네요. 100가지가 완성되면 그땐 그걸로 브런치에 글을 한 번 써보겠습니다. 채우기보다 비워두고 살아도 평온한 그런 상태를 꿈꾸지만, 아직 그 정도의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해서 오늘도 텅 빈 마음을 채우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습니다.
채우는 법을 익히면 비우는 법도 배울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