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생활 1년 결승선 통과!

암환자의 복직생활 1년 평가

by 나즈
교무실 선생님들께 1년을 마치며 드린 엽서



학교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복직할 수 있을까?

다시 예전 삶으로 돌아가 암이 재발하지 않을까?


이런 걱정과 함께 조심스럽게 시작한 복직의 시간 2025년, 그 일년의 시간이 무사히 지나갔다.


초반에는 빙판길을 걷듯 조심조심 걸었다. 에너지를 많이 쓰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예전처럼 워커홀릭이 될까봐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에 침묵하는 것이 나의 에너지를 아끼는 길이었다.

동아리 활동계획서 내용과 나이스(생활기록부) 동아리 누가기록을 단어 하나까지도 일치시키라는 생활기록부 업무담당자의 이야기에 왜 그렇게 하냐고 따지는 것보다, 그냥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 에너지를 아끼는 길이었다.

처음엔 그렇게 하려고 했다.

수업에만 에너지를 쏟고, 다른 일에서는 에너지를 최대한 아끼며 살려고 했다. 그래서 이해되지 않은 많은 부분에 대해 문제제기하지 않고, 못들은 척 했다.


복직생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암환자의 루틴을 지키는 일이었다.

몽땅쥬스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고, 수면 시간을 7시간 이상 확보하고, 매일 운동하는 것.

이런 일들이 가장 중요했다.


그런데 열심히 살지 않을거라는 나의 결심은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어느덧 나는 밴드부 크리스마스 버스킹 공연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또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과 독서토론을 하고 있었다. 에너지를 아껴야 하는데 "공정하다는 착각" 독서토론은 너무 재밌었다. 그 책만 하고 끝내려던 독서토론회는 카프카의 "변신" 독서토론으로 이어졌고, 또 조지오웰의 "동물농장" 독서토론으로 이어졌다. 중학생들인데 이런 책을 좋아하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독서토론을 하면서 알게 됐다. 난 이런 일에 그리 많은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는 것을.


복직생활 1년 평가


1. 도시락

한 번 일에 빠지면 미친듯이 빠져드는 워커홀릭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매일 도시락을 쌌다. 도시락은 나의 정체성이었다. 내가 지금 신경써야 할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자각하게 하는 도구였다. 학교 급식을 먹으면 편하다. 급식으로 나오는 퇴김 음식, 가공음식을 제외하고 먹으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난 도시락을 일년 내내 쌌다. 급식의 편안함은 관성의 힘으로 나를 예전 삶으로 데리고 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복직 생활 일년을 돌아보며 일년을 무사히 보냈다는 사실에 무척 뿌듯했다. 병원 진료일 빼고는 병가를 쓰지않을 정도로 몸 관리도 잘 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뿌듯함을 높인 것은 다름 아닌 도시락이었다. 일년 동안 도시락을 싸서 출근하는 생활을 완주 했다는 사실에 내 어깨를 토닥거려주고 싶을 정도였다.


2. 약 복용

'아, 참! 오늘 약 먹었나?'


타목시펜 복용을 까먹은 것 같아서 깜짝 놀라서 날짜가 적힌 약봉지를 꺼낸다. 그러나 오늘 날짜가 적힌 약은 이미 빈 껍질만 남아 있다. 약 먹은 행동은 기억나지 않지만, 난 이미 약을 먹은 것이다. 이젠 습관처럼 눈 뜨면 바로 약을 먹는 상태가 되었다.

타목시펜 부작용이 있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꾸준하게 약 복용을 하고 있다. 호르몬양성 유방암인 나에게는 이 약이 항암치료제니깐. 타목시펜 복용 2년차인데 초반에는 안면홍조, 열감, 가려움, 피부발적, 불면 등의 부작용이 있었는데 지금은 익숙해져서 안면홍조, 열감 정도만 남았는데 열이 오르면 ' 또 열이 나나보다.' 정도로 넘어간다. 1~2분 이내로 가라앉을 것 아니까. 체온 조절이 잘 안되는 것 같긴 하다. 열이 났다가, 갑자기 오한이 든 것처럼 추워졌다가 하니까. 이 부작용도 얇은 옷 겹쳐입기로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는 것으로 해결한다. 타목시펜 부작용이 있지만 부작용보다 재발이 더 무서우니까 약을 잘 먹게 된다. 난 겁 많은 겁보라서 주치의의 말을 잘 듣는다. 타목시펜과 다른 비타민, 유산균을 같이 먹는 것이 안 좋다고 해서 고혈압, 고지혈증 약 외에 다른 약은 일절 먹지 않는다. 타목시펜 효과를 방해할 수 있다고 해서다.


3. 운동

내가 운동을 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다.


"요새는 달리는 것이 어때?"

내게 달리기를 가르쳐준 달리기 스승님이 물었다.

"여전히 달리는 것이 편해지지는 않아요. 아직도 조금은 힘들어요."

"그런데 달리기를 왜 계속해?"

"달리고 난 뒤 뿌듯해서요."


그 뿌듯함은 내가 할 일을 다했다는 뿌듯함이다.

유방암 환자에게 운동은 필수다. 체중관리가 중요하고 운동은 항암효과와 맞먹는 효과를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주 6회 운동을 한다.

월,수,금 필라테스/ 화,목,토 달리기

내게 운동은 즐거움이라기보다 아직 의무사항 같은 거다. 이걸 해야 안심이 되는.

하다 보면 언젠가 즐기는 날도 올 거라 생각하며.


4. 일

예전처럼 워커홀릭에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복직 초반 빙판길을 걷는 조심스러움은 후반에 갈수록 없어져버렸다. 참지 못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사항을 건의했다.

이런 모든 일은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러니 조직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의 노고를 알아주어야 한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조직을 위해 수고하는 것이니. 침묵하고 따르는 것이 개인에게는 가장 빠르고 편한 길임에도 그 길을 가지 않고 좋은 방향으로 바꿔나가려 하는 것이니까.

올해의 나는 참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을 경우에만 문제를 제기하고 대다수는 묵묵히 따르는 길을 택했다. 이런 삶을 살아보니, 친구들의 모습에서 나의 과거의 모습을 종종 보게 되었다. 여전히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는 친구들.

업무량이 너무 많아 자신을 돌볼 시간이 없는 친구, 너무 많은 일을 처리하느라 예민해져 있는 친구.

과거의 나의 모습이었다.

과거의 나도 늘 생각했다.

'왜 나만 이렇게 일이 많냐고. 너무 바쁘다고.'

늘 불만이 가득 쌓여있었다. 집에 와서는 자기 바빴고, 살림 같은 것은 할 여력이 없었다.

과거의 내 모습 같은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친구들에게 말하곤 한다.


"그렇게 일하다가 암에 걸린 친구를 보고, 교훈을 좀 얻어."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이유도 비슷하다.

요즘 AI가 쓴듯한 글이 많다. 그래서 더 '진짜'를 찾게 된다.

브런치에 오면 '진짜'가 많다.

그래서 여기에 글을 쓴다.

바쁘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만 속도를 늦추라고 말하고 싶어서.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환우들에게 나도 이렇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서.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09화당신의 생존능력이 향상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