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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생존능력이 향상되었습니다.

캠핑 초보 여자 셋 캠핑기

by 나즈

캠핑 초보 셋이서 캠핑장에 갔다.

캠핑장 사장님은 우리가 초보란 걸 빨리 알아채셨다. 전화 예약하던 그 순간부터.


"난방도구는 어떤 걸 가져오시나요?"


"없어요."


"네? 11월이지만 여기는 산 속이라 추워요.”


"아. 그럼 전기장판 가져갈게요."


"아...네…..“


이런 대화 때문이었을까?

며칠 후, 구불구불 산길을 지나 캠핑장에 도착하여 만난 사장님의 첫마디는,


“차를 사이트 옆에 주차하셔도 되고요. 그런데

데크에 차 올라가면 안됩니다.“


"네? 뭐라고요? 누가 데크에 차를 올려요? 데크에 올라가면 안된다는 것쯤은 알죠."


우릴 뭘로 보는 거냐며 낄낄깔깔 웃다가, 사장님 보란듯이 가뿐하게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엄청 빠르게, 잘 해냈다며 좋아하고 있었다.

텐트를 우리 힘으로 치고, 걷을 수 있게 된 것은 엄청난 효능감을 안겨주었다.친구 남편의 도움 없이 우리끼리 해냈다는 뿌듯함.

뿌듯함에 어깨가 뿜뿜 올라가 있을 즈음, 사장님이 또 오셨다.

텐트 난방기구 사용 주의사항을 꼼꼼하게 알려주셨다. 그러면서 혼잣말로 말씀하셨다.


"텐트는 좋은 걸 가져오셨는데....."


"텐트는 좋은 걸 가져왔는데, 뭐요? 뒷말은 뭐에요? ㅎㅎㅎㅎ"


말줄임표에 숨긴 말은 말씀해주시지 않고, 다른 말로 화제를 옮겼다.


"화로는 어떤 걸 가져오셨어요? 화로가 받침에서 떨어져 있는 것이어야 데크 위에서 사용 가능한데.."

화로를 꺼내서 보시고는 데크 위에서 사용해도 된다고 말씀하시는데 불안의 눈빛은 변함이 없었다.


게다가 평일이라 캠핑장에 사람이 없었다. 옆 텐트에 장박하는 분은 저녁 때 내려가신다고 하셨다.


"설마, 여기 캠핑장 전체에 저희만 있는 거에요?"

"네"

"사장님은 언제 퇴근하세요?"

"저는 8시에 퇴근합니다."

"어. 그럼 저희 어떡해요?"


예상치 못한 답변이 또 나욌다.


"네. 저도 세 분이 걱정입니다."


"멧돼지 출몰한 적 있나요?"

"아니오. 멧돼지는 나온 적은 없고, 고라니도 캠핑장에 나온 적은 없어요."


다행이라며 안도의 숨을 쉬고 있는데, 또 반전이 이어진다.


"집에 가다가 고라니를 만난 적은 있습니다."


사장님도 우리가 걱정이라더니, 안심시키기는 커녕 사실을 그대로 말해줘서 불안 게이지를 올린다. 그러면서 불을 피우고 있으면 연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멧돼지, 고라니가 나오지 않을거라고 했다.

그래서 우린, 주구장창 불을 피웠다.



장작불이 약해져서 토치로 불을 피우려고 하는데 토치가 고장났다. 사장님 퇴근하기 전에 얼른 토치를 빌려 오기로 했다.

사장님이 토치를 빌려주시면서


"토치 사용방법은 아시죠?"


안다고 해야할지, 모른다고 해야할지 잠시 고민이 됐다. (이게 고민할 일인가?) 사장님이 안그래도 우리를 걱정하시는데 친구가 사용법을 알 것 같으니 그냥 안다고 해야겠다고 찰나의 순간에 결정을 내렸다.


"그럼요. 사용법 알죠."


이 말은 잠시 후에 엄청난 후과를 치뤄야 했다.


"토치 빌려왔어!"

토치 빌리는데 성공했다고 좋아하며 텐트로 돌아왔다.

부탄가스에 토치를 연결했는데, 점화스위치가 없었다. 원래 쓰던 것과 다른, 라이터가 필요한 토치였다.

그러나 다시 사장님에게 갈 수 없었다. 이게 무슨 심리였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끼리 해보자고 했다. 누가 먼저 말한 것이 아니라, 우리 셋의 마음이 모두 그러했다.

낙엽을 긁어모으고, 솔잎을 모으고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 나무 아래 넣어주고, 열심히 부채질을 했다. 설상가상으로 풀무기의 손잡이가 장작더미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설마 거기로 들어갔을까 했는데 불구덩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뜨거운줄도 모르고 써니가 손잡이를 찾아서 끄집어냈다. 이런 노력 끝에 드디어 불이 붙었다. 우리 힘으로 불이 살아났을 때의 그 효능감이란. (불 붙었다고 이렇게 좋아할 일인가?)


일이 터질 때마다 웃었다. 최근 들어 가장 큰 웃음으로.


캠핑 가기 위해 차에 탔을 땐, 머릿속이 온통 학폭과 학부모 민원으로 가득차있던 우리는 캠핑장에서 별 일도 아닌, 불 피우는 것 성공했다고 손뼉치며 환호했다.

별 일 아닌 일을 해내면서, 복잡한 일들은 이렇게 잊혀졌다.


숯을 만들어 고기도 야무지게 구워먹었다. 후식으로 고구마도 구워먹었다. 하나하나 해낼때마다 뿌듯함 게이지가 한칸씩 채워졌다.


밤에 잘 때 추울 것 같았는데 전기요와 탁상용 선풍기 크기만한 작은 온풍기 덕분에 춥지 않고 따뜻하게 잘 잤다.

혀니는 간밤에 고라니가 텐트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 아니었냐고 했는데, 큰 생명체가 낙엽을 밟고 지나가는 소리였다고 했다.

여튼 무사히 하룻밤을 보냈다.

아침 공기가 제법 쌀쌀했다. 아침에도 우리들의 미션은 불피우는 것이었다. 이건 뭐 구석기인도 아니고 불 피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다니.

토치 없이 불을 어떻게 피울것인가?

써니가 아침이슬 맞지 않은 낙엽을 어제 한 봉지 모아뒀다. 그 낙엽을 깔고 나무를 쌓은 다음,휴대용 버너 불을 키친타올에 붙여서 불을 붙였다. 열심히 부채질을 했지만, 밤새 이슬을 머금은 장작에 불이 붙지 않았다. 이 때 혀니가 어제 사용 실패한 토치를 부탄가스와 다시 연결했다. 그러고는 마른 낙엽을 태우고 사그라들고 있는 불씨 위에 토치 가스를 뿌렸다.

치~~~


그러자 두꺼운 장작에 불이 붙었다.


"와~~~~~~하하하"


혀니는 금세 영웅이 되었다.


"용감하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어?"


"진짜 현명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어?"


불을 붙였을 뿐인데, 아침부터 효능감이 또 한 칸

채워졌다.


불을 붙이고, 할 일을 다한 뿌듯한 기분으로 아침을 한 상 차려 먹었다.


사장님이 출근해서는 우리가 살아있는지 보러 오셨다.


"우리 안 얼어죽고 하룻밤을 잘 보냈어요."

"네. 제가 괜한 걱정을 했나 봅니다."

"그쵸? 하하하하하하하하"


우리들의 한바탕 웃음에 나무들도 같이 웃었다.

의자에 앉아 하늘 보고, 나무 보고...

텐트 안에 들어가서 나무 보고, 하늘 보고, 낮잠도 자고.

커피를 정성껏 내려 마시는 시간.


그 시간을 통해 우리들의 생존능력은 한 뼘 자라났다.

불을 피우게 된 것, 추운 텐트에서 얼어죽지 않고 무사히 밤을 보낸 것, 텐트를 우리 힘으로 친 것 등의 생존능력도 키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찰나의 시간으로 지나가는 가을의 끝자락을 잡은 것, 행복한 기억으로 삶의 한 장을 채운 것, 그리고 복잡한 학교 일을 잠시 잊을 수 있었던 것이 우리의 생존능력을 키웠다.

이제 또 휘몰아치는 학교의 바쁜 시간을 잘 보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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