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비닐봉지에 엽서 17개를 담았다. 강아지, 고양이, 꽃, 별, 풍경 등 디자인과 크기가 제각각인 엽서들을 보며 받을 사람을 한 명 한 명 생각했다. 오랜만에 친구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었다.
집 근처 무인문방구엔 연하장으로 보낼만한 큼지막한 엽서가 없어, 차를 타고 동네의 큰 문방구로 갔다. 엽서를 한 움큼 집어드니 가격은 25000원. 생각보다 큰 금액에 당황했지만, 문구 물가만 내 어릴 적 그대로 일리가 없다는 생각에 가격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지난해는 유독 마음이 힘들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의 삶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친구들에게 얘기하기보단 내 속에 담아두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마음에 도돌이표가 있는지 결국 ‘힘들다’는 마음으로 다시 돌아갔다. 작년 연말쯤엔 집에 붙어 있는 거 빼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친구들에겐 내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게 어딘가에 티가 났나 보다. 매 달 한 놈씩, 무언가 선물을 보내주거나 메시지를 보내주는 게 아닌가. 이젠 못하겠다 싶을 때쯤이면 ‘좀 더 힘을 내봐’라고 하는 듯 했다. 그 마음에 힘입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냈다.
이 고마운 사람들의 마음에 어떻게 보답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해가 바뀌었으니 오랜만에 연하장 느낌으로 간단한 엽서를 써 보내보기로 했다.
주차가 가능한 대형 문방구에 간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몇 달 치 용돈은 다 탕진할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문구들이 많았다. 충동구매를 할까 봐 꾹 참고 엽서 진열대로 가 진열대를 털다시피 엽서를 집어 들고 계산을 마쳤다.
오랜만에 엽서를 쓸 생각에 설렜는지 비닐봉지 안에서 엽서들이 샤그락샤그락대는 소리마저 좋았다. 특별한 사람들에게 글을 쓸 때 쓰는 비싼 만년필을 꺼내 잉크를 채우고 잘 나오는지 슥슥 그어본 뒤, 사 온 엽서를 하나 뜯어 펼쳤다.
막상 맨질맨질한 바닥면을 보니 약간 긴장이 됐다. 엽서엔 취소나 뒤로가기 버튼 같은 건 없다. 단 한 장에 단 한 번의 글쓰기 기회만 주어질 뿐이다. 수정과 삭제가 불가능한 글쓰기는 오랜만이었으니 긴장할 수밖에.
하지만, 쓰기 전의 걱정과 달리, 의외로 가볍게 쓱쓱 써졌다. 받는 이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달까. 내가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말을 꾸며낼 필요도 없었고, 내가 뭐라 해도 그 친구들은 내 말을 오해하거나 왜곡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엽서를 다 쓰고 보내기 전, 17장의 짧은 안부인사 글을 한 번씩 다시 봤다. 모두에게 다 다른 얘기를 꺼내는 나 자신을 보고도 놀랐다. 나와 너의 이야기가 이렇게 다 달랐구나 싶어 약간은 뭉클해졌다. 다만, 마지막의 문구는 거의 비슷하게 이런 류였다.
“항상 너와 너의 가족의 건강과 화목을, 그리고 무탈함이 이어지는 일상의 평안을 기도하며.”
아마 그들도 나와 같이 바라고 있겠지. 그러니 작년의 나에게 힘을 내라 해줬겠지 싶었다. 올해는 내 차례였다. 나에게 흘러들어온 마음을 나눌 시간이었다.
누군가에게 내가 글로 전하는 말은 대개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었다. 올해 모두의 소망을 내가 대신 엽서에 먼저 적어서 놓았을 뿐.
올 한 해도, 우주의 다정함이 우리에게 잠깐잠깐 머물다 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