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주부 생존기 2편

복지국가의 이면에서 버티고 견뎠다

by 하루 한 모금


“호주는 복지국가라서 살기 좋다더라.” 주변에서

이민을 준비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실제로도 많은 사람들이 ‘무상 의료’, ‘공립 교육’, ‘연금 혜택’ 같은 이 말들에 많은 기대를 걸고 이 땅에 발을 딛는 선택을 한다.


나도 그랬다.

아이들을 위한 더 나은 환경, 가족을 위한 새로운 기회,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일어설 기회를 찾고 싶었던 나 자신과 우리 가족의 미래를 위해 이 땅을 선택했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설렘과는 달리 한 발짝도 쉽게 나아갈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먼저 벽처럼 크게 다가온 건 비자 문제였다.

방문자 신분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었고, 워크비자를 받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은 하나같이 까다로웠다.

남편은 이직을 많은 곳에 시도했지만 영어와 경력의 문제로 기회는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는 영주권의 유무가 우리 생활에 엄청 난영향을 끼쳤는데 특히 금전적인 면에서 더 힘들었다.

그래서 결국

우리 가족은 영주권을 받기 위해 하나씩 포기하고, 또 감내해야 했다.



생활은 점점 빠듯해졌고, 생활비는 통장을 빠른 속도로 비워갔다.

나는 간단한 청소나 캐셔 같은 일이라도 하려고 했지만

언어의 장벽, 신분의 제약, 그리고 특히 이민자에 대한 보이지 않는 거리감은

내 일상에 끊임없는 큰 장애가 되었고 영주권을 받는 것이 내 삶의 중심이 되었다.


영주권 서류를 준비하며 수 없이 견뎌야 했던 여러 사건들과 많은 비용들과 계속 거절당한 인터뷰,

한국에서의 경력이 설명조차 되지 않았던 무력감.

결국 그 어려웠던 시간들과 과정들이 쌓여서 마침내 우리 가족이 영주권 승인을 받았을 때는 지나온 모든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나는 조용히 혼자 울었다.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수고했다”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아니 우리 가족 모두에게 고마웠다. 그 힘든 시간 동안에도 묵묵히 일해준 우리 남편, 엄마가 같이 있지만 거의 돌봐주지 못했어도 잘 이해해 주었던 우리 아이들 … 정말 눈물이 앞을 가렸다.



지금은 이 나라의 복지를 조금씩 이해하고, 누릴 수 있게 되었지만,

그 과정은 결코 ‘편안한 복지국가의 혜택’이 아니었다.

그건 철저히 버티고, 싸우고, 증명해 낸 사람만이 얻는 자격이었다.


나는 여전히 영어가 많이 부족하고, 많은 것들이 낯설다.

하지만 지금은 이 땅에서 ‘살아갈 권리’를 얻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내가 걸어온 시간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이 땅에 먼저 와 있는 모든 이민자들에게,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있을지도 모를 앞으로 올 누군가에게,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복지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버텨낸 자에게 주어진다라고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