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노트 3화] 진심은 끝내 길을 만든다

회복작가로 부름 받기 까지

by 회복작가 이서온

#06. 기적은 진심을 품은 사람에게 – 호텔, 그 꿈의 시작

2012년 10월.

지역에선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 호텔, 운영자를 다시 찾는다더라.”

그곳은 한때 세계적인 호텔 브랜드가 맡았지만,

수년간 실적 부진으로 결국 철수한 장소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떤 고급 리조트보다 ‘따뜻한 감성’이 깃든 공간이었다.

넓은 정원, 고즈넉한 호수, 오래된 벤치 하나 하나까지—

누군가의 추억이 묻어 있는 곳.

그 소식을 듣는 순간, 심장이 요동쳤다.

아… 내가 저곳을...

하지만 곧 고개를 떨궜다.

“나 같은 사람이 감히…”

그런데 이상했다.

밤이면 자꾸 그 호텔이 떠올랐다.

나는 기도했고, 노트에 스케치했고,

상상 속에서 그 호텔을 수백 번 걸었다.

그리고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

30여 개 가맹 개설 이력 덕분일거라

짐작되었다.

운영 후보 리스트에 우리 이름이 올랐다.

며칠 뒤, 심사관이 우리 가게를 찾았다.

고작 4평짜리 작은 점포.

물류건도 넘긴 지 오래였고,

남은 건 오늘 구워낼 빵 몇 상자와

수년간 쌓여온 경험뿐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호텔에 대한 ‘진심’이 있었다.

나는 말하고 싶었다.

“우리는 가진 게 없습니다.

하지만 살릴 수 있는 전략과 진심은 있습니다.”

하지만 심사관은 내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른 후보업체들도 돌아봐야되고 해서 서둘러 자리를 떴다.

“요청한 서류만 꼭 기한 내에 제출바랍니다.”

""아! 주님 제 진심을 제대로 전달도 못했네요!"

나는 말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허접한 기록 파일에 모든 걸 담아 보냈다.

몇년간의 매장 개설 이력, 운영 전략,그리고 꿈의 시나리오까지.

며칠 뒤, 믿기 힘든 연락이 왔다.

최종 후보 네 곳 중, 우리가 선정되었다고.

처음 해보는 PT

밤새 작성한 시나리오

호텔 구조를 수백 번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했다.

기존 운영 전략은 전부 버렸고

운영자 관점이 아니라,

고객의 입장에서 처음부터 다시 설계했다.

누구나 편하게 찾을 수 있는,

‘문턱을 낮춘 호텔’을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열 명의 심사위원 전원 만장일치.

우리가 그 호텔의 운영권을 따냈다.

심사한 부서도 놀랐다.

“당신네가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불과 몇 해 전,

배달통을 들고,

병원 야간 경비를 서고,

철근을 나르던 내가—

쟁쟁한 업체들을 제치고

그 명소의 새 주인이 되었다.

그리고 곧, 문전성시

그림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 공간은 다시 살아났고,

웃음과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내가 꿈꾸던 호텔이,

이토록 많은 이들의 기억을 깨워주고 있었다.

기적은, 진심을 끝까지 품은 사람에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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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노트 #07. 번창 뒤의 상실과 침묵 – 그리고 숙명의 순간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호텔을 찾았다.

가든에는 웃음이 흘렀고, 식당에는 따뜻한 조식의 온기가 머물렀다.

카페 테라스와 로비는 하루 종일 생기로 가득했다.

그 풍경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그려왔던 한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 장면의 한가운데, 내가 서 있었다.


사람을 맞이하는 일은 늘 감사한 일이었지만,

내가 가장 마음을 쏟았던 자리는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곳에 있었다.

나는 한부모 가정과 조용히 도움이 필요한 가족들을 호텔로 초대했다.

매달 두 번, 단 한 가족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도록 그들만을 위한 1박 2일을 준비했다.

그렇게 몇 해 동안 서른여덟 가족이 그 공간을 다녀갔다.


창밖을 바라보며 아침을 맞이하던 그들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내 마음도 함께 따뜻해졌다.

어쩌면 그것은 조립식 주택 시절, 호텔 조식을 부러워하던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작은 위로였는지도 모른다.

그 시기는 분명 내 인생의 가장 높은 지점 중 하나였다.

그래서였을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잘하고 있다’는 확신에 조용히 기대기 시작했다.

낮은 자세를 유지한다고 믿었지만, 내 안에서는 확장에 대한 욕심이 천천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관광지에 두 번째 사업장을 준비했다.

호텔 운영의 꽃을 더 크게 피워보고 싶었다.

그 선택은 나름의 계산과 각오 위에 세워진 것이었고, 나는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바이러스까지 창궐했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멈췄다.

버텨야 할 시간은 길어졌고 운영의 무게는 상상보다 훨씬 깊게 내려앉았다.

우리는 시간도, 마음도, 삶의 에너지까지 호텔에 쏟아부었다.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자리를 만들고 꽃을 피우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진심과 노력만으로 견딜 수 없는 지점이 분명히 존재했다.


나는 점점 지쳐갔고, 어느 날부터인가 내 안에서 무너지는 소리가 작게, 그러나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그 붕괴는 요란하지 않았다.

너무 조용해서 처음에는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그리고 생각보다 빠르게 모든 것이 내려앉았다.

나는 결국 그 자리를 떠나게 되었다.


그 이후의 시간은 말보다 시선이 앞섰고, 사실보다 해석이 먼저 쌓여갔다.

나는 설명하려 애쓰기보다, 잠시 한 걸음 물러나 그 시간을 포용하며 견디기로 했다.

연이어 닥친 일들은 우리 부부의 일상을 단숨에 흔들어 놓았고,

그 과정에서 상처가 남기도, 관계가 멀어지기도 했다.

돌아보면 그 모든 흐름 속에서 나 역시 내 몫의 책임을 피할 수 없었음을 조용히 인정하게 되었다.


높아졌던 자리만큼 떨어진 깊이도 컸다.

그제야 나는 알게 되었다.

성취 뒤에 찾아오는 상실이 사람을 얼마나 깊이 비워내는지를.



모든 것이 정리된 뒤 가족들과 함께 최소한의 짐만 들고 낯선 땅, 부산으로 내려왔다.

남은 것은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하루를 견디는 힘뿐이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끝내 나 자신을 변호하지 않았다.

밝혀진 것보다 드러나지 않은 몫이 더 많다는 사실을 나 또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개를 숙였다.

지금 이대로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이유가 충분하다는 것을 깊은 아픔 뒤에 배웠다.


그 침묵의 시간은 고통이었지만 동시에 내면의 뿌리가 가장 깊어지던 시간이기도 했다.

말이 사라진 자리에서 질문만이 남았다. 몇 계절이 흐른 뒤 나는 마침내 그 질문과 마주 서게 되었다.

“이 길이 정말 내가 바라던 꿈이었을까.”

“이제 나는 어떤 존재로 살아야 하는가.”

긴 침묵 끝에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그 길은 내가 진정 원하던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겉으로는 화려했지만 내 안은 늘 허기져 있었고, 나는 중요한 무언가를 놓친 채 바쁘게만 달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멈추고 침묵만이 남았을 때— 내 안에서 처음 듣는 듯한 한 이름이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울려왔다.


회복작가, 이서온.

무너짐 이전에는

한 번도 떠올려본 적 없는 이름.

그러나 무너짐의 끝에서야 비로소 들리기 시작한,

내 인생의 진짜 부름이었다.

나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사람이다.

수없이 무너졌고 수없이 부서졌으며,

그 조각들을 어떻게 붙여야 할지 몰랐던 시간도 길었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걸을 수 있다.


이제는 안다.

그 낮아짐과 침묵, 그 치열했던 날들이 결국 이 노래를 부르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누군가의 지친 발걸음 곁에서 내 글과 이야기가 조용한 위로로 머물 수 있기를.

그래서 오늘도 나는 가슴에 다시 신발을 품는다.

그리고 이 길을, 사명처럼 걷고 있다.




따뜻한 걸음,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회복노트 #감성에세이 #삶의기록 #희망스토리 #이서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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