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 복직 생활 2년 차
3월 1일 밤, 잠을 설쳤다.
3월 1일은 개학전야다. 개학전날엔 잠을 이루지 못한다.
3월 2일 대체휴일 덕분에 어제 3월 1일 밤은 개학전야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25년 동안의 습관 탓인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미워하지 않기로 함
1년의 유방암 치병 기간을 마치고 복직하며 다짐한 것이 있다.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사람을 미워하는 데 드는 에너지를 아끼기 위함이었다.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써서 병이 났다 생각하기 때문에 온전한 치병기간 이후, 일과 치병을 병행해야 하는 기간에는 에너지 관리에 좀 더 신경 써야 했다.
학교는 이래야 한다는 원칙, 교육은 이래야 한다는 정의, 교사는 이래야 한다는 의무.
이런 것들에서 초연해지고자 했다.
내 몸을 돌보며 내 안의 에너지를 아껴 쓰는 교사가 되어보기로 했다. 그간 25년 동안 열심히 살았으니 치병에 집중해야 하는 5년 동안은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그래도 된다고 여러 번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리고 누구도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거니 생각하기로 했다. 모든 일에서 한 발짝 떨어져 보기로 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렇게 살아보니 화 낼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학부모회 일을 열심히 하는 어느 학부모의 모습에서 예전의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모든 일에 질문하고, 건의하고, 따져 묻는 일을 열심히 하는 학부모님을 보며 생각했다.
'학교를 이렇게 못 믿어서야... 이렇게 사사건건 따지고 들면, 이렇게 못 믿으면 일을 어떻게 하나? 학교 공동체의 일원으로 신뢰가 그렇게 없나?'
이런 생각을 하자마자 기시감이 들었다. 다름 아닌 내 모습이었다.
평온하게 흘러가던 작은 학교에 계속 돌을 던지던 내 모습.
출결 서류 처리가 너무 많다고,
담임의 업무량이 너무 많다고,
고입 교육과정 설명회에 왜 학생들의 선택권을 주지 않냐고,
졸업식은 학생들의 마지막 축제가 되어야 한다고,
다른 학교처럼 수업시수 조정이 왜 안되냐고.
호수처럼 잔잔한 흐름으로 살아가던 작은 학교에서 내가 던진 돌은 매번 큰 파장을 내며 번져갔다.
그때는 몰랐던 내 모습이 절전형 생활을 마음먹은 복직 1년 차에서야 보였다.
부끄러웠다.
멀리서 보아야 예쁘다
학생들과도 적당한 거리가 유지되는 것이 좋다.
적당한 거리에서 보아야 예쁘게 볼 수 있다.
작년 학년말에는 그 적당한 거리유지가 깨졌다.
학년초에는 밴드부 학생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 감동이었다. 오디션에서 열심히 면접 보는 모습에도 감탄하고, 연주 실력에도 감탄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일정 수준의 기대치가 생겼다. 그러고는 기대치에 충족하지 못할 때 실망하곤 했다.
아이들은 그대로인데 내가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작은 행동에 감탄하던 모습이 사라졌다. 더 잘 해내기를, 내 기대에 따라와 주기를 바라게 되었다.
다시 처음인 상태로 시작하려고 한다. 제로베이스에서 처음 만난 것처럼.
첫 시작의 들뜸과 감동으로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밥 짓는 마음으로 쓰는 글
이러한 굳은 다짐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올해 상조회장을 뽑는 직원회의에서 사람들은 나를 추천했다.
학교 사람들에게 종종 말하곤 한다. 중증질환 산정특례 대상자라고.
업무분장 희망원에도 일부러 이 내용을 적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주 잊는다. 내가 아직 치병 중인 사람이라는 것을.
사람들만 잊는 것은 아니다. 나조차도 종종 잊고 지낸다.
"저는 중증환자예요."
그래서 일부러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그리고 브런치에 들어와 글을 쓴다. 복직 2년 차 시즌2를 맞이하는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기 위해.
치병기간의 기록인 '암환자의 머릿속'은 방탕하게 생활하려고 하는 나를 지지해 주는 밧줄이다.
자기 것만 챙기는 얌체 같은 동료의 모습을 보며 미워하는 마음이 슬금슬금 들려고 한다. 그 마음을 내려놓으려 한다.
날 위해서.
누구를 미워하는 에너지는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힘이 들기 때문이다.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고 내 일에만 집중하기로 한다.
'암환자의 복직 이야기' 시즌1, 1년 차의 기록은 10회에 그쳤다.
시즌2, 2년 차의 기록은 이보다 더 자주 쓰게 되기를 바라본다.
글 쓰는 시간은 좋다. 흩어져 있는 낱알들을 그러모아 밥을 짓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