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퀴퀴한 벽에 둘러싸여 싸늘하고 어두운 기운을 내뿜는 이곳에 있는 나는 죄인이다.
왜 이곳에 오게 되었을까? 내 물음에 간수는 거친 목소리로 로쉐 백작 부인을 칼로 여러 번 찔러 참혹하게 살해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기억의 파편들을 모았다.
손에 들렸던 칼자루, 부인의 비명, 스러져가는 한 생명의 눈빛, 서서히 카펫 위로 스며들어가는 핏물... 분명 이런 것들이 떠올라야만 할 텐데 오로지 혼란만이 안개처럼 의식에 드리워져 있었다. 머릿속에는 그 어떤 이미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녀를 죽였을까?
재물을 탐해서? 원한? 혹여 누군가가 사주한 것일까?
하루하루 내면을 깊이 아주 깊이 파고들어도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로 끊임없이 더 밑바닥으로 추락하고 있을 뿐이었다.
형 집행의 날이 밝았다. 쇠창살의 문이 삐걱이며 열리고 밖은 너무나도 눈이 부셔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저주를 퍼붓기 위해 모여 있었고 그들의 정당한 분노는 뜨겁게 타올랐다.
단두대의 계단을 하나씩 오를 때마다 죄의 그림자는 서서히 내 목을 조여왔다.
두려웠다. 죽는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진정 두려웠던 건 자기 자신.
나는 결코 용서받지 못할 끔찍한 행동을 했음에도 끝끝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였다.
과연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것이 뭔지도 망각한 채 끊임없이 도망치고 있는 내가,
이 끝도 없는 고뇌의 지옥에서 저 위 햇빛에 비쳐 빛나고 있는 단두대의 칼날로 구원받을 자격이 있는 것인가?
지옥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면 무로 돌아가는 것인데 과연 지금 있는 지옥에서는 도망쳐도 되는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건 말건 선택지는 내게 없었고 집행인의 거친 손은 내 목을 단두대에 밀어 넣었다. 나는 차분히 눈을 감고는 이 세상 모두에게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
‘부디 그 누구든 나를 용서하지 마시길...’
의식은 점차 흐릿해져 갔고 함성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다음날 아침, 단두대 주변의 핏자국도 마르기 전, 성문 앞 게시판에는 새로운 포고문이 붙어있다.
‘지난달에 발생한 백작부인 살해 사건의 진범이 오늘 새벽, 체포되었음. 범행 일체를 자백하였으며, 이에 따라 어제 형이 집행된 죄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