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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아빠 May 04. 2021

[출발평] 드러나지 않은 나를 찾아서

이제 개인의 시대다, 은서기

<부부, 행복을 짓다> 브런치 북을 발간하고 글 쓰는 텐션이 떨어졌었다. 글쓰기는 좋지만, 앞으로 어떤 콘셉트로 나의 세계를 만들어 갈지 고민이 되었다. 염두에 둔 후속작이 있었지만, 이상하게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지인들은 글을 읽고 재미있다고 평해주어서 고마웠지만, 내 글에 만족도가 높지 않았다. 내가 느끼기에 별로라서 말이지.


뭔가 쌈빡하고 나이스 한? 그런 콘셉트 없을까....

변덕스럽게, 진지한 글을 썼더니 익살스러운 글을 쓰고 싶다. 한 끼를 건강식으로 먹었다면, 이상하게 다음 끼는 자극적인 음식이 생각나는 섭리 같은 그런 느낌.


2주 정도 글 쓰는 걸 놨던 것 같다. 오랜 시간 방황한 것 같은데 그것도 아니네. 여보 잔소리하지 마요. 2주 잠깐 쉬었을 뿐이에요. 저 게으르지 않아요!! 여기서 마음의 소리를 질러보자!!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텐션이 흩트려졌을 땐, 역시 뭐니 뭐니 해도 책이 보약이다.

아내가 이것저것 책을 사 왔길래 뒤적이다가 눈에 들어왔다.



제목처럼 나도 개인의 시대를 살고 있다. 혼자서, 글 쓰고, 발행하고, 아이디어 생각하고 콘셉트 잡아야 한다. 시장의 흐름이라 할까? 글을 읽는 소비자들의 흐름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얼마 전에, 필명도 바꿨다. 나름 흐름 좀 타보려고, 김남주로 바꿔봤다. 콘셉트에 따라서, 흔하디 흔한 김 씨와 흔한 남편 그리고 흔한 주부의 삶 이런 느낌으로. 김남주. 아, 이것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좋은 거 없나.


시류에 너무 흔들리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어떠한 방향성을 가지고 나가야 할지 감을 잡기가 어려워. 어려워. 암튼 개인 회사를 경영한다는 느낌이다. 창업 지원 자금도 안 나오는 개인회사.


이제 20페이지 읽었지만, 괜찮다. 아주 좋아. 느낌 있어. 누가 가려운 등을 긁어줬으면 했는데, 손은 닿지 않고 보이지 않아서 가렵기만 해서 누가 긁어주길 바랐다. <이제 개인의 시대다>의 저자, 은서기 작가님이 나의 가려운 벅벅 긁어줬으면 좋겠다. 효자손이 되어주세요.


암튼, 출발평? 시작평? 뭐라고 이름지을까. 이것도 재미있겠네. 출발 비디오 여행같은 그런 올드한 느낌으로. 출발 도서여행!! 촌스럽네. 에휴. 그만하자. 짧은 페이지를 읽고 느낀 걸 쓰고 싶다.


은서기, 이제 개인의 시대다, 22.


드러나지 않은 나


지금 나의 상황을 정리해 주는 말인듯하다. 드러나지 않았고, 이제 노출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중요한 문장이 들어온다.


"사회적 통념(문화, 법규, 규정, 규범, 등)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것"


반응과 소비가 없는 글을 쓴다는 건 참으로 고된 일이다. 어느새 사회적 통념과 시류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데 거기서 자신의 자존감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개인화가 아니라 대중화가 되는 것 아니겠나. 노선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정신 차리고 내 글을 써야지. 암, 그렇고말고.


은서기, 이제 개인의 시대다, 23.


드러난 나

드러나지 않은 나


아마도 우리는 사회적 통념, 문화의 틀 안에서 살기로 길들여졌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으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흐름을 따라야 한다. 그래야, 별 탈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다.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이다. 중간만 하면 된다. 뭐, 이런 말들로 사회 속에서 파묻혀서 살아간다. 집에서 다르고 밖에서 다른 게 뭐 그런 것 아니겠나.


사회적인 통념과 문화의 흐름에 이끌려, '드러난 나'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공장에서 기성품을 찍어내는 것처럼, '드러난 나'는 한편으로 '만들어진 나'라 하겠다. 사회와 조직, 혹은 문화라는 조형 틀로 찍어서 만들어진 나, 드러난 나.


게다가, 그 틀에서 벗어나면 벌벌 떨었지. 주변에서 왜 그렇게 사느냐고 핀잔을 듣기도. 흐르는 강물을~거슬러~거슬러~오르는 연어처럼 사는 건 불가능한 담력이 필요했다.



No!!!


하지만 저자는 단호하게 시대가 바뀌었다 말한다. 요즘 유튜브를 보고 있으면 개인의 시대를 실감한다. 이제는 개인 유튜버들이 공중파 연예인들보다 더 영향력 있다. 오히려, 연예인들이 개인 유튜버들 방송에 출현한다. 많은 구독자들을 보유하고 있는 유튜버들은 그들의 색깔이 뚜렷하다.


유튜버들은 드러난 나가 아니라, 드러나지 않은 나로 그들만의 세계를 만든다. 그 세계를 보고 끌리는 사람들이 구독자가 된다.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독자들은 그 사람만의 특별함에 끌려 구독자가 된다. 맛집을 찾아 나서는 사람의 심리 같은 것 아니겠나. 꼭 그 집에 가서 먹을 수 있는 맛을 느끼기 위해서, 사람들은 몇 시간이고 달려서 간다. 시대가 그렇다.


나의 새로운 존재감을 세상에 알리는 것으로 살아가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드러나지 않은 자기를 만들어 가는 시대. 저자의 말처럼, 이전의 시대는 사회의 규범을 잘 따르는 사람들이 성공했다. 그러나 이제 개인의 시대는 노출로 무장한 사람, 개인의 특별함으로 무장한 사람이 세상을 주도하고 있다.


드러나지 않는 나를 찾는 찾아 나서야 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소심하게 맞춤법 먼저 거부해 본다. 움하하!!

드러나지 않는 내가 쓰는 그런 글을 쓰야겠지요? 쓰야?


성공을 원하는가? 노출의 언어를 사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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