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에 다시 쓰는 일기 (13)
주말 아침.
초등학교 저학년인 아이들과 외출 준비를 합니다. 가을 나들이를 가기로 한 날이라 아이들은 어젯밤부터 들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자꾸 시선이 전화기로 향합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가려던 순간.
전화벨이 울립니다.
"지금 좀 와줘야겠다."
외출은 아내에게 맡기고 저는 본가로 향합니다.
아버지는 몇 년 전부터 치매를 앓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중증은 아니지만 그래도 간병하며 함께 사는 것이 쉽지 않아서 어머니의 스트레스가
높은 상황입니다.
간혹 발작 증상이라도 나타나는 날이면 어머니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서 저를 부르십니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어머니에게 그저 죄송하고 감사할 뿐이라 갑작스러운 호출에는
직장에 있다가도 무조건 달려갑니다.
인내심이 강한 어머니가 호출을 할 정도면
상황이 꽤 안 좋을 때입니다.
다행히 제가 본가로 향하는 동안 아버지는 진정됐고, 제가 도착했을 때는 저를 웃으며 반겨주실 정도로 멀쩡했습니다.
그런 모습에 어머니는 더욱 속이 타하셨고,
저는 혹시 아들, 손자들을 기다리셨나 싶어서 죄송한 마음입니다.
거실에 앉아서 아버지의 모습을 계속 살핍니다.
"당분간은 잠잠할 것 같구나."
아버지의 상태를 살피는 제 모습을 보고 어머니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는 그동안 있었던 일과 본인이 얼마나 힘드신지 하소연을 하십니다. 그걸 묵묵히 듣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죄송한 마음에 열심히 듣고 어떤 방법이 좋을지 생각을 하며 대안을 제시해 보지만, 어머니의 하소연은 도돌이표입니다. 그냥 대나무숲처럼 묵묵히 듣고 있어야 하나 싶기도 합니다.
저는 무뚝뚝한 성격이라 어떻게 대꾸를 해드려야 할지 모르겠고 그저 이 모든 상황이 어렵습니다.
문득, 아내는 아이들과 나들이를 잘 갔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부모님께 죄송하고, 모처럼의 가족 나들이에 불참하게 되어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미안합니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어머니 호출을 받고 조퇴하는 경우에는 회사 동료들에게도 미안해집니다.
그저 모두에게 죄인이 된 기분입니다.
어쩌면...
저에게 일어나고 있는 어려운 상황보다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제 마음이 더 무거운 것 같습니다.
살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고, 누군가는 또 이미 겪은 일이고 나는 그저 지금 겪을 뿐이라고.
내가 그럴 나이가 되었을 뿐이라고 생각하면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저 견디면 될 일이니까요.
치매로 부모님을 떠나보냈던 선배가 이런 말을 해줍니다.
"즐거운 일이 있어서 막 웃다가 부모님 생각이 나면서 죄책감이 들기도 했어. 하지만 치매가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더라. 자주 연락드리고, 급한 일 생기면 병원 모시고 가는 수밖에. 버티는 것 밖에 방법이 없을 때가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